2019년 12월 9일 (월)
人 & In
파주를 기억하며, 파주를 알리다
- 시민채록단 박근우, 김숙례 부부

아파트 안 작은 도서관에서 ‘파주에 살다, 기억하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을 펼치니 바로 옆 동네 봉일천과 파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정리한 형식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듯 흥미로웠다. 한 사람의 삶 속에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렇듯 생동감 있는 파주의 역사를 담아낸 이들이 궁금해졌다. ‘마을 아카이브: 휴먼in파주’를 내건 시민채록단. 1기 때부터 참여한 박근우 씨, 김숙례 씨가 시간을 내 주었다.

시민채록단 활동을 통해 지난 6월 발간한 책자를 보며 흐뭇해 하는 박근우 씨, 김숙례 씨 부부

[시민채록단 활동을 통해 지난 6월 발간한 책자를 보며 흐뭇해 하는 박근우 씨, 김숙례 씨 부부]

반가이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을 하는데 박근우 씨가 내민 명함에 낯선 단어가 쓰여 있었다. ‘마을 아카이브’. 모르면 물어보는 게 상책, 파주에 있는 마을과 사람들의 자료를 찾고 모아 기록하는 거라고 했다. ‘채록’의 의미와 같은 것.

공사현장에서 유물이 나오면 학계와 매스컴에 난리가 난다. 왜 그럴까,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다 깨진 그릇일 뿐인데. 그건 그 조각난 그릇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알려 주는 귀한 자료가 되기 때문일 게다. 우리가 그 옛날 일을 알 수 있는 것도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기록이 있어서다.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남기는 것도 개인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개인의 역사로 묻히고 말 것들을 꺼내어 마을의 역사, 파주의 역사로 기록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2017년 파주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한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인천에 있는 마을 역사 전시관을 관람했는데 아주 잘 해 놓았더라고요. 관람객들이 오게 되자 주변 시장까지 활성화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거구나!’ 싶었어요. 우리도 파주의 마을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시민채록단 회원들과 함께(사진 제공-홍창섭)

[시민채록단 회원들과 함께(사진 제공-홍창섭)]

그렇게 해서 2017년 4월 시민채록단 동아리가 결성되었고 같이 강의를 듣던 박근우·김숙례 씨는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부부가 함께 하니 너무 좋아 보인다는 말에 김숙례 씨가 “우린 싸우다 결혼했는데요?”라며 웃었다. 박근우 씨는 수학교사, 김숙례 씨는 영어교사였고 둘 다 교장으로 퇴임했다. 그래서일까, 파주에서 4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마을의 역사와 생활 모습을 기록하기로 하면서 각자 후보를 찾아다닐 때 두 사람을 사로잡은 건 파주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은 김호기 씨였다.

“김호기 선생님을 만날수록 재미있고 배운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채록을 하는 동안 여러 번 찾아뵙고 식사도 같이 하니까 선생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늘로 오르는 기분이고 별을 따는 기분’이라고 하셔서 저희도 마음이 더없이 좋았답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구술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해 기록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채록을 위해 찾아가기를 여러 번, 그 가운데 발생하는 비용도 모두 자비로 해결한다는 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 된 박근우 씨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 된 박근우 씨]

“파주의 좋은 분들을 채록한다는 게 신이 나서 다녔어요. 마을이야기를 담으면서 봉일천4리에 이어 이번에는 장파리 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기름값이나 식사비도 우리가 부담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더 좋은 거 아닐까요? 그래야 진짜 자원봉사잖아요.”

박근우 씨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던 김숙례 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박근우 씨가 교장 시절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했다는 것.

“아, 그거요? 교사 시절 아침 조회에 들어가면 보통 속이 상해 나와요. 그 기분에 화장실을 갔는데 지저분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고, 깨끗하면 기분마저 깨끗하고 상쾌해져 안 좋은 것을 다 닦고 나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화장실 청소를 했죠. 수업 종이 울리면 학교 한 바퀴 돌며 주변 청소를 하고요.”

박근우 씨에게 봉사는 일상사인 듯하다. 은퇴 후 금촌역 무지개도서관과 문산역-용문역 간 운영되었던 독서바람열차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이를 계기로 도서관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시민채록단 활동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이때 읽은 책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모두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에 깨달은 바가 있어 파주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됐다.

책 읽기를 좋아해 도서관에 자주 들른다는 박근우 씨, 김숙례 씨 부부

[책 읽기를 좋아해 도서관에 자주 들른다는 박근우 씨, 김숙례 씨 부부]

“제가 1945년 8월 15일생 문산 토박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모든 것에 노력하게 됐죠. 시민채록단 시작과 함께 열심히 뛰어주었던 양태성 주무관이 법원리로 자리를 옮기고서 도서관을 멋지게 꾸며 운영하는 것을 보고는 부러웠어요. 그리고 은근히 화가 나더라고요. 우리 문산에도 도서관이 있는데, 솔직히 많이 낙후됐거든요. 문산도서관을 잘 꾸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올해로 75세, 그러나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는 젊다. 힘이 닿는 한 시민채록단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그와 이심전심이라는 김숙례 씨. “나이 든 사람이 뭘 이런 걸 하나 싶을까 봐 마음 쓰일 뿐”이라면서도 “나도 한창 때는 1등만 했다우”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DOING by LEARNING’을 강조했다.

“채록단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어요.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LEARNING by DOING’이라고 알면 실천하게 돼요.”

시민채록단 회의 모습

[시민채록단 회의 모습]

인터뷰를 마치며 부부는 부리나케 중앙도서관으로 이동했다. 파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한 데 이어 이번에는 사진과 영상을 전시하는 ‘디지털기록관’이 개관되기 때문이다. 더 열심히 하고픈 마음이 생겼다는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작은 봉사로 파주에 대해 여러 사람이 알게 되는 영광의 기회를 갖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한 박근우·김순례 부부. 이들의 파주 사랑에 작은 도전을 받는 건 아마도 나 자신도 파주 사람이 되어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 파주중앙도서관 시민채록단: 031)940-5674

취재: 전영숙 시민기자

작성일 : 2019-11-25 조회수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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