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일)
人 & In
파주 설마리에 잠든 영웅, 영국 글로스터셔대대
-오늘의 평화를 만든 과거의 희생을 추모하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대화로 한반도 전체에 훈풍이 분다. 그 따스한 기운이 접경지역인 파주에도 느껴진다. 남·북간의 거리도 손 내밀면 닿을 듯하다. 긴 시간을 기다려 전해지기에 더욱 따스한 느낌이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고난의 과거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일 것이다.

곧 있으면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세계 16개국 젊은이들이 함께 피 흘려 싸웠던 68주년 6·25 한국전쟁일이 돌아온다. 특히 파주는 서울 공격과 방어의 요충지였던 만큼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파주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를 찾는다.

자유로를 타고가다 당동IC에서 37번 국도로 접어든다. 오두산성을 비롯해 화석정, 칠중성 등 파주 곳곳에 자리한 역사 문화 유적지들이 손짓한다. 적성면에 들어서자 최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감악산 출렁다리’ 안내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조금 더 가니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이 나타난다.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평화의 문

평화의 문

1951년 4월 22일~25일까지 설마리 235고지에서 중공군은 서울을 함락시키기 위해 3개 사단을 앞세워 대공세를 벌였다. 이에 영국군 제 29여단 글로스터셔연대 제 1대대와 왕립 제170박격포대 장병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버텨냈다. 이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넋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민과 파주시민이 열의를 모아 2014년 추모공원을 건립했다.

공원 입구 'FREEDOM·FRIENDSHIP·PEACE'를 새긴 ‘평화의 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 세계가 우정의 손길을 뻗는 듯한 형상이다. 공원 안 참전 당시 영국군이 썼던 베레모 조형물이 태극기와 유니언 잭을 바탕으로 당당히 서 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추모비는 그들을 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이다. 양 옆에 세워진 추모벽, 전사한 영국 군인들의 이름들이 기록 사진과 함께 표시돼 그 날의 희생을 되새기고 있다.

베레모 조형물

베레모 조형물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전사한 영국군 이름들

전사한 영국군 이름들

235 고지기념사진

235 고지기념사진

푸른 잔디 마당 한 쪽에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에 밀려 설마리 지역으로 밀려 퇴각해 들어오는 당시 상황을 그려낸 영국군 동상들이 있다. 총기조차 없는 군인들도 있다. 이들의 표정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가 눈에 띈다. 글로스터교다. 본부대가 있는 영국 글로스터셔의 다리를 본 따 만들었다. 지금은 예쁜 개울이지만, 전쟁당시 중공군에 포위되어 격전을 치렀던 사연이 흐르는 곳이다.

퇴각하는 영국인 동상들

퇴각하는 영국인 동상들

글로스터교

글로스터교



다리를 건너니 칸 중령 십자가가 보인다. 제임스 칸 중령은 임진강 전투 당시 글로스터 연대 1대대를 이끌었던 지휘관이다. 십자가는 그가 포로 생활 중에 만든 것으로 수용소에서 예배 때 사용되었다. 십자가를 보며 망자를 애도하는데, 어디선가 짙은 꽃향기가 풍겨온다. 주변을 청소하시던 공원 관리인께 여쭙자, ‘설마리전투비’ 화단에서 올라오는 거라 알려주신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가장 보고 싶었던 ‘설마리전투비’가 화단의 경호를 받으며 산기슭 바위위에 장엄하게 세워져 있다. 이 곳은 원래 천연동굴이었는데, 영국군이 이 곳 235고지(일명 ‘설마리고지’)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면서 전사자들을 이 동굴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1957년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널드 슈워츠먼이 전투비를 세웠다. 당시 유엔군의 참전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2008년 등록문화제 제 407호로 지정됐다.

칸중령 십자가

칸중령 십자가

설마리전투비

설마리전투비


전투비는 주변의 돌들을 채석하여 쌓아올리고 4개의 비(碑)를 부착하여 만들었다. 위쪽 왼쪽부터 각각 유엔기,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이며, 아래로는 왼쪽부터 한글과 영문의 전투 상황기록이다. 어느덧 60년이 넘는 세월. 그사이 비문들도 희미해져 버렸다.

수도 서울을 지켜낸 힘, 설마리 전투

1951년 4월 22일 저녁 중국군은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글로스터대대는 거세게 저항했다. 일당백의 전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중대 전방 배치 위치를 잃었고 엄청난 병력에 둘러싸여 후퇴해야 했다. 4월 24일 더욱더 거세지는 공격, 글로스터대대는 감악산 일대에서 포위되었다.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그들은 대부분 포로로 붙잡혔다.

하지만 이때의 강력한 저항으로 중국군의 공세를 3일 동안 지체시켰다. 덕분에 유엔군이 정비를 했고, 서울공세를 차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59명의 사상자와 526명의 포로가 발생했지만, 사방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투로 전사에 기록되고 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인 미국의 제임스 반 플리트 장군은 “현대전에서 용감한 부대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며 극찬했다.

영국인들에게 설마리는 성지나 다름없다. 해마다 4~5월 즈음 이곳에서 ‘임진강 격전 기념식’이 열린다. 전쟁당시 전사한 영국군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다.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직접 방문해 헌화해 화제가 됐다. 매년 영국 여왕폐하 말씀을 전하는 식순이 있을 만큼 중요한 행사다. 전쟁 당시 영국 장병 2명에게 최고무공훈장인 빅토리아 트로피가 수여된 것만 봐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설마리 전투비

설마리 전투비

임진강 격전도

임진강 격전도


해마다 영국군 참전용사 및 가족 등이 참석하는데, 올해는 18명만이 참석했다한다. 세월이 노병을 데려간 것이다. 부는 바람에 명복과 감사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판문점 선언’에서 밝혔듯이 하루빨리 ‘종전’이 되길 빌어본다. 과거의 아픔을 덮는 따스한 평화의 기운이 파주를 시작으로 곳곳으로 퍼져나가리라 믿는다.

위치 :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2-2
문의 : 031-940-4398

취재 : 이은경 시민기자

작성일 : 2018-6-19 조회수 :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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