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일)
人 & In
관리의 무능을 꾸짖은 청백리 성현!

드디어 6.13 지방선거가 본 궤도에 올랐다. 파주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 정당마다 출마자들을 확정짓고 선관위에 후보자등록까지 마쳤다. 각축장에 선 그들은 서로 한발이라도 먼저 달려 나가려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때 그들과 달리 현명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을 뽑을 것인가 한번쯤은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옛말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란 말이 있다. 즉 ‘옛것을 익히어 새것을 앎’이란 뜻으로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을 반추해보아 비슷하지는 못해도 흉내라도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선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근검·도덕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청백리(淸白吏)의 한사람으로 문산읍 내포4리 창녕성씨 문재공 묘역에 잠들어 계신, 악학궤범과 용제총화의 저자 ‘성현(成俔)’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자.

성현의 묘비
비석

성현 그는 누구인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 때 지중추부사를 지낸 아버지 성염조와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서 1439년(세종 21년)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字)는 경숙(磬叔), 호(號)는 용재, 부휴자, 허백당, 국오 등이며, 시호는 문재(文載)이다. 선생은 12세에 부친을 잃고, 성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큰형 성임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살았다. 어린 시절 김수온에게 음악을, 형들의 친구들인 강희맹에게서는 그림을, 서거정에게는 문장의 영향을 많이 받고 성장하였다.

이후에는 당대의 사림파 학자로 명망이 높았던 김종직과도 교유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1459년(세조 5년) 21세 때 진사에 오르고 1462년(세조 8년) 24세의 나이로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정자, 부제학, 대사성, 동부승지, 형조참판, 강원도 관찰사, 대사헌 등을 거쳤다. 48세 때인 1486년(성종 17년) 평안도 관찰사 시절에는 백성들의 열악한 환경을 구구절절하게 거론하면서 ‘백성들이 넉넉하지 못하면 임금이 누구와 함께 넉넉하겠습니까?’라며 조정의 시책이라도 백성들에게 적절하지 않는 정책이라면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상소를 올려 중앙 관리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는 1493년(성종 24년) 55세 때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 그러나 거문고와 음률에 정통하여 장악원 제조를 겸하였기 때문에 외직으로 나감으로써 불편이 많아지자 한 달 만에 중앙으로 복귀하여 예조판서와 장악원 제조를 겸직하면서 유자광 등과 당시 조선시대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樂學軌範) 6권을 편찬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한성부 판윤을 거쳐 공조판서가 된 뒤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용재총화(?齋叢話)를 저술한 후에 66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당시 연산군의 여인에 관한 일을 극렬하게 간(諫)하였다는 죄목으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중종반정 후에 신원되어 의정부 좌찬성으로 추증 받고, 청백리로 녹선 되었다.

성현의 묘 전경

소재지: 문산읍 문현말길 274-18
찾아가는 방법: 문산 방향의 자유로에서 내포리로 빠져나와 바로 만나는 359번(방촌로) 도로 교차로에서 문현말길로 직진한다. 내포4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우회전하면 창녕성씨 묘역안내 표지석이 보인다. 야산 능선을 따라 오르면 성현의 묘역이 나온다. 


관리의 청렴과 무능

성현(成俔)이 지은 《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 권4 우언(寓言)에 나오는 글이다. 가상인물 동곽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관리의 청렴과 무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남기고 있어 요즘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질에 대해서 시사 하는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성현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물에 떠도는 것 같고[浮],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잠시 쉬는 것[休]과 같다”며 자신의 호를 ‘부휴자’로 하였다. 동곽 선생이 청렴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중모군(中牟郡)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게 하였다. 청렴한 동곽 선생은 부임한 이래 사사로운 일로 손님을 접견하지 않았으며, 뇌물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식구들은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도록 단속시켰으나, 자기 휘하의 아전들에게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을은 부역(賦役)하는 사람들로 항상 소란했으며, 관청의 곡식창고와 재정은 날로 열악해져 갔다. 이러니 고을을 찾은 빈객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모두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부휴자에게 물은 것이다. “동곽 선생은 나무랄 때 없이 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스리는 고을의 사정이 왜 점점 나빠집니까?” 부휴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동곽 선생이 청렴한 것이 아니라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청렴한 사람은 경(敬)으로써 마음을 닦으며, 예(禮)로써 몸을 단장하며, 간략하게 함으로써 번거로움을 제거하며, 간편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백성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되 자신은 이익을 챙기지 않으며, 백성들에게 은택이 돌아가게 하되 자신은 재물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곽 선생은 안으로 가정에 해를 끼치고 밖으로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 이는 청렴한 것이 아니라 무능한 것입니다. 어찌 무능한 사람이 올바르게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성현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물에 떠도는 것 같고[浮],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잠시 쉬는 것[休]과 같다”며 자신의 호를 ‘부휴자’로 하였다. 동곽 선생이 청렴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중모군(中牟郡)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게 하였다. 청렴한 동곽 선생은 부임한 이래 사사로운 일로 손님을 접견하지 않았으며, 뇌물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식구들은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도록 단속시켰으나, 자기 휘하의 아전들에게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을은 부역(賦役)하는 사람들로 항상 소란했으며, 관청의 곡식창고와 재정은 날로 열악해져 갔다. 이러니 고을을 찾은 빈객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모두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부휴자에게 물은 것이다. “동곽 선생은 나무랄 때 없이 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스리는 고을의 사정이 왜 점점 나빠집니까?” 부휴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동곽 선생이 청렴한 것이 아니라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청렴한 사람은 경(敬)으로써 마음을 닦으며, 예(禮)로써 몸을 단장하며, 간략하게 함으로써 번거로움을 제거하며, 간편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백성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되 자신은 이익을 챙기지 않으며, 백성들에게 은택이 돌아가게 하되 자신은 재물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곽 선생은 안으로 가정에 해를 끼치고 밖으로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 이는 청렴한 것이 아니라 무능한 것입니다. 어찌 무능한 사람이 올바르게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선비는 당연히 청렴함으로 자신과 집안사람을 단속해야 하지만 남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청렴은 개인적인 청렴과 절약, 검소의 단계를 넘어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에게 경제적인 이익과 혜택을 두루 미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성현은 군왕의 도리에 대해서도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까닭은 백성 스스로 편안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정사가 백성들에게 편안하게 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군왕의 인치(仁治)와 덕치(德治)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성현은 ‘성격이 허심탄회하여 꾸밈이 없었으며, 재산 증식에 힘쓰지 않고 오직 책만 가까이 했다. 문장이 건실하고 익숙하여 오랫동안 대제학을 맡았으며, 또한 음률에 정통하여 늘 장악원 제조를 겸임하였다’라고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에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는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벼슬이 육경에 이르렀으되 칭찬할 만한 덕이 없다. 장례는 검소하게 하여 표석(表石)만 세우고, 비(碑)는 세우지 말라’며 후손들에게 청렴함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유권자 개인이 출마자들의 능력과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판단하는 혜량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앞을 먼저 걸어간 선인들의 지혜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파주의 청백리 성현의 역정(歷程)과 문장을 살펴보며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의 성공을 기대해본다.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

작성일 : 2018-5-29 조회수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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