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일)
人 & In
소설가 이효석과 파주
- 동화경모공원에 잠들다

이효석(李孝石)은 전주 이씨 안원대군 후손으로 강원도 평창군 진부에서 출생, 호는 가산(可山)이다.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할 만큼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수재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함북 경성 출신의 아내 이경원(李敬媛)과 결혼을 한다.

이효석의 묘소비
이효석 기념비

그는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도시빈민의 생활상을 다루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직접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취약 계층의 고단한 삶과 현실을 고발한다. 그런 까닭인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 :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진영으로부터 자신들의 동반자라는 의미의 ‘동반작가’라고 불렸다. 결혼이후 교편을 잡는 등 차츰 생활이 안정되자 1932년경부터는 참여문학에서 순수문학으로 작품의 경향을 달리하게 된다. ‘메밀꽃 필 무렵’(1936) 역시 이런 배경 하에 탄생한 향토성이 진한 순수문학 작품이다.

 

파주로 이장해 오기 직전 그의 묘지는 25년간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 산283번지에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후학들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밤사이 경기도 파주로 이장을 강행하게 되는데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효석의 묘비
이효석의 묘

이효석의 묘가 장평리로 오기 전에는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 있었다. 1973년 영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산이 잘려나가 다른 사람 소유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런데 재차 고속도로공사를 하면서 훼손되기에 이른다. 이 사태를 겪고도 이렇다 할 사과도 없자 유족은 분노했다.  급기야 묘소의 안전 등을 이유로 평창을 떠나기로 한다.

이에 대해 당시 강원도 예총을 비롯한 강원도 내 문인들과 평창군의 가산문학선양회 등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평창인 만큼 이장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유족들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효석의 선대 조상의 원적이 함경남도 함흥시 신흥리인 관계로 이북 오도민 묘역이 있는 파주로 이장을 하게 된 것이다.

동화경묘공원
망자들의 묘

동화경묘공원은 통일동산과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되는 지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대개 망자들의 묘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데 비해 이곳은 묘역이 잘 정비되어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효석은 사랑하던 아내 이경원과 사별하고 차남 영주를 사고로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슬픔을 참지 못한 그는 만주로 떠돌다가 돌아온 후 병을 얻어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된다. 기구한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효석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그의 묘를 찾아 강원도 평창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파주에 와서 참배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척의 거리에서 역사에 남을 현대문학의 거장을 쉽게 만나 볼 수 있으니 파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동화경묘공원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98(탄현면 법흥리 1632)

소설가 이효석 묘지 : 함남묘역 C-6구역 2열 78번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3-27 조회수 :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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