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목)
人 & In
청령함 관리의 표상, 청백리 이후백

2018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해이다. 공직자의 윤리와 덕목, 양심을 바탕으로 한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특히 강조되는 시기이다. 하여 청탁근절의 상징이자 청렴한 관리의 표상인 파주의 인물 청백리 이후백(淸白吏 李後白)을 소개한다.

이후백의 묘

 

이후백(1520년 중종 15 ~ 1578년 선조 11)은 평안도관찰사, 예조참의, 홍문관부제학, 호조판서 등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9살 때 전염병이 돌아 부모님 모두를 한꺼번에 잃고 큰집에 맡겨진 그는 집안 어른이 감주를 권하자 ‘감주(甘酒)도 주(酒)자가 붙었는데 상주가 어찌 술을 마시겠느냐?’며 사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글솜씨가 뛰어났고 덕망이 높아 많은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이조판서로 있을 때의 일화는 정치인이든 아니든, 시대를 뛰어넘어 훌륭한 교훈이 될듯해 여기 소개한다. 
이조(吏曹)는 조선시대 실제 정치에 임하는 문관들의 인사담당 부서였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젊고 유망한 선비 하나가 찾아와 좋은 관직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효렴부'(孝廉符: 효행이 있고 마음이 결백한 사람을 적은 책)를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후백의 묘 전경
비석

"내 일찍이 자네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듣고 이 책에 적어놓았네. 머지않아 적당한 관직이 있거든 추천할 생각이었는데, 자네가 나를 찾아와 벼슬을 구했으니 청탁한 자가 바로 벼슬을 얻음은 공평한 일이 아닐 것이네" 그리고 바로 청년의 이름을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다. 또한 그가 공직생활에 있는 동안 아무리 친한 이라도 자주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하니, 정치인을 넘어 인사를 담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다.

 

이후백은 이어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지냈고, 호조판서로 있을 때 휴가를 얻어 전북 함안 지역으로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병사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선조 임금은 그가 벼슬살이를 위해 머물던 파주시 광탄면 일대에 묘를 조성하고 부조묘를 받들 수 있도록 위토(位土: 장례 및 제사에 관련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를 내려주었다. 호는 청련(靑蓮), 시호는 문청(文淸), 1590년에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연원군(延原君)에 봉해졌다.

 

이후백의 사당(부조묘)인 청련사는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에 있으며, 묘의 위치는 발랑리 421-1번지 인근이다. 새주소로 찾아가자면 바랑골길 212번지에 주차를 한 후. 212번지와 213번지 사잇길로 30여 미터 올라간 우측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백의 묘 입구

 

관직에 임해서의 공평한 일처리와 깨끗한 선비정신을 기리며, 끝으로 그가 12세에 지은 시 ‘탑반송’을 소개한다. 이 시는 전라도 관찰사가, 그가 공부하고 있던 절 근처를 지나다 주변에 있던 탑과 소나무를 보고 내주었던 글제목이다. 그 외 대표작품으로는 정진권이 번역하고 이광자가 작곡해 현대 가곡으로 불리는 ‘매화 핀 들’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그의 시문집인 ‘청련집(靑蓮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휘백 필체
무덤 전경

탑반송(塔畔松)

 

  一尺靑松塔畔栽 (일척청송탑반재) 작은 소나무 탑 둘레에 심으니
  塔高松短不相齊 (탑고송단불상제) 탑은 높고 솔은 낮아 서로 어울리지 않네
  傍人莫怪靑松短 (방인막괴청송단) 사람들아 소나무 낮다고 탓하지 말라
  他日松高塔反低 (타일송고탑반저) 후일 소나무는 높아지고 탑은 도리어 낮아질 것이므로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1-16 조회수 :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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