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3일 (화)
칼럼
“이번에는 거북선이다”
- 임진강에 나타난 거북선의 원조

이에인 딕키(Dickie, Iain)외 5명이 공저한 ‘해전의 모든 것’(Fighting Techniques of Naval Warfare, 1190 BC- Present : Strategy, Weapons, Commanders, and Ships)은 미국과 영국 해군의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거북선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이순신)가 구하고자 한 나라(조선)에서 전설이 된 배다”

거북선

이웃나라 일본의 도쿠토미 미호 역시 그가 쓴 저서 ‘근세 일본 국민사’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영웅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중국, 일본의 영웅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순신 거북선의 원조가 선조시대 훨씬 전인 태종시대 부터 임진각에서 떠다녔다면!?

국역 조선왕조실록에서 거북선을 의미하는 귀선(龜船)을 검색하면 총 53건이 나오며 그 중 전투함으로서 거북선에 관한 기사는 17건이다. 이중 조선 최초의 거북선인 임진강거북선에 관한 이야기는 태종 13년(1413) 2월 5일자 1번째 실록기사에서 볼 수 있다.

“통제원(通濟院) 남교(南郊)에서 머물렀다. 이날 아침에 세자에게 명하여 조정(朝廷)으로 돌아가도록 하니, 세자가 따라가기를 굳이 청하여 함께 행차하였다. ... 임금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태종 15년(1415) 7월 16일자 2번째 실록기사에도 나온다. 승정원의 좌대언이었던 탁신(卓愼)이 군사에 관해 태종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하자 태종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내용이다.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탁신이 이때에 병조를 맡았는데, 임금이 보고 병조에 내리었다.”

임진나루

임진나루

임진나루 옛모습

임진나루 옛모습


이 기록들에 의하면 조선 최초로 임진강에 거북선이 존재했으며(이하 임진강거북선이라 한다) 임진강거북선이 전투훈련을 한 곳은 파주 임진나루 근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사라진다. 임진강거북선 해상훈련 기사가 있은 이후 임진왜란 발생 시까지 180여 년 동안 왜구나 여진족이 노략을 일삼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거북선이 등장할 만큼 큰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의 시대였다.

거북선이 기록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임진년(1592)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다. 난중일기 2월 8일자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布) 29필을 받았다는 내용, 3월 27일자에 거북선이 최초로 포(砲)를 발사했으며, 5월 29일에 사천해전(泗川海戰)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사용했다는 장계(狀啓)내용을 적고 있다. 그렇다면 태종 때에서 임진왜란 발발 시까지 180여 년 동안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나라 배의 구조와 형식은 근해에 출몰하는 해적선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발달했다. 고려시대 때부터 왜구가 자주 출몰했는데 우리 쪽의 대응은 주로 상대 배에 부딪쳐 깨뜨리거나 포를 쏘아 선체를 뚫어 침몰시키는 방법을 썼다. 반면 해적들은 전통적으로 ‘등선육박’ 이라 하여 우리 쪽 배에 뛰어 올라와 육탄전을 벌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해적들이 배에 붙지 못하게 지붕을 씌우고 그 위에 칼이나 송곳을 줄지어 꽂고 전후좌우에 구멍을 내고 포를 발사해 적선이 침몰하도록 고안해야 했는데 바로 이것이 거북선이다. 세종 때 이종무가 왜구의 본거지를 소탕한 이후 왜구의 출몰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거북선의 필요성도 없어졌을 것이다.

전라좌수영 귀선

전라좌수영 귀선

통재영 귀선

통제영 귀선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선은 판옥선(板屋船)이었다. 기존의 평선에서 판옥선으로 이행하게 된 것은 명종(明宗) 시대를 전후해서 왜구의 배가 포를 장착하고 커진데 대한 대응 때문이었다. 판옥선은 평선(平船)의 평평한 갑판 네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사면을 막고 2층으로 만들었다. 노를 젓는 노역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1층, 공격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2층 구분하여 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하도록 했다. 임진강거북선은 이층으로 된 판옥선에 지붕을 씌운 것이다. 이순신의 임진왜란 거북선은 임진강 거북선을 더 발전시켜 3층 구조로 만들었으며 크기도 더 커졌다.

조선 최초의 거북선인 임진강거북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①거북선이 전투훈련을 한 곳이 왜 임진나루였느냐 하는 것과 ②임진강거북선은 이순신이 사용하던 그 거북선과 같은 것이냐는 것 ③현 시점에서 임진강거북선을 어떤 기준으로 복원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임진나루 근처가 거북선 훈련장이 된 이유부터 알아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진나루가 가지는 전략상의 위치 때문이다. 당시는 왕조시대여서 임금이 잡히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에 임금은 필요시 달아나야만 했다. 임진나루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갈 때 거쳐 갔던 나루였다. 남에서는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나가는 통로였고, 방향을 돌리면 개성, 장단, 벽제를 거쳐 조선의 임금이 있는 한양으로 들이칠 수 있는 길목이었다. 그만큼 임진나루가 있는 지역은 늘 방비해야 하는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현재도 임진나루는 철책을 치고 군이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강은 지금의 통일전망대 부근에서 한강과 합수되어 조강을 거쳐 서해로 흘러나간다. 조선 초기 태조 때부터 1419년(세종 1) 이종무(李從茂)가 쓰시마섬(對馬島)을 정벌하기까지 왜구는 경상, 전라, 충청, 경기 강화, 황해도 등 전역에 출몰했다. 임진강거북선은 임진나루라는 군사요충지를 지키다가 유사시에는 서해바다로 나가 각도에 출몰하는 왜구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었기에 이곳에서 해상전투 훈련을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둘째로 당시 임진강거북선이 임진왜란 시 사천해전에서 처음 등장한 그 거북선이 맞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진강거북선은 이순신 거북선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순신은 임진강거북선에다가 자신의 독창성을 가미해 새롭게 창제한 것이다.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숙종 14년 6월 14일자 실록 기사다. 성균관 당상관 박세채가 임금에게 올린 시무에 관한 건의안인 ‘시무 12조’ 의 내용에는 거북선을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한갓 옛 제도만 따르니, 이순신이 별도로 거북선[龜船]을 창안하여 기이한 승리로 결정한 것과 같지 아니합니다. 지금 마땅히 연해(沿海) 여러 고을에 나아가서 전선(戰船)이 있는 곳에는 참작해 더 만들게 하되, 단단하고 편리하게 하고, 또 바다 일에 익숙한 자를 찾아내어 지혜를 쓰고 기계(奇計)를 내게 하여 한 가지 격식에 구애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처럼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처럼 격식에 구애받지 말고 더 단단하고 편리하게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거북선은 각 지역의 형편에 맞게 변형,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말이어서 거북선은 민족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계승ㆍ발전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임진강거북선을 복원했다고 한다. 내외통신이 북한 국제방송을 인용한 기사를 다룬 1994년 3월 17일자 연합뉴스에 보도에 따르면 이순신이 사용한 거북선은 1413년 임진강에서 시험한 후 임진왜란에서 투입되었다. 그 당시 거북선의 길이는 약 34m, 너비는 4.3m, 높이는 2.25m 정도 되는데 함포(艦砲)사격을 위주로 하는 함선(艦船)이었다. 임진강 거북선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선실은 모두 48칸으로 1층에 있는 24칸은 무기고와 병사들 침실이며, 2층의 24칸은 선장실과 지휘관실 두 칸을 제외한 22칸은 모두 함포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채연석 교수 (경기일보 제공)

채연석 교수 (경기일보 제공)

거북선 귀배판철장갑 개념도

거북선 귀배판철장갑 개념도



거북선 복원 전문가 채연석 UST 전문교수는 2018.4.23.일자에 경기일보 기자와의 인터뷰기사에서 그가 복원한 임진강거북선을 소개하고 있다. 채 교수는 전통화포를 연구하는 전문가다. 거북선에 관한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태종 당시에 사용되었던 포를 기준으로 거북선을 복원했다. 채 교수는 임진강거북선의 길이는 12∼14m이며, 2층 구조에 80명 정도 승선했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채 교수는 이순신전서에 나오는 거북선을 가지고 포와 발사물을 배치하고 그 무게와 배의 중심을 고려해서 복원했다. 채 교수는 자신이 복원한 임진강거북선과 북한이 복원했다는 임진강거북선이 제원 등에서 차이가 나므로 남북이 공동으로 복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 일이 가능해 진다면 그동안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던 남북이 전쟁무기인 전투함을 공동복원 하는 일이어서 역사적인 일로 회자될 것이다.

아울러 임진나루터를 중심으로 당시의 수군진영과 초소, 훈련시설 등을 복원해야 한다. 국가나 지자체뿐만 아니라 국방부나 해군도 거북선의 원조인 임진강거북선을 통해 국제적인 전함세미나를 비롯해 각종 거북선축제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순신이 명랑해전을 거친 이후 다 무너진 조선수군을 일으켜 세운 고하도가 있는 목포나 거북선과 관련이 있는 거제, 여수, 통영, 진도 같은 도시와 결연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임진왜란 때 일본 해군이 출발지였고 명랑해전 등에서 많은 희생자를 낸 가고시마현 같은 도시와 결연을 맺어 왕래하면서 각종 사업을 연계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파주가 애착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장단콩, 개성장단인삼, 용미리 쌍석불만이 아니다.

이순신과 거북선 세계가 인정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영국의 해군제독 GA 블러드(1862∼1942)는 이순신을 넬슨제독에 비유했으며(I can not but admit that Admiral Yi Sun Shin and Admiral Nelson are in the same class), 한국전 종군기자 출신의 작가 윌리암 위어 역시 거북선(turtle ship)을 ‘가장 놀라운 전함’(the most amazing Battleship)으로 평가한 바 있다.

거북선은 세계 해전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23전 23승의 주역이고 기능의 우수성과 디자인의 독창성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놀라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임진강거북선이 이순신거북선 보다 180여년이나 앞서 존재했으며 정확히 605년 전에 파주 임진강에서 왜선을 상대로 해상훈련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임진강거북선 브랜드로 파주에 활기를 불어넣을 때가 왔다. 임진강 거북선을 타고 남북의 물줄기를 오르내리는 평화의 도구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번에 파주는 거북선이다.


취재 및 기사작성 : 김용원 시민기자


* 본 기사는 파주시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성일 : 2018-5-21 조회수 :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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