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Feel 通
충성스러운 신하와 의로운 말 이야기
-광탄면 발랑리 의마총

때로는 동물이 사람보다 더 인간적일 때가 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며, 눈 먼 고아의 길잡이가 되어 벼슬을 받았다는 고려시대의 개 이야기,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등 설화에나 나올법한 의로운 동물 이야기가 파주에도 있어 소개한다. 조선 중기, 명나라에 파견되었던 조선의 장수 이유길 장군이 타던 말의 이야기다.


이유길 장군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왜적과 싸우다 죽자 검은 상복을 입고나가 의병을 일으켰으며, 명량해전 때는 17세의 나이로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다. 본관은 연안, 이선경의 자이며, 예조참판·대사헌·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 등을 지낸 청백리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義)이다.


이유길-묘
이유길-묘2

임진왜란이 끝난 후 만주족의 한 부족인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추장 누르하치는 다섯 개의 부족이었던 여진족을 통일하고 대륙으로의 확장을 꾀하며 명나라를 공격하였다. 광해군은 이때, 이미 쇠퇴의 길로 들어선 명과 대세로 떠오르는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시행했다. 당시 명은 임진왜란 때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지원군을 요청했고, 광해군은 ‘싸우는 척만 하라.’는 명령과 함께 강홍립 장군을 파병했다. 그때 이유길 장군 또한 도원수 강홍립의 부장으로 명에 파병되었다.


1619년 3월, 명의 압박에 의해 전쟁에 임할 수밖에 없던 이유길 장군은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다섯 글자를 써 말의 목에 걸어주었다. 말은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사흘 밤낮을 달려왔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주인의 죽음을 알린 후 선산에 쓰러져 슬피 울다 죽었다 한다. 이 사실을 들은 광해군은 그에게 병조참판직을 주었으며 의롭게 죽은 말의 무덤은 의마총이라 이름 지었다.


부조묘
묘역-전경
묘-전경2
청련사

장군의 무덤과 의마총이 있는 곳은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이다. 말은 돌아와 땅에 묻혔으나 장군의 시신은 찾을 수가 없어 가묘로 조성되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가면 넓은 공터 옆에 신도비가 있고, 왼편으로 이유길 장군의 불천위(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땅에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보관하도록 왕이 허락한 신위)가 모셔진 부조묘(불천위를 모신 사당), 청련사가 있다. 사당 옆에 연안이씨의 종손 이봉길씨가 살고 있어 친절한 설명과 함께 묘역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유길 장군의 13대손이며 이후백의 15대 손이다. 


의마총
의마총2

묘역 맨 위는 ‘화석정’의 이름을 짓고 현판을 썼던 이유길 장군의 5대 조부 이숙함의 묘이고, 3단의 묘 중 맨 아래, 왼쪽에 이유길 장군의 묘가 있다. 이유길 장군의 활약과 교지(敎旨)(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자격·시호·토지·노비 등을 내려주는 명령서) 등이 담긴 ‘연안이씨 이유길 가전고문서’는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으며, 후손 이호룡 가에 소장되어 있다.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7-10-24 조회수 :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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