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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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가 낳은 한글학자, 독립운동가
- 석인(石人) 정태진(丁泰鎭) 선생 -

파주시 쇠재로 33 중앙도서관 옆, 아파트 숲 사이에 고풍스럽고 아담한 한옥 건물 한 채가 있다. 정태진 선생의 기념관이다. 정 선생은 일제가 우리의 정신과 혼을 말살하려던 강제점령기에도 ‘우리말 큰 사전’ 편찬에 참여, 우리말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한글학자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 민족의식 교육과 우리말 연구

 

1903년 7월 25일 파주시 금릉동 406번지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석인(石人),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파주 교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4월 경성고등보통학교(현재 경기중·고등학교)에 입학, 경의선 열차를 타고 통학하였다. 이어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수학, 함경남도 함흥에 있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의 영어와 조선어 담당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러다가 미국의 우스터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고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곳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다시 함흥 영생여학교의 교사로 부임, 민족의 역량을 키움에 있어 여성,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한국인의 체취가 배인 방언(方言)의 수집 및 조사 연구를 거듭하며 틈틈이 일본의 불안한 장래와 세계정세, 우리 민족의 우수성 등을 설명해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37년 3월 일제는 모든 관공서에서 일본어 상용을 강요하고, 1938년 3월에는 ‘조선교육령’을 개정 반포하여 각 급 학교의 조선어 교과를 폐지하였다. 낙심한 그에게 마침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전임위원으로 있던 정인승의 권유가 있어 우리말과 글의 연구 보급을 통해 위축된 민족혼을 일깨우기로 결심,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를 사직하고 사전 편찬 사업에 동참하였다.

 

 

 

- 조선어학회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주시경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맞선 우리 민족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1910년대 초반 조선광문회에서 착수했다가 1914년 주시경 선생의 사망과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 3,1운동으로 고양된 민족의식에 힘입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1929년에는 각계 저명인사 108명의 지원으로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조직, 조선어연구회에서 조선어학회로 확대 개편하고 민족문화 부흥운동의 핵심 사안으로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였다. 1941년 5월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사업에 전임위원으로 참여한 선생은 뒤늦은 동참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사전 편찬 업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42년 9월 선생은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의 증인 소환장을 받고 출두하였는데 까닭은 함흥영생여학교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가르친 우리말 교육 때문이었다. 여학생 일기장에서 나온 한 줄의 문장은 조선어학회를 탄압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에게 좋은 빌미가 되어주었다. 1942년 10월 일제 경찰은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조선어학회 주요 인사들을 대거 체포하였으며 사전 편찬 원고와 수십만 장의 자료 카드를 압수, 사전 편찬 사업을 중단시키고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선생 또한 홍원경찰서에서 1년여 동안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고 1945년 1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자신이 빌미가 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많은 학자들이 당한 고통에 책임감을 느껴 조선어학회를 재건,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각 대학과 국어교사 양성소에서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한자 안 쓰기 문제’, 김원표와 함께 ‘중등 국어 독본’, 시가집으로 ‘아름다운 강산’, ‘고어독본’ 등의 책도 저술하였다.

 

1949년 9월 25일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개편할 때, 학회 이사로 선출되어 활동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인 파주로 피신, 1951년 1,4후퇴 때에는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피난생활 속에서도 우리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멈출 수 없다는 일념에 상경하였다가 식량을 구하러 파주로 오던 중 타고 있던 군용트럭이 전복돼 1952년 11월 2일 50세를 일기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1997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한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1998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이 달의 문화인물’에 선정 되었다. 2000년 파주시에서는 선생의 생가 터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2001년 12월 21일 광탄면 영장리로 이장한 선생의 묘소를 파주시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하였다. 한글학자이니만큼 비석 글씨가 한글로 되어있어 특히 인상적이다.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7-03-20 조회수 : 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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