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일 (화)
기획특집
역사의 흔적을 찾아


덕진산성을 가다
지난 11월 8일, 파주시와 (재)중부고고학연구소가 고구려 유적인 덕진산성 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설명회를 진행했다. 우리가 몰랐던 고구려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을 탐방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묻혀있던 덕진산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베일 벗은 고구려의 유적, 덕진산성
민간인 통제구역인 군내면 정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덕진산성은 일반인이 자유롭게 방문하기는 어려운 곳인만큼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있다. 해발 85m의 낮은 구릉을 감싼 덕진산성 아래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고, 초평도와 장산돈대도 볼 수 있다.



이날 설명회에는 사전에 신청한 일반인과 언론인, 초등학생들이 참석해 발굴 현장을 답사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이용자(84)씨는 “덕진산성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덕진산성 발굴조사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총5차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파주시와 중부고고학연구소는 그동안 산성의 전체 규모를 판단하기 위해 성벽과 내부 평탄지에 대한 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물을 확인했고, 이번에 그 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이다.

조사를 통해 고구려가 덕진산성을 쌓았고, 통일신라가 보축·개축하며 보존하다가 조선의 광해군이 동북쪽으로 외성을 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올해는 덕진산성의 가장 낮은 중앙부 지점을 발굴·조사했고, 작년에 발굴했던 서쪽 성벽이 주변에 위치한 성벽과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범위를 북쪽으로 확장했다. 통일신라 시대의 기와편과 토기편 등의 유물이 주로 발굴됐고, 고구려가 만든 동이파수편과 연질토기편, 통일신라 양식의 메[망치 같은 기구(예: 떡메)]와 같은 목기가 2점 출토됐다.

고구려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초축 집수지, 원형의 1호 집수지와 방형의 2호 집수지를 발견했고 서쪽 성벽의 구조 및 축조시기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시대별 건축양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한 점과 고구려시대 지어진 초축성벽을 발견한 점도 큰 성과다.

박현준 중부고고학연구소 팀장은 “빗물을 모아두는 집수지는 산성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었다”며,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오백년의 비밀을 푸는 열쇠
역사적으로 보면 덕진산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요새이자 임진강 건너 백제의 장산진과 마주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조선 인조반정의 주력 부대가 진주한 곳이며, 한국 전쟁 중에는 중공군과 미군이 거쳐 간 질곡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덕진산성은 고구려, 통일신라, 조선에 이르는 축성기술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구려의 성벽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반면, 통일신라의 성벽은 잘 다듬어지고 견고하여 성돌 가공 기술이 발달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현재 국가 지정문화재(사적) 지정을 앞두고 있다.

문산에서 생태 교사로 활동하는 한 참가자는 “덕진산성 발굴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생태적으로도 우수하고 교육적으로도 가치가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중부고고학연구소 박현준 팀장은 “1500년 동안이나 고쳐 쌓았던 산성을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다 확인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문지(성문터)에 대한 조사 등 앞으로 밝혀내야 할 것이 많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만이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지하고, 선조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파주시의 많은 유적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


취재 : 한윤주 시민기자
작성일 : 2016-12-6 조회수 :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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