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일)
북소리
28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28
정유정/은행나무
2013.06.27 발행/496쪽/14,500원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타인이 지옥이다.’ 이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인간의 이런 어두운 본성이나 내면을 신랄하게 조명하는 작가 정유정의 신작 『28』은 ‘화양’이라는 가상의 수도권 도시에서 28일 동안 ‘붉은 눈’이라고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하자 벌어지게 되는 무간지옥을 다룬다.

눈이 빨갛게 되면서 한나절 정도면 갑자기 40도가 넘는 고열이 나고, 이삼일 안에 폐출혈을 일으키며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 자체로 불가해한 폭력과 재난의 상징이다.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악들이 벌어진다. 인간은 모든 원인을 개에게 전가하고, 국가 권력은 화양을 고립시키며, 도시 안에서는 살인과 강간, 방화와 약탈이 끊이지 않는다. 개보다 못한 인간이 있고, 인간보다 인간적인 개도 있다. 그래서 인간도 개도 모두 불행하다. 불행이 불행을 낳으면서 불행은 더욱 증폭된다.

이런 불행의 최고치는 이런 지옥도가 바로 현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화양은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는 곳이고, ‘붉은 눈’은 작가가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를 생매장하는 동영상에서 모티프를 따온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지옥이 존재한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서재형의 묘비명은, 그래서 다음과 같다.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정유정 작가는 전작인 『내 심장을 쐬라』나 『7년의 밤』에서 보여준 것처럼 탄탄한 플롯과 육박하는 문체로 한 치의 낭만이나 연민을 허락하지 않은 인간의 야수성을 적나라하게 묘파한다. 그래서 얻게 되는 것은 “살아 있어 무섭고, 살고 싶어서 무섭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전언이다.


- 추천자 : 김미현(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 출  처 :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 독서인

작성일 : 2013-08-20 조회수 : 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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