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역사와 전통
임진강 유빙이 장관을 이루는 반구정
- 황희선생과 파주의 깊은 인연이 있는 곳-

반구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인 반구정은 황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다. 자유로에서 문산으로 가는 당동IC를 빠져나가면 좌측 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여름에는 시원한 강바람을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임진강의 유빙이 장관을 이뤄 계절에 관계없이 가볼만한 곳이다.


넓지 않은 부지. 한적하고도 정갈한 분위기. 탁 트인 조망..
분명 매력적인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주변의 장어집이 더 유명할 뿐, 정작 이 정자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유적지 구석구석을 탐방해 보기로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중 나오시는 분이 계셨다. 반구정을 담당하고 계시는 문화해설사 양만규 씨였다. 나중에 방촌기념관에서 이분에게 잡혀(?) 우린 꼼짝없이 자세한 강의를 들어야 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분이 있음으로 인해 반구정이 빛을 발하고, 이 작고 아담한 유적지가 풍성하게 느껴진 것 같다. 그러나 일단 유빙을 보고 싶은 욕심에 ‘나중에 뵈요~’말을 남기고 정자에 먼저 오르기로 한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우측에 방촌기념관과 화장실이 있고 좌측으로 방촌영당지, 반구정, 앙지대 등이 있다. 먼저 좌측으로 방향을 잡은 우리는 강변에 위치한 반구정에 올랐다. 숲에 가려 정자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정자는 두 개다. 오른쪽 것이 반구정, 황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아 풍류를 즐겼다는 정자이고 왼쪽 것이 앙지대라고 한다. 반구정 옆 앙지대는 반구정이 있던 옛터로 1915년 반구정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지은 것이다. 앙지대는 황희 선생의 덕을 우러른다는 의미. 두 정자 모두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지만 1967년 이후 몇 번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을 찾았던 날짜가 12월 25일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한파가 닥치기 전이라 그런지 유빙이 많지 않았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와 삼한 사온이 반복되는 겨울이면 이 정자에 서서 ‘쩡쩡~’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유빙이 얼어붙은 강의 모습 또한 장관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강 건너는 바로 북녘땅은 아니고 도라산 방향의 파주땅이다. 강을 사이로 북녂땅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은 오두산 통일전망대 근방의 일부지역뿐이지만 강을 에워싸고 있는 철책의 삼엄함이 전방임을 실감케 한다.
반구정, 앙지대.. 두 정자를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오니 우측으로 황희선생의 동상이 맞이한다. 동상 좌대에는 황희선생이 남긴 유목이 음각되어 있다.


방촌영당(경기도 기념물 제29호)

방촌영당은 경기도 기념물 제29호로 방촌 황희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과 유림들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1962년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인 초익공양식의 맞배지붕이다. 선생의 탄신일인 음력 2월 10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한다.
방촌영당을 둘러보고 나오니 다시 반구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방촌기념관

방촌기념관은 황희선생 유적지 사업으로 2000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황희선생의 일대기를 비롯해 선생의 삶과 사상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는데 이곳의 해설을 담당하시는 양만규 선생님을 만나보는 것이 이곳을 찾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우연히 들어갔다가 초입에서부터 해설사 선생님에게 꽉~잡히고 말았다.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강의를 듣게 된 파갈님~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인데도 이분의 열정적인 설명 덕분에 훈훈하게만 느껴졌던 기념관이다.


양만규 해설사는 파주 출신이라한다. 6.25때 초등학교 6학년이셨다고 하니 지금 연세가 75세 즈음 되셨을 듯한데 유적지와 해설사에 대한 소명의식이 남달라 만약 이 분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반쪽만의 나들이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문화해설사라는 직업이 있기 전부터 파주지역의 유적지 해설을 맡아오셨다고 자부심 또한 크시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기념관이지만 이분의 설명과 함께 둘러본다면 알찬 공부가 되리라 장담하며,,


방촌 황희선생은 고려 말 우왕 2년 관직에 발을 들여 세종 때 87세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고려와 조선, 두 나라를 걸치며 수많은 왕을 섬겼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그러면서도 정계생활 60년에 이르는 거목 정치가이다.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받은 재상이었으며 우리에게도 청백리의 표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452년 90세에 사망, 장수한 재상이기도 하다. 황희선생은 고려 공민왕12년, 1363년 개성 가조리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머니 용궁김씨가 그를 잉태했던 열 달 동안 송악산 용암폭포에서 물이 흐르지 않다가 그가 태어나자 비로소 물이 쏟아졌다는 탄생일화가 전해진다.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와 관련된 일화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 고려가 망하자 충신들은 개풍의 광덕산 두문동에 은거하며 조정에 등을 돌렸다 하는데 이에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한다. (이 설에 따르면 두문불출은 중국역사에 이미 기록이 있다는 말도 있는데, 이에 관한 검증은 사학자와 국문학자의 소관으로 남긴다.) 어쨌든 이렇게 정사에 등을 돌리고 두문동에 은거한 지사들 중에는 황희선생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후에 그의 능력을 안타까워한 두문동 선비들이 그를 설득하여 태조의 세자 스승자리로 천거하니 위 정건천의 시조는 그를 떠나보내며 읊은 시이다.


그대는 청운에 올라 떠나고
나는 청산을 향해 돌아가네..


‘청운’과 ‘청산’.. 두 낱말이 주는 대구가 묘한 느낌을 준다. 방촌기념관은 실내 면적도 좁고 자료나 시설 또한 소박한 편이다. 요즘 아이들의 눈길을 끌만한 밀랍인형, 컴퓨터그래픽 등의 설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칫 휘릭~ 둘러본다면 5분, 10분이면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이분. 바로 양만규 해설사님이 있어 밋밋한 기념관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그리고 또 조곤조곤한 설명을 해주시는지 기념관을 둘러보던 20-30분 동안 황희선생에 대한 넉넉한 공부가 되었다.


황희선생의 유물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복제해 제작하였다 한다. 난 그중에서 ‘서진’에 유독 눈길이 간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부터 돌쟁이 친구에게 ‘서진’ 하나 만들어주라~ 청을 넣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얼마나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것인지 여적 뜸을 들이고 있다.


사진에서 보면 반구정을 배경으로 서녘하늘의 노을이 아름답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로 반구정에서 일몰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절기에는 오후 6시, 동절기에는 5시에 폐관해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평소 반구정 일몰에 욕심이 있던 나로서는 괜히 해설사님께 지청구를 넣어보지만 그 분이 무슨 권한이 있으랴. 아마 바로 철책이 발밑이니 안보상의 이유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위안해본다.(혹 반구정에 왔다 일몰이 아쉬운 사람은 10여 분 거리에 있는 율곡리의 율곡선생의 유적지 ‘화석정’을 가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임진강을 배경으로 썩 괜찮은 일몰을 볼 수 있다.)

황희선생이 생전에 남기신 유목(글씨나 그림)이 황희선생 동상 좌대에 음각돼 있다.
이제 기념관 탐방도 다 마쳤다. 남원, 삼척 등지에 황희선생과 관련된 유적이 몇 있긴 하나, 파주가 명실공이 황희선생을 대표하는 지역임을 새삼 실감한 나들이였다.


■ 반구정, 황희선생 유적지

-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 122
- 전화: 031-954-2170
- 입장료: 대인(19-64세) 1,000원/ 소인(6-18세) 500원
- 개관시간: 하절기(3~10월) 9:00~18:00/ 동절기(11-2월) 9:00~17:00


포스팅: 파주시 블로그기자 자운영(http://blog.naver.com/mink223)

작성일 : 2013-01-18 조회수 : 3786
  • 목록으로
  • 프린트
  • 트위터
  • 페이스북

컨텐츠 만족도 조사

홈페이지내의 서비스향상을 위한 시민 여러분들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