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월)
역사와 전통
칠십 인생의 동반자 '쇄납'
무형문화재 조병주
둔탁한 농악기 속에서 독특한 고음 내는 악기
파주시의 서북쪽에 위치한 탄현면 금산리 마을은 마을 뒤로 보현산이 평풍처럼 둘러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농촌마을이다. 예로부터 보현산 산신제와 두레 등 마을공동체 문화가 오늘날까지 잘 보전되고 있는 전통 민속마을 중에 한 곳이다.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요즘 금산리 마을 앞을 지나노라면 신명나는 노랫소리와 농악기 연주소리가 자주 들려오곤 한다. 이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농요소리가 지난 2003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면서 민요보존회원들이 전승관에 모여 소리하고 연주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을 안 골짜기에 위치한 금산리 민요 전승관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농악기 소리는 보현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 어귀까지 들려온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파음을 내는 악기소리가 있는데 이 악기소리는 지나는 사람들의 심금마저 울린다. 농악기 대부분이 두들김 악기로 거칠고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그 거친 소리에 섞여 독특한 고음의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으니 바로 ‘쇄납’이라는 악기다.
쇄납은 호적(胡笛) 또는 태평소, 날라리 등으로도 불리는 전통악기 중 나무로 만든 공명악기(共鳴樂器)다. 원뿔형 관의 넓은 쪽 끝에 나팔모양의 동팔랑(銅八郞)이 있으며 반대쪽에는 동구(銅口)가 있다. 동구 끝에는 갈대로 만든 작은 혀(舌)를 꽂아 입으로 분다. 지공(指孔)은 모두 8개 인데 그 순서는 높은 곳에서 첫 번째 지공이 앞면에 있고 2번째 지공이 뒷 면에 있다. 쇄납을 만드는 나무재료는 오동나무, 박달나무, 뽕나무 등 단단한 나무가 주로 쓰이며 동팔랑과 동구는 구리를 사용한다. 쇄납은 선율악기 중에서 음량이 가장 크며 운지법과 음의 높낮이는 향피리와 비슷하기도 하나 전체적인 음높이가 한 옥타브 더 높다.
바로 금산리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쇄납 소리는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 온 조병주 옹의 연주 소리다. 올 해로 78세인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70평생을 쇄납과 함께해 왔다. 지금도 바깥 출입 때면 으레 쇄납이 담겨 있는 작은 손가방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조병주 옹과 평생을 같이한 쇄납 인생은 우여곡절의 삶이었다.

어른들 만류에도 남몰래 쇄납 만들어 불다
어릴 적 부친께서 자주 부시던 쇄납이 신기해 따라 불기 시작하면서 조 옹의 쇄납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쇄납을 불고 다니는 것은 매우 천박한 일이었다. 또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 못되었다. 그래서 쇄납을 불기만 하면 오촌당숙과 칠촌당숙 등 친척 어른들이 “이 짓을 해선 못 살아 간다”고 하며 수없이 쇄납을 부러트려 버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조 옹은 다시 불고 싶은 마음에 몰래 직접 쇄납을 만들어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쇄납 인생이 70평생을 함께 한 것이다.
조 옹의 쇄납 연주는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어려서는 부친이 부는 쇄납 소리를 듣고 따라서 불기 시작했으며 인근의 쇄납 연주자를 찾아가 그 소리만을 듣고서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처럼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은 조 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최근 풍물연주에 빠지지 않는 쇄납 악기는 악기상에서 구입하는 것이지만 조 옹이 연주하는 쇄납은 직접 만든 것이다.
“악기상에서 사서 부는 쇄납은 소리가 제대로 안나와! 내가 만든 쇄납은 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내 손이 간 것이라야 불 수 있어!” 실제 조 옹이 만들어 부는 쇄납의 소리는 일반 쇄납보다 소리가 맑다. 가끔 악기상에서 구입한 쇄납을 들고 찾아와 손을 봐 달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면 조 옹은 음통을 더 넓혀주는 등 손을 봐준다고 한다. 그러면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 진다고. 쇄납 연주의 달인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파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호상(好喪) 상여 행렬에 불려 다니기도 수십 차례였다.

쇄납 달인 인정받고 초등학생 지도까지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금산리 농요가 출전해 조병주 옹이 대회의 최고 연기자에 뽑혀 개인상을 수상한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고령의 나이에 쇄납 연주를 이렇게 잘하시는 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평가를 했다. 그 후 2000년에는 경기도에서 각 분야 최고의 장인(匠人)들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에 쇄납 제작 및 연주기능 보유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2년에는 파주시무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돼 대내외적으로 쇄납의 달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후 지역내 학교에서 쇄납 연주를 지도해 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그러나 조 옹은 금산리 민요와 가락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마을 인근에 있는 학교가 좋을 것 같아 탄현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쇄납 지도를 하고 있다. 어린학생들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배움에 열성을 보일 때마다 조 옹은 기특해 한다. 조 옹의 지도 덕에 2002년 경기도 청소년 민속예술제에 출전한 탄현초등학교 두레패가 본상에 입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최근 고음을 내던 조 옹의 쇄납 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몇 시간이고 불던 연주를 이제는 숨이 가빠 할 수 없다. 그리고 상한 치아는 쇄납 연주를 더욱 힘들게 한다. 누군가에게 쇄납 연주를 전수해야 금산리 민요보존회를 탈 없이 유지 할 텐데 하는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민요보존회 회원 중 추동호 씨가 조병주 옹으로부터 쇄납 연주를 전수받고 있다. 70평생을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쇄납은 조 옹의 인생 동반자다. 비록 황혼의 나이지만 쇄납의 맑고 투명한 선율처럼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조 옹의 마지막 소원이다.

글 / 이윤희(파주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작성일 : 2006-12-7 조회수 : 9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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