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0일 (토)
역사와 전통
최선을 위한 선택, 그의 결정은 옳았을까?
- 향토문화유적 ‘황정욱 묘 및 신도비’를 찾아서 -

때로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결과는 치명적이다. 왕자들을 담보로 조여오는 칼끝, 항복권유문을 쓸 것인가, 왕자의 목숨을 지킬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황정욱의 고민이 시작된다. 1592년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다.

파주시 지정문화재 제19호 황정욱 묘 및 신도비 안내판

[파주시 지정문화재 제19호 황정욱 묘 및 신도비 안내판]

황정욱 영정

[황정욱 영정]

황정욱 묘표

[황정욱 묘표]

황정욱(黃廷彧, 1532 중종 27~1607 선조 40)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문, 호는 지천(芝川)으로 방촌 황희(黃喜)의 6대손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호조좌랑을 거쳐 진주목사,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노수신(盧守愼)이 그의 시를 보고 대제학으로 천거할 만큼 글 짓는 솜씨가 특별했다.

황정욱 묘역 입구

[황정욱 묘역 입구]

황정욱 묘역 입구에 핀 꽃

[황정욱 묘역 입구에 핀 꽃]

황정욱 묘비석

[황정욱 묘비석]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2개월도 되지 않아 전 국토는 속수무책 적에게 유린되었다. 왕은 파천하고, 궁궐은 불에 탔다.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판중추부사(判中樞府. 조선시대 중추부의 종1품 관직)였던 그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제1왕자 임해군과 제5왕자 순화군을 보필하라는 임무였다. 승정원 우부승지였던 황혁(黃赫, 황정욱의 아들)과 함께였다.

황정욱은 순화군과 함께 철원에 머물며 8도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함경도에 있던 임해군과 협공함으로 점령당한 두 도를 탈환하기 위함이었다. 임해군의 성급함으로 협공은 실패했다. 왜군의 진격에 쫓겨 회령(함경북도 북부 두만강가)까지 이른 그들은 토착민인 국경인(鞠景仁)의 모반으로 적에게 사로잡힌다.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안변 토굴에 가두었다. 그리고 황정욱에게 항복권유문을 쓰라 했다. 공의 손자와 왕자들의 목숨이 이에 대한 담보였다. 고민에 빠진 황정욱은 아들을 시켜 두 개의 문서를 쓰게 한다. ‘신(臣)’이라는 글자를 뺀 항복권유문과 이와 같은 상황을 밝힌 또 하나의 문서였다. 왕에게 전달된 건 항복권유문 뿐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국란을 이긴 공으로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그들 부자를 국문해야 한다는 정적들의 상소가 끝없이 이어졌다. 거짓 문서임을 알리고자 뺐던 ‘신(臣)’이라는 한 글자가 ‘왕에 대한 능멸’의 구실로 탄핵감이 돼버린 것이다. 선조는 그를 몹시 아꼈으나 빗발치는 상소에 못 이겨 결국 황정욱을 길주(吉州)로, 황혁을 이산(理山)으로 유배 보냈다. 1597년 선조의 특명으로 황정욱은 석방되었으나, 복관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광해군일기[중초본] 경진년 2번째 기사 황정욱 졸기 참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추증(追贈): 관료의 사후에 직급을 높이는 일, 또는 관직 없이 죽은 사람에게 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
*녹선(錄選): 벼슬 따위에 추천하여 관리로 뽑음

황정욱 묘역 측면

[황정욱 묘역 측면]

황정욱 묘역 후면

[황정욱 묘역 후면]

황정욱 아들 황혁 부부 묘

[황정욱 아들 황혁 부부 묘]

황정욱 신도비각

[황정욱 신도비각]

황정욱 신도비

[황정욱 신도비]

황정욱 신도비 이수 -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음

[황정욱 신도비 이수 -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음]

황정욱의 묘는 탄현면 금승리 경로당 뒤편에 있다. 삼단으로 조성된 묘역 중 맨 위편이 황정욱의 묘, 바로 아래가 아들 황혁의 묘이다. 묘역 하단 좌측에 비각으로 보호된 우람한 신도비가 있다. 2002년 7월 황정욱 묘 및 신도비가 파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황정욱의 묘를 방문한다면 근처에 있는 황희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34호)와 열성공 황수신의 묘(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2호)도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황희선생 묘역

[황희선생 묘역]

황희선생 사당과 신도비각

[황희선생 사당과 신도비각]

황희선생 아들 열성공 황수신 묘역

[황희선생 아들 열성공 황수신 묘역]

취재: 김순자 시민기자

□ 찾아가는 길

○ 황정욱 묘 및 신도비(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9호): 탄현면 정승로 12
○ 황희선생 묘(경기도기념물 제34호): 탄현면 정승로 88번길 23-67
○ 장수황씨 열성공 묘역(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2호): 탄현면 정승로 109

작성일 : 2020-4-13 조회수 :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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