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8일 (월)
역사와 전통
파주에서 가장 높은 산
- 임진강 남쪽의 군사요충지

감악능선계곡길은, 푸른 하늘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발아래 경치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각별한 등산로이다. 감악산 네 방향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에서도 산등성이로 뻗은 길이어서 시야가 탁 트이기 때문이다.

올해 단풍축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건너뛰었건만, 어김없이 찾아든 계절은 감악산 곳곳에 오색물감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감악산농산물판매장 뒤편 숲길을 10분쯤 걸으면 한꺼번에 9백 명이 건너도 끄떡없다는 감악산출렁다리가 나타난다.

단풍이 타오르는 능선

[단풍이 타오르는 능선]

제법 아찔한 스릴을 만끽하며 다리를 건너자마자 등산로안내판이 서 있다. 안전한 등산을 위해서는 갈래길을 차근차근 머릿속에 새기는 게 중요하다. 그곳에서 범륜사로 가는 도로를 걷다가 오른쪽 청산계곡길로 들어선 다음, 또 갈래길이 나타나면 왼쪽 감악능선길로 접어들면 된다.

등산로 곳곳에는 볼거리가 많다. 보리암 돌탑이며, 고인돌 모양의 통천문, 악귀봉 정상이란 푯말이 박혀 있는 바위, 학이 날개를 활짝 펼친 듯 잘생긴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심심할 틈이 없다. 쉬엄쉬엄 2시간 남짓이면 장군봉과 임꺽정봉을 거쳐 정상에 올라서게 마련이다.

문제는 임꺽정봉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뾰족 치솟은 바위 꼭대기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임꺽정봉 676.3m 표지석이 나타난다. 저절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거기 적힌 숫자가 틀림없다면, 출렁다리를 건너자마자 머릿속에 새겨뒀던 등산로안내판의 감악산정상 675m보다 1.3m나 더 높은 셈이다. 다행이랄까. 그 옆에 측량을 위한 삼각점이 박혀 있고, 국립지리원 안내판이 서 있다. 동경 126° 58′ 17″, 북위 37° 56′ 09″, 높이 약 674m.

임꺽정봉의 표지석

[임꺽정봉의 표지석]

국립지리원 표지판

[국립지리원 표지판]

같은 장소의 표지석과 표지판 숫자가 다르니, 마음이 퍽 불편했다. 마음을 다독이며 내리막길을 더듬어 내려가서 임꺽정굴을 둘러본 뒤, 다시금 머릿속에 새겨뒀던 등산로안내판의 감악산정상으로 향했다.

임꺽정봉에서 헬리포트로 오르는 곳의 정자

[임꺽정봉에서 헬리포트로 오르는 곳의 정자]

마지막 휴식처인 듯싶은 정자를 지나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뜻밖에도 축구장보다는 작고 배구코트보다는 넓은 평지가 불쑥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 영문 H자가 뚜렷하게 그려진 군사용 헬리포트였다. 동쪽 울타리 너머엔 KBS감악산중계소 건물과 안테나 철탑이 솟아 있었다.

감악산 정상의 헬리포트

[감악산 정상의 헬리포트]

스마트폰을 열어 위성지도로 감악산 정상을 검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감악산 정상 표지는 헬리포트에서 남쪽으로 1백m 떨어진 곳, 그러니까 방금 지나온 임꺽정봉 674m에 놓여 있지 않은가. 이제는 뱃속이 더부룩해졌다.

의문부호가 목구멍을 치받고 올라왔다. 산봉우리를 감쪽같이 잘라내고 평지로 만들었다면, 대체 몇 m나 깎아낸 것일까. 속을 끓인다고 나아질 건 없으리라. 헬리포트를 한 바퀴 휘돌며 탁 트인 산야에 시선을 던졌다. 멀리 임진강 줄기가 들녘을 휘돌아 나가고, 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마을들을 품었다.

임진강이 휘돌아 나가는 들녘

[임진강이 휘돌아 나가는 들녘]

감악산 정상은 3개 시군의 경계이기도 했다. 서쪽 절반은 파주시, 동북쪽은 연천군, 동남쪽은 양주시. 따라서 임꺽정봉은 파주시와 양주시의 경계에 놓인 봉우리이고, 그 아래 임꺽정굴은 양주시 관내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의적 임꺽정은 양주 땅에서 태어나 봉기한 뒤 임진강 줄기를 따라 파주, 연천, 포천, 철원 등지를 오가며 탐관오리를 징치하거나 관군과 숨바꼭질을 했던 셈이다.

감악산비(파주시 향토유산 제8호)는 헬리포트 동남쪽, KBS감악산중계소 울타리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무더기에 해설을 새긴 동판 하나가 붙어 있다.

감악산비 유래를 밝힌 동판

[감악산비 유래를 밝힌 동판]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이 비석은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석비로 높이 170cm, 너비 70~79cm의 규모이다. 이 비는 글자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沒字碑)’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와 흡사하고 적성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 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감악산비 앞 표지판에는 해발 675m로 되어 있다.

[감악산비 앞 표지판에는 해발 675m로 되어 있다.]

근래에 서예전문가인 손환일 박사(대전대 서화연구소 책임연구원)가 감악산비에서 광(光), 벌(伐), 인(人)’ 등 세 글자를 읽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손 박사는 기사 말미에 “이 비석은 진흥왕(재위 540~576년) 혹은 진평왕(579~632)이 한강과 임진강 유역은 물론 함경도까지 영역을 넓힌 뒤 ‘척경(拓境)과 순행(巡行)을 기념’하기 위해 순수비를 세운 시기와 일치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손환일 박사가 밝혀낸 세 글자

[손환일 박사가 밝혀낸 세 글자]

북한산 비봉에 서 있던 진흥왕순수비에는 고증이 가능할 만큼의 글자가 남아 있었으나, 감악산 비는 그렇지 못하여 아쉽기 그지없다. 그렇더라도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돼 있으니만큼, 반듯하게 다시 세우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참고: 북한산에 위치한 진흥왕순수비

[참고: 북한산에 위치한 진흥왕순수비]

비석 아래에는 또 감악산 675m 표지석이 있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정신을 수습하기 곤란해진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수백 명 등산객이 찾아오는 감악산이다. 안내판과 표지석에 정상이 어디인지, 높이는 또 어떤 게 맞는지 가지런히 정리해 주면 좋으련만…….

울타리로 가로막힌 동쪽을 제외한 헬리포트 주위에는 노란 산국이 무리지어 피었고, 이름 모를 수목들도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중에도 꼬마전구 같은 분홍빛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참빗살나무 몇 그루가 발길을 잡는다. 꽃보다도 단풍보다도 더 예쁘다.

감악산 정상의 참빗살나무
참빗살나무

[감악산 정상의 참빗살나무]

내려가는 길에는 팔각정과 까지봉을 거쳐 운계능선길을 따라 운계전망대와 운계폭포를 둘러보고 범륜사로 들어섰다. 경내에 우뚝 선 중국 하북성 아미산에서 가져왔다는 백옥관음상(높이 7m, 좌대 4m)이 이채롭다.

범륜사 백옥관음상

[범륜사 백옥관음상]

출렁다리를 되짚어 건넌 다음엔 발길이 저절로 감악산농산물판매소로 향한다. 감악산머루주 한 상자(2병)를 사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산길은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아직 해가 남아 있다. 내친 김에 설마리계곡의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을 방문해 한국전쟁 때 먼 이국땅을 찾아와 산화한 병사들에게 묵념을 올렸다.

감악산은 674m에 불과하지만 파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임진강 남쪽의 군사요충지였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각축장이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수심이 얕은 임진강을 건너오는 탱크와 중국군을 막기 위해 영국군 제29여단이 투입되었다. 영국군은 이곳에서 1,3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3일 동안 중국군의 진격을 지연시킴으로써 서울 진입을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감악산은 한국 100대명산 중 하나로도 꼽힌다. 올가을, 단풍축제는 없더라도 한번쯤 정상 등반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헬리포트나 임꺽정봉 중 어디가 정상인지, 몰자비는 또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새겨보는 건 어떨까.

취재: 강병석 시민기자

※ 위 기사는 시민기자 개인 의견으로, 시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성일 : 2019-10-22 조회수 :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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