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 (월)
역사와 전통
용상사, 그 굴곡진 세월을 이겨내고

용상사는 월롱면 덕은리에 있는 전통사찰로 월롱산 쪽 사면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가지가 여러 갈래로 굽어진 채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는데 용상사의 굴곡진 지난날을 보는 것만 같아 예사롭지 않다.

용상사
일주문

[일주문]

경내에 서 있는 소나무

[경내에 서 있는 소나무]

1018년(고려 현종 9년) 소배압이 이끄는 40만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자, 현종은 민간인 차림으로 월롱산까지 피신하였다. 그 후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고, 시국이 안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해 월롱산에 절을 짓게 하고 임금이 머물렀다는 의미로 용상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445년(조선 세종 27년) 덕은화주(德隱化主)가 절을 중건하면서 석불좌상을 인근 벽장굴에 안치했다. 석불좌상 하부 바닥면에는 ‘정통십년명석불좌상(正統十年銘石佛坐像)’이라 쓰여 있어 이는 덕은에 의해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0호인 용상사 석불좌상은 전면에 회칠이 되어 있고, 목이 짧으며 몸에 비해 크게 표현된 직사각형의 얼굴을 가진 높이 61cm, 무릎너비 50cm의 소형불좌상이다. 이는 조선 초기 불상양식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용상사 석불좌상(2015년 화재로 훼손되기 전의 모습)

[용상사 석불좌상(2015년 화재로 훼손되기 전의 모습)]

임진왜란 때 용상사는 활발한 승병 활동으로 용상골에는 왜군의 시체가 즐비해서 무덤골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조선후기까지 연혁이 전해지지 않다가, 근대인 1926년 정염스님이 폐허가 된 절터에 사찰을 중건하였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 터보다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게 되었다.

1967년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고, 서쪽에 삼성각(三聖閣)을 지었다. 용상사가 속한 종단은 교관겸수와 보살행으로 나라를 지키며 불법을 널리 전파하는 것을 종지로 삼는 대한불교일승종(一乘宗)이다.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하고,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다.

삼성각

[삼성각]

2015년 화재로 대웅전이 전소되고, 석불좌상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었다. 화재는 연등에 사용된 전구 불량이 원인으로 알려졌는데 현재까지 복원과정을 거쳐 명부전과 대적광전을 재건하고 있다.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봉안하며 사찰 내에서 가장 큰 당우다. 이는 불자와 절을 찾는 중생들에게 더욱 큰 자비심으로 다가서려는 종단과 사찰 측의 배려가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화재로 전소되기 전 '대웅전'의 모습(출처: 파주문화원)

[2015년 화재로 전소되기 전 '대웅전'의 모습(출처: 파주문화원)]

마당 한 쪽에 쌓인 불에 탄 대들보
부자재들

[마당 한 쪽에 쌓인 불에 탄 대들보와 부자재들]

월롱산은 바위가 많고 다소 경사가 있어 적당히 운동이 되는 산이라 자주 등산을 가고는 한다. 하산 길에 용상사 경내에 들어가면 마당 한 쪽에 쌓인 불탄 대웅전 대들보와 휑한 당우가 있던 자리를 보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용상사가 마침내 지난 6월 4년여의 보수과정 끝에 대적광전과 명부전을 재축해서 준공식을 가졌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아직 단청을 하지 않은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양식의 팔짝 지붕의 형태로 건축되었다.

건축 중인 명부전

[건축 중인 명부전]

건축 중인 대적광전

[건축 중인 대적광전]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태어난 용상사가 앞으로도 중생에게 더 많은 자비심을 베풀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용상사]
○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길 403

취재: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9-8-5 조회수 :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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