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3일 (금)
역사와 전통
파주 낙화암(落花岩)

보통 낙화암(落花岩)이라면 충남 부여 백마강변 부소산에 있는 바위를 떠올린다.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자 백제 궁녀 삼천 명이 투신한 곳이다. 그런데 파주에도 ‘낙화암’이 있다면 의아하거나 놀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파주 낙화암은 윤관 장군과 그 애첩 웅단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윤관 장군은 고려의 명장으로서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여진국인(女眞國人) 애첩 웅단(熊丹)을 데리고 왔다. 웅단은 귀국해서 윤 장군을 정성껏 시중들었다. 그 후 장군이 세상을 뜨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 통곡하며 윤관 장군의 별장지였던 상서대(尙書臺) 옆 깊은 연못 위 바위에서 투신했다. 웅단이 빠져 목숨을 잃은 물웅덩이가 웅담(熊潭)이고, 스스로 몸을 던진 곳이 낙화암(落花岩)이다.

파주 낙화암과 웅담의 존재는 기자에게 낯설었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 낙화암과 웅담을 찾기 위해 한여름 2번씩이나 현장을 방문하여 보았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아쉬웠다. 다만 지형지물과 과거 낙화암비와 웅담을 촬영했던 사진을 비교해 보면서 옛 모습을 상상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바위와 산 사이 움푹 패인 곳 오른편이 예전 낙화암비석이 있던 곳, 아래가 웅담
[바위와 산 사이 움푹 패인 곳 오른편이 예전 낙화암비석이 있던 곳, 아래가 웅담]

현재 상서대 입구 옆 월류 방지 담장 넘어서 하천변에 대각선으로 줄지어선 여러 겹의 바위를 볼 수 있다. 그 바위 왼편으로는 높은 언덕이 이어지고 바위와 언덕 사이가 움푹 패어져 계곡을 이루었다. 비석은 계곡 우측으로 연결되는 줄지어선 바위 맨 앞쪽 상단에 있었다. 비석 아래에는 웅담(熊潭)이 있었다. 법원읍 웅담리 라는 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나무 뒷편이 웅담

[나무 뒷편이 웅담]

여러 겹의 바위와 계곡

[여러 겹의 바위와 계곡]

그 후 1960년(庚子年) 4월경 파평 윤씨 후손들이 실전(失傳)된 비단이 설치된 추원단(追遠壇)과 상서대를 대폭 개수하면서 낙화암 위에 비석을 세우고 웅단(熊丹)할머니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제를 행했다. 상서대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 낙화암과 웅담을 보면서 장군과 웅단의 애절한 사랑을 기억했다.

상서대 설명 안내문

[상서대 설명 안내문]

웅단의 제단

[웅단의 제단]

2011년 7월 집중호우로 인해 상서대 일원에 물난리가 있었다. 이때 낙화암비도 유실되었고 주변 주택과 농경지 침수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상서대 인근 눌로천변을 따라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월류방지시설과 아울러 하천 정비사업을 시행해 과거와 같은 웅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현재로써는 상서대 앞 높은 월류 방지 담장으로 인해 웅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낙화암비는 상서대 입구에 세워져있다. 상서대 경내에는 웅단을 제사하는 비가 세워져 있어 그 모습을 보는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월류 방지 담장

[월류 방지 담장]

상서대 입구에 세워진 낙화암비

[상서대 입구에 세워진 낙화암비]

이곳 상서대 주변에 볼만한 명소로는 금곡리 소재 쇠꼴마을을 들 수 있다. 가족단위 및 단체 손님들의 숙식이 가능해 다양한 민속체험과 계절별 테마축제를 즐길 수 있다. 봄에는 배꽃축제, 여름에는 수영장과 황토머드ㆍ물총축제ㆍ황토염색 체험이 가능하다. 가을에는 배따기 축제ㆍ뗏목타기ㆍ허브관 견학, 겨울철에는 눈썰매ㆍ얼음썰매장을 이용할 수 있어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니 함께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웅담(熊潭) 소재지: 파주시 법원로 웅담천길 46(상서대) 옆 눌노천변

취재: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9-7-29 조회수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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