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일)
역사와 전통
600여 년 전에 실시한 국가적 조림사업
- 황희와 황수신의 대를 이은 나라 사랑

645년(보장왕 4) 당태종 이세민은 50만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고구려의 주요 성을 함락시킨 후 안시성을 공격했다. 안시성은 고구려가 요하(遼河)유역에 설치한 요동성 개모성, 비사성 등을 지켜내는 주요 거점이었다. 당의 대군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인 규모였으나 성벽 위에 설치한 목책을 활용해 당의 대군을 막아냈다. 이를 근거로 국가적 조림사업을 건의한 조선의 관리가 있으니 그는 바로 명재상 황희의 아들 열성공 황수신이다.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각과 사당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각과 사당]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각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각]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

[열성공 황수신 신도비]

황수신(黃守身: 1407년(태종 7) ~ 1467년(세조 13))은 세종 대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며 건국 초기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한 방촌 황희의 셋째 아들이다.

음보(蔭補: 음서제도의 혜택, 조상의 덕으로 얻은 벼슬)로 관직에 나가 사헌부감찰, 우부승지, 도승지를 역임했다.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했던 1455년(단종 3년 6월) 그는 성 안에 나무를 심어 국난에 대비할 것을 건의한다. 나무가 없어 땔나무를 준비할 수 없고, 난에 대비할 도구를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전에 고구려 안시성은 60일 만에 포위를 당하여, 당(唐)의 충차(衝車: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병기)와 포석(布石: 돌덩이를 쏘아 보내던 쇠뇌)이 성을 무너뜨리면, 성중(城中)에 목책(木柵)을 세워 결함을 막았으므로(중략) 청컨대 각 성(城)마다 매년 봄에 나무를 심고, 그 수를 기록"하도록 병조에 논의케 했다.[단종실록 14권, 단종 3년 6월 28일 임인 3번째 기사]

병조에서 의정부에 건의해 틈이 있는 땅마다 나무를 심게 하였으니 현대의 식목행사는 6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이었다.

열성공 황수신 부부묘역

[열성공 황수신 부부묘역]

익성공 황희 묘역 전경

[익성공 황희 묘역 전경]

익성공 황희 묘역에서 바라본 황수신 묘역

[익성공 황희 묘역에서 바라본 황수신 묘역]

황수신은 어려서부터 기질이 남달랐다고 한다. 대여섯 살 때 한 아이가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모든 아이들이 놀라 흩어졌으나 의젓하게 의복을 적시고 아이를 구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황희가 이를 보고는 ‘우리 집에 또 재상 한 사람이 났구나!’하며 매우 만족해하였다.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를 도와 좌익공신으로 남원군에 봉해지고 [법화경], [묘법연화경] 등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공헌했으며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 2차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우찬성, 좌찬성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13년 4월 4일 병이 들어 우의정에서 사직하니 세조는 윤허하지 않고 이틀 후에 그에게 영의정직을 내려준다. 황수신은 아버지 황희에 이어 국정의 최고 관직인 영의정 지위에 올랐으나 그 역할을 오래 수행하지 못하고 다음 달인 5월 21일 6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시호는 열성(烈成)이다.

익성공 황희 신도비

[익성공 황희 신도비]

익성공 황희 부조묘

[익성공 황희 부조묘]

열성공의 아들 황신 묘역

[열성공의 아들 황신 묘역]

황희 묘역에서 바라볼 때 건너편에 있는 우측 묘역이 황수신의 묘, 좌측에 있는 묘는 수신의 아들 황신(黃愼)의 묘역이다. 황희 묘역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약간 비껴선 곳에 위치해 아들, 손자가 사후에도 보필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 마을은 대대로 장수황씨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이는 황희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문종 임금의 배려라 한다. 문종 2년 2월 8일 황희 정승이 서거하자 ‘장지 건너편 산봉우리(어봉)에 당도한 문종 임금은 내려다보이는 너른 땅을 사패지(공신의 후손에게 내려주는 토지)로 지정해주었다.’ 한다.(열성공 후손 황인홍씨의 증언)

황희 선생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34호로, 황수신의 묘는 파주시지정 향토유적 제32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열성공 비문

[열성공 비문]

열성공 사당 편액

[열성공 사당 편액]

* 찾아가는 길
- 황희 선생 묘: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 88번길 23-67
- 황수신 묘: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 109

취재: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9-7-2 조회수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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