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3일 (화)
역사와 전통
호국영령 되시어 조국 품에 영원하소서!
6.25반공투사 위령비를 다녀오다

국지도37호선을 타고 적성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율곡습지공원을 지나서 우측에 6.25반공투사 위령비라는 밤색 팻말이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방향을 따라 언덕을 오르는 길 좌우에 벚나무가 울창하게 맞닿아 어우러져서 자라고 있는 모습이 벚꽃 필 때 흐드러진 벚꽃을 생각하면, 멋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국지도 37호선 도로변의 표지판

국지도 37호선 도로변의 표지판

입구의 표지판

입구의 표지판

벚나무 길 안쪽 계단 위로 “호국영령 되시어 조국 품에 영원하소서”가 새겨진 탑이 보인다. 탑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만들었고, 울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두 개의 안내문이 좌우에 세워져 있다.

벚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입구의 오르막길

벚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입구의 오르막길

2008년도에 세워진 6.25반공투사 위령비 안내문

2008년도에 세워진 6.25반공투사 위령비 안내문

계단 위로 반공투사 위령비가 위치한다.

계단 위로 반공투사 위령비가 위치한다.

탑을 마주보고 좌측에는 “六二五 被虐殺 現場(6.25 피학살 현장)”이라는 안내문이 새겨져 있고, 함께 있는 안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0년 9월 하순, 수백 명이 집단학살 당한 현장이다.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복으로 북으로 도망을 가던 북한군은 이곳에 이르러 납치해 가던 반공인사들과 마을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학살했다.

이 지역 일대는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시체가 즐비했고 산과 들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죄 없이 죽어간 혼백은 말이 없고 시신은 한줌 흙이 되었을 뿐 학살의 현장이었던 이곳은 가꾸는 이 없는 폐허로 남아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이에 6.25동란 35주년을 맞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피 흘림 없는 조국통일을 기원하면서 한국방송공사는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

1985년 6월 25일

호국영령 되시어 조국 품에 영원하소서!

호국영령 되시어 조국 품에 영원하소서!

6.25피학살현장-한국방송공사가 1985년에 세운비

6.25피학살현장-한국방송공사가 1985년에 세운비

1986년 파주애국지사유지정화추진위원회가 세운 반공투사 희생자 열명비

1986년 파주애국지사유지정화추진위원회가 세운 반공투사 희생자 열명비

탑을 마주보고 우측에는 “反共鬪士 犧牲者 列名碑(반공투사 희생자 열명비)”가 세워져 있고 내용은“오호라! 나라를 위하신 거룩한 희생 역사와 더불어 기리 빛나리 이곳에 한을 남긴 영영이시여 구천에서 명복이 진진 하소서-坡州愛國志士遺趾淨化推進委員會(서기1986년10월30일 建竪)”라고 앞쪽에는 새겨져 있다.

희생자 열명비 뒤쪽에는 “방공투사 六二五 당시 희생 되신 분”의 성명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하였다. 1986년 당시의 읍면동 표기로 금촌읍 41분, 문산읍 38분, 조리면 2분, 광탄면 1분, 월롱면 7분, 파평면 10분, 교하면 6분, 천현면 6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총 110분이 무차별 총격에 집단학살 되었다는 기록이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총을 메고 싸운 적군이 아니라, 일반인 110명이 퇴군하던 북한군이 끌고 가다, 여력이 안 되자 무차별 총살을 했다는 사실이 귀가 막힌다. 이름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있어도 알려지지 않아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새겨진 분 110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 앞에서, 후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겨우 내 목소리를 내어 110분의 이름을 불러본다. 삼가 고개 숙여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탑의 전면과 측면에 110분 희생자의 성명이 새겨져 있다.

탑의 전면과 측면에 110분 희생자의 성명이 새겨져 있다.

이곳의 관리자는 파주시로 지정되어 있으나, 현재 현충시설로 지정이 되지 않고,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헌화와 함께, 추모하는 행사는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이곳의 억울한 희생과 학살 현장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국방송공사에서 1985년 이와 같은 위령비를 은평구에도 건립하였는데, 은평구는 2017년 국가보훈처와 함께 새롭게 정비를 하고, 6.25당시 대한청년단원과 월남동포들이 하루에 50명씩 200여명이 희생된 장소임을 알리는 호국영웅 명비 제막식을 개최한바 있다.

현충일 뒷 날 누구의 헌화인지 추모를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충일 뒷 날 누구의 헌화인지 추모를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령비와 열명비

위령비와 열명비

장소가 좁아 울타리에 맞 닿은 희생자 열명비

장소가 좁아 울타리에 맞 닿은 희생자 열명비

우리 파주시는 1986년, 2008년도에 열명비와 안내문을 세우는 등의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재 현충시설로 지정이 안 되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검토와 관심이 필요하다.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산39*

홍보담당관실 뉴미디어팀 031)940-4207

작성일 : 2019-6-25 조회수 :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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