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역사와 전통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 용미리 마애이불 입상

매일 30도를 넘어가는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다, 간밤에는 찬바람이 났는지 시원하여 아침 일찍 광탄면 용미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보물(93호) 마애이불 입상을 찾아가 보았다. 용암사 경내에 일주문을 지나자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에는 석탑과 두 개의 석등이 서있다. 석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태민안을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용암사 일주문

[용암사 일주문]

대웅전, 석탑 및 석등

[대웅전, 석탑 및 석등]

대웅전을 지나 산언덕을 오르니 돌계단 좌우로 석불좌상이 도열해 있어 찾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계단을 올라가니 바위에 새겨진 불상은 아침햇살을 받아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침 오늘이 칠석날(음력 7월7일)이라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아침부터 용암사 경내가 분주하다.

입구 돌계단

[입구 돌계단]

참배객

[참배객]

마애이불은 모양을 달리한 두 불상이 천연암벽에 우람하게 새겨져 있다.

마애이불은 모양을 달리한 두 불상이 천연암벽에 우람하게 새겨져 있다. 나란히 서 있는 불상은 자연석을 적절히 활용하여 부처의 모습을 표현했으며 머리는 돌 갓을 얹어 따로 만들어 올려졌다. 자연그대로 이용하여 신체 비율은 맞지 않지만 거대한 느낌이 있어 앞에서니 위압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몸통의 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원립불이 더 크고 남성다워 남상(男像)이고 방립불은 형태가 작아 여상(女像)이라고 전해진다.

원립불

[원립불]

방립불

[방립불]

구전에 의하면, 고려 선종(재위 1083~1094)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를 맞이했지만 후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궁주의 꿈에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데 지금 매우 시장하다’하였다. 다음날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에 두 개의 큰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왕은 이 바위에 불상을 새기게 하고는 절을 짓고 불공을 드리도록 했는데, 마침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 설화를 고려해 이들 마애불의 제작 시기를 고려 전기인 11세기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암벽 면에서 ‘성화(成化) 7년’의 명문이 발견됨에 따라 조선 초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즉 ‘성화 7년’은 1471년(성종 2)에 해당하는데, 이전에는 이 명문을 마애불을 제작할 때 새겨 넣은 것이 아니라 후대인 조선 초기에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명문에 등장하는 추모 대상인 세조 및 그와 연관된 인물들의 능묘가 파주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마애불을 새롭게 조성할만한 의미가 충분하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아울러 연꽃을 든 마애불이 쓴 둥근 갓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관모로 사용된 것이기에 이들 마애불은 조선 초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뒤에서 바라본 모습

[뒤에서 바라본 모습]

천연암벽의 자연미를 불상 조각에 적절히 활용해 미적 수준을 높인 작품

천연암벽의 자연미를 불상 조각에 적절히 활용해 미적 수준을 높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바위가 자연적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한 마애불에서는 연꽃 줄기를 잡기 위해 들어 올린 팔의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다른 마애불에서는 합장한 팔로 응용하였다. 옷자락의 흐름 역시 바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조각가의 탁월한 선택이 돋보인다. 마치 일부러 조각한 것이 아니라, 원래 바위 속에 있었던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더욱 잘 보이게 하려고 표시를 해놓은 듯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 입상[坡州龍尾里磨崖二佛立像]
○ 크기 : 불상의 전체 높이 17.4 m, 얼굴 크기 2.4m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9(혜음로 742-28)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93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취재 : 정태섭 시민기자

작성일 : 2018-8-20 조회수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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