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 (일)
역사와 전통
특이한 형태의 춘곡 정탁(鄭擢) 묘지

정탁(鄭擢)은 1363년(공민왕 12) 출생하여 1423년(세종 5) 사망했다.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공권(鄭公權)이다. 정탁의 자는 여괴(汝魁), 축은(築隱), 호는 춘곡(春谷), 시호 익경(翼景)이다. 1382년(우왕 8) 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고려말기 춘추관수찬관·사헌규정(司憲糾正)·좌정언·호조좌랑·병조좌랑·광흥창사(廣興倉使) 등을 역임했다.

그가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정몽주와 함께 척불(斥佛)한 죄로 극형을 받게 된 김초(金貂)를 구해낸 일도 있다. 때를 잘 분간하는 혜안으로 수차 공신에 오르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 올 때마다 승진을 거듭했다. 1392년(태조 1) 사헌부지평과 성균관사예를 거쳐 대장군이 되었는데 이때 이성계를 새로운 임금으로 추대하자는 최초의 발의를 한 인물이다. 조선 건국 후 논공행상에서 개국 1등 공신에 오르고 후에 중추원부사에 승진하면서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졌다. 1408년에는 태조가 죽자 고부청시사(告訃請諡使)로 명나라에 다녀 온 후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되고, 1421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다음 해에는 우의정에 올랐다.

봉분 앞에 멀 경(?)자 모양의 호석을 두른 특이한 형식

그의 묘는 고려형식의 묘제인 장방형 형태로 봉분 앞에 멀 경(?)자 모양의 호석을 두른 특이한 형식이다. 봉분 앞에는 비석과 상석, 문인석이 비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봉분이 원형과는 다른 형태인데 정탁의 묘가 조선 초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형태의 봉분으로는 강화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고려 24대 원종(元宗, 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묘라든가 파주 탄현면에 있는 방촌 황희선생의 묘 역시 유사한 형태다.

비신
묘 앞에는 상석과 묘지임을 알리는 비석인 묘표
문인석

묘 앞에는 상석과 묘지임을 알리는 비석인 묘표는 정 중간에서 조금 오른편에 세워져 있다. 좌우 1쌍의 문인석은 투박하지만 옷의 선에서 부드러움과 세월의 풍화를 느낄 수 있다. 묘표는 이무기나 용을 새긴 이수부분이 없는 둥근 달의 형태를 가진 월두형(月頭形)이다. 비신에는 유명조선국(有名朝鮮國)이라는 글자까지는 보이는데 나머지 글자는 비바람에 깎여 알아 볼 수가 없다.

춘곡 정탁 묘역
춘곡 정탁 묘역 안내

춘곡 정탁 묘역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15
(경기도 지정문화재 173호-2000.6.12.)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7-31 조회수 :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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