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 (일)
역사와 전통
대한의열단 감악산 결사대 전적지
- 충혼탑, 충혼사

영화 <암살>의 모티브는 의열단의 의거였다. 의열단은 1921년 다나카 일본 육군대장저격,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등 일본군수뇌부와 도심주요 기관을 공격대상으로 삼아 일제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독립운동단체다. 이 단체의 수장은 약산 김원봉인데 백범 김구와 함께 1930년대 중국내 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다. 의열단의 흔적은 파주에도 찾아 볼 수 있다. 일제를 상대로 저항활동을 펼쳤던 의열단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번에는 결사대를 조직해 북한공산집단과 맞서 싸웠다.

1950.6.25.전쟁발발로 평화스럽던 남한 땅이 한 때 북측에 의해 점령당하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당시 감악산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현역잔류병과 파주군, 연천군, 양주군, 장단군 등지에서 모여든 반공청년들이 대한의열단 감악산 결사대를 만들어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유격전을 전개하여 많은 공을 세우는 과정에서 대원들의 희생이 따랐다.

충혼사 전경
충혼사 풍경
충혼사(忠魂祠)
위패를 봉안

살아남은 감악산 결사대원들은 희생된 동지들의 숭고한 뜻과 혼을 달래기 위해 1978년 파주군 적성면 객현리에 충혼사(忠魂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기에 이른다. 매년 수복 일인 9.28일과 현충일에는 위령제를 지냈다. 이후 38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감악산 결사대장과 생존동지들은 옛 순국동지들의 영혼을 달래는 충혼탑을 건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일의 성사를 위해 다 방면으로 노력하던 중 당시 파주군과 한국반공연맹 파주군 지부의 도움으로 1988.9.28.일 충혼탑(忠魂塔)이 세워진다.

충혼탑

충혼탑


혼탑 탑문에는 감악산결사대원 중 순국한 영령 38위의 거룩한 얼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적성면 설마리 영국군 전투비가 있는 쪽에서 설마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도로 우측 하단부에 있다. 대한의열단 감악산 결사대 전적지임을 알리는 비석과 함께 희생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충혼탑과 충혼사가 있다. 충혼탑 탑문에는 감악산결사대원 중 순국한 영령 38위의 거룩한 얼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6월을 맞이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열단이 6.25동란 때에도 감악산 지구에서 결사대를 조직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니 그 흔적들을 찾아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의 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고마운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더 되뇌어 본다.

대한의열단 감악산 결사대 전적지, 충혼탑, 충장사 :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산 10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6-5 조회수 :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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