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 (월)
역사와 전통
삼국시대의 DMZ, 임진강의 관방유적지를 찾아서...

삼국시대의 파주는 치열한 격전장이었다. 임진강과 한강유역에 나라를 세웠던 백제는 광개토대왕에게 관미성(오두산성)을 빼앗기며 400여 년간 차지했던 이 땅, 파주를 고구려에 넘기고 말았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와 433년에 나제동맹을 맺고 옛 땅을 되찾고자 절치부심하였다. 드디어 551년에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유역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한강유역을 탐낸 진흥왕에 의해 공격당하며 결국 나제동맹은 553년에 파기되었다. 이로써 백제의 옛 땅 한강유역을 다시 신라의 손에 넘기고 이 지역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 땅의 새 주인이 된 신라는 기세를 몰아 고구려를 임진강 건너 북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럼 이제 삼국시대의 DMZ, 임진강 주위에 산재한 성들을 찾아 발길을 돌려보자!

호로고루성 안내문

호로고루성 안내문

덕진산성 안내문

덕진산성 안내문

○ 시대를 뛰어넘는 전략적 요충지, 덕진산성


북한군병사가 JSA에서 총탄을 뚫고 귀순했던 작년 11월 13일, 공교롭게도 우리는 파주시청의 도움을 받아 통일대교를 건너 민통선 안에 있는 덕진산성을 찾았다.


덕진산성은 초행의 우리를 쉽게 허락하진 않았다. 안내표지판도 없고, 민통선 안이라서 네비게이션 지원도 불가능했다. 더구나 지나는 행인도 없어 몹시 난감했다. 할 수 없이 느낌으로 방향을 잡고 차를 몰았다. 가면서 몇 번을 헤매던 우리에게 살며시 나타난 안내표지는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얼마 뒤 우리일행을 태운 SUV차량은 몇 차례 덜컹거리며 산성입구 주차장까지 실어다주었다.


오른쪽으로 굽어 도는 언덕길을 따라 올랐다. 눈 아래로 초평도를 감싸 안은 임진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초평도를 가로질러 공격해오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산성이 분명해 보였다. 고구려가 남진하는 과정에서 임진강변 해발 85미터 능선에 축조한 성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최근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7호로 지정되었다.


덕진산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 내성은 수내나루 쪽으로 뻗은 능선과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외성은 내성과 연결되어 초평도 방향의 능선을 따라 축조 되었다. 고구려 때 내성 전체 600m 구간에 보루성이 만들어지고,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보축되고 개축되었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흙으로 만든 외성을 덧붙여 완성하였다. 이로써 축성기술의 시대적 변화를 알 수 있다. 임진강유역의 대부분의 성들은 삼국시대이후 용도 폐기되었다. 그러한 성들은 사람의 손길이 끊어져 세월의 풍파를 못 견디고 자연스레 허물어져갔다. 그러나 덕진산성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관계로 파주의 삼국시대 산성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편이다.

삼국시대 산성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덕진산성

 

소재지 :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13

가는 방법 : 파평면 두포리에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전진교를 건너고 민통선내로 들어가면 해마루촌이 나온다. 해마루촌을 지나 읍내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소로길로 진입하면 덕진산성이 나온다.


○ 삼국시대 치열한 영토분쟁의 현장, 칠중성

 

덕진산성과 허준묘를 둘러보고 전진교로 빠져나온 우리일행은 익히 알려진 가월리의 맛집, 000손두부집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이때 티브이에서 JSA에서 여러 발의 총격이 있었고, 민통선을 통제한다는 속보가 흘러 나왔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다행이라는 여기며 다음일정인 칠중성으로 향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칠중성은 둘레 603미터로 중성산 능선에 축성된 사적 437호의 테뫼식 산성이다.


그러나 칠중성은 현재 산성의 규모나 형태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어있다.

칠중성 안내도                   
칠중성 성곽

칠중성 성곽

해발147미터로 낮은 산, 중성산에 축성된 칠중성은 산성을 축조할만한 산세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주변이 평야로 멀리 임진강 일대가 조망된다. 누구나 이곳에 서면 왜? 이곳이 삼국간의 영토분쟁의 요충지였으며, 현재에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는 칠중성 성곽터

칠중성 전경

 

본래 이 지역은 백제의 난은별(難隱別)이었는데 고구려는 낭벽성(娘臂城)이라 하였고, 신라는 칠중성이라 하였으며 경덕왕이 중성현(重城縣)으로 고쳐 내소군(奈蘇郡 : 지금의 양주군)의 영현이 되었다. 적성현 치소의 남쪽에 있었던 성으로 토탄성(吐呑城)이라 하였다가 뒤에 중성(重城)이라 하였는데, 성의 주위가 2,000척이 넘고 성안에 우물이 있었다. 따라서 칠중성은 행정구역의 명칭도 된다. 이 지역은 임진강 중류의 남쪽연안에 자리 잡고 있어 관서지방과 서울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신라의 선덕여왕 때 이곳은 신라의 북방영토로 고구려군이 쳐들어오니 주민들이 산속으로 피하였다. 이에 왕은 알천(閼川)을 보내 칠중성 밖에서 싸워 이를 물리쳤다. 무열왕 때는 고구려군이 쳐들어와 군주(軍主) 필부(匹夫)가 전사하여 고구려에게 성이 함락되었다. 문무왕 때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칠 때 신라군이 칠중성을 쳐서 진격로를 개척하였다. 삼국이 통일된 뒤 675년(문무왕 15)에 당장(唐將) 유인궤(劉仁軌)는 칠중성의 신라군사를 쳐서 물리친 뒤 되돌아갔다. 그 해에 당병(唐兵)이 거란ㆍ말갈의 병과 더불어 칠중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또한, 이곳은 6.25전쟁 당시 영국군1개 연대가 이곳에서 중공군을 방어하다가 전세에 밀려 감악산 골짜기로 후퇴했다가 그곳에서 전멸한 영국군 전적지로도 알려져 있다.


소재지: 적성면 구읍리 산148

가는방법: 문산 연천간 37번도로 가월교차로에서 적성 감악산방향 (371번도로) 나와서 구읍삼거리를 지나 적성향교와 칠중성 안내표지판을 보고 찾아가면 나온다.


○ 호로고루성과 마주한 장좌리보루, 이잔미성

 

‘장좌리보루’ 또는 ‘남안의 호루고루’라고도 불리는 이곳, ‘이잔미성’에서 임진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면 호로고루성이 빤히 보인다.

호로고루성과 마주한 장좌리보루, 이잔미성

강건너 보이는 호로고루성

 

이잔미성 넘어 호로고루성으로 향하다보면 강폭과 바닥이 얕아 군사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임진강 여울목이 나온다. 임진강을 사이를 두고 이곳에서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성벽을 쌓고 대치했다. 이잔미성은 해발 40미터 높이의 구릉에 둘레 300미터 석축으로 쌓은 성이라고 기록에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이잔미성은 얼마 전까지 군부대시설이 들어서있어 통제되었던 곳으로 성의 흔적은 군 참호시설에 의해 철저히 훼손되어 그 형체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이곳은 적성 적암리의 아미성과 같이 비지정문화재로 분류되어 철저히 방치되고 있다. 정확한 소재지도 모르고 안내판조차 없는 형편이라 마치 어린 날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장좌리 농로길과 비포장 산길을 다니며 성벽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낮은 언덕을 넘자 임진강과 강 건너 호로고루성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필자가 찾고자 했던 이잔미성지가 맞는 것 같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길가 언덕에 쌓인 낙엽을 헤쳐 보았다. 그러자 낙엽사이로 겹겹이 쌓인 돌무더기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이잔미성 흔적

이잔미성 흔적

 

이잔미성을 둘러보고 나오는 발길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비지정문화재라도 이정표와 안내판 정도는 세워도 무방하련만...

소재지: 적성면 장좌리

가는방법: 적성으로 가는 37번 국도를 따라 가다 자장사거리에서 장좌리로 좌회전한다. 장좌리 마을 회관을 지나 삼거리 이정표가 나오면 임진강전망대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길을 따라가다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한다. 한참을 가다 좌측으로 굽은 도로가 나오면 우측으로 진입한다. 이어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 차를 정차하고 2시 방향의 군사도로 진입하면 나온다.


○ 어느 건축가 작품일까?, 아미성


연천의 수철성과 계곡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파주끝자락, 적성면 적암리에 위치한 아미성을 보려면 여간한 고생은 각오해야한다. 해발 260미터에 불과하지만 경사가 급하고 길 또한 없어 마치 약초꾼처럼 숲 풀을 헤치며 기어올라야 볼 수 있다. 아미성은 비지정 문화유적지로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방치되고 점차 훼손되고 있다.

아미성 전경

                    아미성 전경

 

아미성은 정상을 둘러 싼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300미터 높이는 5미터 남짓하다. 성벽은 북쪽정상에서 동서능선을 따라 길게 쌓았다. 동벽은 자연암벽을 이용해 쌓았는데 일부구간은 붕괴직전이다.


성벽아래는 급경사이며 계곡에는 간파천이 흐르고 있다. 성내부에는 저수시설과 건물지가 있는데 고구려의 기와, 토기조각과 통일신라전후 유행했던 인화문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미성 석벽

아미성 석벽

아미성 저수시설

아미성 저수시설

 

아미성은 고구려가 보루로 만들고 이후에 이곳을 점령한 신라가 다시 성벽을 개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좁은 협곡에 길하나만 빤히 보이는데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만큼 전략적 요충지이다. 성벽은 어느 건축가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이 조형미가 아름답지만, 일부구간은 오랜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붕괴되고 있다. 인근에서는 아미성을 할미성이라고도 부른다.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산26

가는방법: 적성 적암초등학교 지나서 아마니고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면서 통일산업 (통일레미콘)이 보이면 차를 세운다. 통일산업 옆으로 흐르는 간파천을 건너 앞에 보이는 산 정상을 향해 갈이 따로 없으니 숲을 헤쳐 가며 정상에 오르면 나온다.


참고자료:  파주이야기(이윤희,2016)         

            경기도 산성 여행: 역사의 흔적(최진연,2011)         

            파주의 문화유산(파주시)          

            네이버 블로그 ‘산성 및 읍성이야기’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

작성일 : 2018-3-20 조회수 : 2080
  • 목록으로
  • 프린트
  • 트위터
  • 페이스북

컨텐츠 만족도 조사

홈페이지내의 서비스향상을 위한 시민 여러분들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