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 (일)
역사와 전통
백제시대의 관방유적지를 돌아보다.
- 파주의 산성과 보루

임진강 유역에는 관방유적이 많다. 관방유적은 국경의 방비를 위해 설치한 진(鎭)이나 영(營), 보(堡), 책(柵) 등 군사적 목적의 시설을 말한다. 대체로 성벽(城壁) 과 군창(軍倉), 또는 봉수(烽燧) 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관방유적은 성곽(城郭)과 봉수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방어체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임진강 유역은 고대로부터 군사접경지역이어서 관방유적이 많은 편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 등이 각축을 벌였던 관방유적지를 두루 살펴보았다.

○ 파주의 산성과 보루

 

산성(山城)은 산의 정상부나 경사면에 돌이나 흙으로 성을 쌓아 적으로 하여금 힘들게 공격하게 만들고 아군이 적을 내려다보며 방어하려는 의도로 축조한 것이다. 산성은 축성위치에 따라 테뫼식과 포곡식으로 나뉜다. 테뫼식은 성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따라 테두리를 두르듯이 둘러쌓는 방식이다. 주로 짧은 시간의 전투에 이용되는 산성이다. 포곡식은 성벽 안에 계곡이 들어가게 하여 성내의 가용면적을 넓히고, 수원(水源)이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주민들이 평상시 거주하거나 지구전이 가능하도록 만든 산성이다.

파주의 산성은 대부분 테뫼식으로 월롱산성(월롱면),오두산성(탄현면),명봉산성(조리읍),봉서산성(파주읍),아미성(적성면),장명산성(교하동),칠중성(적성면),금파리성(파평면),덕진산성(군내면),이잔미성(적성면)과 육계토성(적성면)등이 있다.

보루(堡壘)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구축한 임시적인 소규모의 요새로 아차산에서 발굴한 고구려의 보루성을 살펴보면 적게는 12명부터 많게는 100여명이 묵을 수 있게 만들었다. 파주의 보루를 살펴보면 두루봉 보루(진동면),감악산 보루(적성면),파평산 보루(파평면),노고산 보루(법원읍),심학산 보루(산남동)등이 있다.

보루(堡壘)
고구려군 보루성

임진과 한강유역에 터를 잡은 백제는 개국초기부터 북쪽의 말갈족과 동예로부터 수차례 침입을 받았다.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에 한참 앞선 BC 1년에 이미 동예에게 위례성이 함락되기도 했었다. 이에 백제는 북방에 목책과 성을 쌓기 시작하는데,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축성이 가장 빈번한 국가였다고 한다. 백제 전성기 때도 상비군의 병력이 5천명에 불과했다. 이러하니 적은수의 병력으로 나라를 지키려면 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 초기백제 최전방지역의 관방시설, 육계토성

 

그러면 먼저 임진강을 차지했던 백제, 그들이 축성한 성을 찾아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적성면 주월리에 위치한 육계토성을 처음 찾았을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작년 7월 중순경이었다.

육계토성

육계토성은 임진강 남안에 위치한 외성둘레 1,945m, 내성둘레 85m가 남아있는 백제의 평지토성(경기도기념물 제217호)이다. 1996년 7월 홍수로 인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후 수차례의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백제 3~4세기의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발굴된 유물은 현재 경기도박물관(용인)에 전시되고 있다. 

육계토성 외성

육계토성 외성

육계토성 내성

육계토성 내성

학계에서는 육계토성이 풍납토성 조성시기보다 다소 앞선 것으로 추정하고 고이왕계가 머물던 하북 위례성으로 비정(김기섭,2002)했다. 이와는 다른 입장으로 입지나 성의 형태가 풍납토성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백제가 처음 도읍한 위례성을 이곳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온조 13년에 도읍을 풍납토성으로 옮기면서 육계토성을 모범으로 삼은 걸로 추정하기도 한다.(경기문화재연구원. 서울지방국토관리청,2004)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달빛길 562-85
찾아가는 방법: 문산-전곡간 37번 도로에서 적성산업단지입구를 지나쳐 바로 주월리, 가월리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와 주월리로 진입하여 한배미마을회관을 찾는다. 그곳 마을안내지도를 보고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백제 북방전초기지 관미성으로 추정, 오두산성

 

지난 2월초 여유가 생겨 점심에 탄현면 성동리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핑계 삼아 오두산전망대에 올라 오두산성(국가사적 제351호)을 찾았다.

오두산성 안내판

오두산성 안내판

오두산성 성벽

오두산성 성벽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인 파주 오두산의 정상(해발 119m)을 둘러싼 길이 1,228m의 백제시대 퇴뫼식 산성이다. 경사면이 가파르고 서쪽은 한강이, 북쪽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어 두강이 만나서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에 위치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오두산 정상에 통일전망대 시설이 들어서 있어 산성의 규모와 원형이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축조방법은 기초석 위에 5~15cm의 지대석(支臺石)을 들여쌓기를 하고 안쪽은 모두 돌로만 채운 뒤채움석 형식으로, 큰 암반을 채석으로 이용하고 그 단면을 성벽으로 이용한 고식(古式)의 성곽 형태를 갖추고 있어 백제시대 성곽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이 산성의 위치 및 산형 등 주변 지형여건으로 보아,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각미성과,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원년조(391년), 백제본기 아신왕 2년조(393년) 등에 나오는 백제 북방 전초기지의 관미성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있고,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오두산성을 백제의 관미성이라 기록하고 있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9
찾아가는 방법: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전망대 주차장 왼편 경사면에 있다.


○ 한성백제시대 임진강을 통제하던 주성, 월롱산성

 

하루에 한번 정도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던 월롱산. 추위가 다소 누그러진 날을 택해 월롱산으로 향했다. 문산제일고를 지나 두문리로 좌회전하여 월롱산 고개로 향하다보면 월롱산성지 이정표가 보인다. 차를 공터에 세워놓고 월롱산 정상을 바라봤다.

월롱산성

정상부근은 암벽들이 많아 진입로가 아니면 쉽게 오를 수가 없다. 정상에 오르니 파주 일대가 조망되는 천연의 요새임을 알 수 있었다.

월롱산성 암벽

월롱산성 암벽

월롱산성 내벽

월롱산성 내벽

 

 

경기도기념물 196호로 지정된 월롱산성은 그동안 문헌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음이 보고되었으나 구체적인 산성의 규모와 실체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박물관의 학술조사에서 월롱산성이 임진강과 한강 하구지역을 통제하던 초기 백제의 주성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은 월롱산의 정상부와 9부 능선상에 축조되었는데 현재 성벽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벽은 북동쪽으로는 20미터의 자연절벽을 이용한 천연지세를 갖추고 있으며 동남쪽은 산의 경사면을 이용하였는데 군사용 참호시설이 성벽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현재 내벽의 대부분은 정연한 석축형태를 보이지 않고 일부 석재만이 노출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 서남문지, 서북문지, 북문지가 확인되며 동문지와 북문지를 제외한 서남문지와 서북문지는 자연암반을 계단 모양으로 깎아 내면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산 정상에는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등산객들이 수시로 월롱산을 찾고 있어 주민들의 체육 및 휴식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 138
찾아가는 방법: 문산제일고를 지나 문산방향으로 진행한다. 두문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월롱산로(363번 도로)를 따라 월롱산 고개 근처 “월롱산지” 이정표를 따라 진입한다.

 

 

시민기자 : 김명익 시민기자

작성일 : 2018-2-27 조회수 :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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