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목)
역사와 전통
파주와 인조와의 인연
- 병자호란과 파주 충신열녀 유적

인조 14년(1636)의 병자호란 시 조선은 청에 굴복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인 부녀자들이 인질로 잡혀갔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부녀자들은 청병들의 수발을 드는 등 정절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는 속전(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을 바치고 살아 돌아온 경우가 있었지만 기쁨도 잠시 그 후에는 절개를 지키지 못 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실절한 아내나 며느리와는 살기도 어렵고 나아가 지엄한 조상들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봉서리 열려문1

봉서리 열려문

봉서리 열려문2



대명률(조선시대 현행법·보통법으로 적용된 중국 명나라의 형률서)을 그대로 적용한 조선시대에 법정이혼 사유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었다. 칠거지악은 불효, 무자식, 음란, 투기, 악질, 다언, 절도를 말한다. 칠거지악 중 오늘날 재판상 이혼사유인 민법 제840조 1호 ‘배우자의 부정’에 해당하는 것이 ‘음란’(淫亂)이다.


당시 ‘음란’은 배우자의 부정행위에만 한정하지 않았으며 배우자의 정조의무를 폭넓게 인정하는 개념이었다. 이런 사실은 태종 17년 11월 3일자에 나오는 유복중이 아내 옥생(玉生)을 버린 실록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복중이 헌부에 고한 이유는 아내 옥생이 5촌 숙(叔) 김사문과 수차례 윷놀이를 하고 한 방에 함께 누워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임금은 옥생의 처신이 남녀의 분별을 어지럽혔다고 보아 김사문에게 장(丈) 80대를 치고, 옥생은 장 80대를 받았다.


사대부 양반들은 병자호란 뒤에 고향으로 돌아온 부인을 상대로 임금에게 이혼을 청구하는 사건을 수도 없이 올렸으며 이 문제로 대신들이 다투는 편전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이혼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명료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오랑캐의 포로가 되어 실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결하는 방법뿐이었다. 조정에서도 정려(旌閭)라고 해서 목숨을 끊어 정절을 지킨 부녀자들을 열녀로 칭하고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을 했다. 


이에 대해 주화파의 수장 최명길은 그 당시 실절이 부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ㆍ국가적인 것이었기에 통상의 실절과는 동일하게 다룰 수 없다며 이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임금은 몇 가지 불가피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혼을 불허했고 불만을 품은 사대부들은 돌아온 아내가 있는 처소를 찾지 않고 첩을 두거나 다른 곳을 떠돌아 사실상 별거를 함으로써 이혼을 강제했다. 파주에는 이 시기에 죽음을 택해 정조를 지킨 열녀들을 추모하는 열녀문과 편액, 무덤들을 볼 수 있다. 


봉서리 열려문3

봉서리 열려문

봉서리 열려문4



먼저 파주읍 봉서리 충신열녀문이다. 이곳은 임진란 때 양주목사겸 양주진병마 첨절제사로 활동하다 순국한 충신 김복경과 그의 처를 칭송하는 충신열녀편액이 봉안되어 있다. 김복경의 처 신평송씨는 병자호란 때 삼각산 기슭에 피난하던 중 청군에 잡히자 그해 12월 10일 자결했다. 인조는 그 후 3년 뒤인 1639년(인조17년) 송씨 부인의 정절을 표창, 열녀로 봉안하는 한편 ‘열녀 통덕랑김검처 공인 신평송씨지려’ 란 현판을 내렸다. 정각 안을 들여다보면 우측에 충신 김복경, 좌측에 열녀 신평송씨의 편액이 봉안되어 있다.


이세령 열려문 1

이세령 열려문

이세령 열려문 2


충신 열녀 정려편액


이세령 열려문 4                    

 

운정 호수공원에는 전주이씨 상원군 이세령 가문 충신 열녀정려편액이 봉안되어 있는 ‘충렬의 집’이 있다. 이곳에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분신자살한 충신 상원군 이세령과 뒤를 이어 순절한 상원군 모친 상주김씨, 부인 문의조씨, 제수씨인 청주한씨 등 4인의 충신 열녀정려편액을 모셔져 있다.       


윤선거와 처합장 묘1

윤선거와 처합장 묘


윤선거와 처합장 묘2


또한 병자호란 때 윤선거(1610-1669)의 처 공주이씨 역시 자결했다. 남편 윤선거는 1633년(인조11) 생원ㆍ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두 차례의 호란을 겪었다. 김집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시열 등과 교류한 성리학의 대가로 사후 1710년 숙종 36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된 인물이다. 윤선거는 병자호란 당시 그해 12월 강화도로 들어가 적과 싸웠고 이듬해 강화가 함락되자 그의 아내 공주이씨는 자결했다. 공주 이씨의 묘는 현재 탄현면 법흥리에 윤선거의 묘와 합장되어 있다.


인조시대의 충신열녀유적


봉서리 충신열녀문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산 94-1    

이세령가문 충신 열녀정려편액 봉안 충렬의 집
파주시 교하읍 야당리 산 341-1

윤선거와 처 공주이씨 합장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307-1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7-12-12 조회수 :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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