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목)
역사와 전통
파주에서 100년 이상된 신앙의 흔적들을 찾아
- ‘갈곡리공소, 문산교회, 검단사’ 종교시설 탐방기 -

파주는 고려시대 때 송도에 가까웠고, 조선 광해군 때는 기운이 쇠한 한양땅을 버리고 파주의 교하(交河)로 도읍을 옮기자는 교하천도론(交河遷都論)이 제기되어 길지(吉地)로 주목받았던 고장이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다. 파주의 속살을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곳이기도 하다. 하여 파주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종교시설이 있을까를 고심하며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다.


고심끝에 탐방지로 결심한 곳은 세 곳. 천주교는 갈곡리공소, 개신교는 문산교회, 불교는 검단사가 바로 그곳이다. 성장과 발산을 쉼없이 하던 한 여름의 푸르른 수목은 어느새 고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에 삶의 경건함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본다.



갈곡리공소(葛谷里公所)
 
공소(公所)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의 단위교회로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신자들의 모임이다. 갈곡리(葛谷里)는 옛날 칡이 많던 곳으로 칡의 계곡(葛谷)으로 불리었고 순수 우리말로 칡의 마을을 뜻하는 칡울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공소’라고 하였다. 이곳은 문산에서 동쪽으로 12km, 의정부에서 서북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의정부 방향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다 보면 적막한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을 여러 굽이 넘어야 하는 험한 곳이기에 20여명이상 모여야 넘을 수 있다 해서 예로부터 스르내미(스물넘어) 고개라 불렀다.



갈곡리 공소는 19세기말 홍천과 인근 풍수원 등에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이들이 정착해 살면서 교우촌으로 형성된 경기북부지역 신앙의 요람과 같은 곳이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공소 교우들이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공소회장(公所會長)을 중심으로 성찬이 빠진 단순화된 예절(公所禮節)만이 행해지지만 이곳에서는 매월 둘째 일요일 오전 9시가 되면 법원리 성당에서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드린다.



현재 인근에 거주하는 20명 정도의 신자가 미사에 참석하지만 일제 때는 제법 큰 공소로 알려져 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방문 시 시복식을 앞두고 순례지를 정할 때 의정부교구에서는 마재성지, 주교좌의정부성당, 행주성당과 더불어 이곳 갈곡리 공소를 순례지로 정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 갈곡리는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그는 1914년 갈곡리에서 출생하여 한국 최초로 성직 수도자 출신 사제가 되었으며, 1950년 1월 9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자 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이북으로 끌려가 평양 인민교화소에서 매를 맞고 순교했다.



공소 마당 입구에는 키가 큰 마리아 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는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던 공소를 1955년 1월 9일 미 해병대 군종신부 마 에드워드의 주도와 한국 해병대 김다두 신부의 협조로 건축되었는데 1978년 3월 갈곡리 교우들이 이를 기념하며 비를 세운 것이다.



마을에는 20가구에 3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거의가 다 노인들이다. 공소는 평지에 서양식으로 지어져 있고 주변은 산으로 병풍을 둘러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때마침 부근에서 청소하고 있는 마을이장을 만나 공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곳 주민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드(C.F Reid) 선교사와 문산교회(汶山敎會)
조재구(55세) 장로와 통화후 문산 시내에 위치한 문산초등학교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교회 부근에서는 들어가는 초입이 좁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문산1리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산예배당의 모습은 문산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보고 있어 꽤나 인상적이었다. 외양은 빨간 벽돌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정상에는 예수가 쓰는 면류관의 형상으로 마감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장로교 초기 교회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으로 교회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문산교회는 미국 남감리회의 첫 선교사로 1895년 10월에 내한한 뉴욕 출신 리드(Reid, C.F. 한국명 李德)목사에 의해 세워졌다. 리드목사는 1895년 8월에 신사유람단의 일행이며 한국최초의 남감리교회 교인이기도 했던 윤치호(1865-1945)의 한국선교 요청에 따라 배편으로 인천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초기 조선에 들어 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많은 전도운동을 펼쳤다. 대표적으로 1903년 원산, 1907년 평양 대부흥에 이어 1909∼1910년간의 이듬해 펼친 ‘백만인구령운동’(Million Souls Movement)이 대표적이다. 100만명의 신자를 확보하자는 이 전도운동은 리드 목사를 포함한 남감리회 개성선교부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산교회 초입에 들어서면 2001년 문산교회와 남선교회 회원들이 문산교회가 감리교에서 장로교로 이속된 이후 100년이 된 날을 기념하며 세운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기념비에는 1897년 감리교 선교사 리드의 전도로 한홍식(韓弘植)이 신자가 되어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 후 1901년에 장로교와 감리교들이 교회의 구역을 정하는 장감분계를 정할 때 감리교회였던 문산교회는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선교사의 구역에 이속(移屬)되어 장로교회가 되었고, 당시 조사(助事) 최덕준(崔德俊)이 시무하였다고 조선예수교 장로회사를 인용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예배당 건축은 몇 번의 전기를 맞는다. 1909년 당시 문산리 70번지에 예배당을 지었으나 6.25 전쟁때 예배당이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1954년에 천막교회로 재건하였고, 1955∼1956년간에는 다시 적벽돌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그후 교세 확장에 따라 1984∼1986년 기존의 대지 위치에 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장년과 교회학교를 합해 800여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천년 고찰 검단사(黔丹寺)
문산교회를 뒤로 하고 문산IC를 나와 뻥 뚫린 자유로를 달렸다. 시커먼 속살을 드러낸 한강 하구에는 한 떼의 철새들이 몰려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검단사 입구가 가까워지자 왼편으로는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정문이 있었고, 오른편 위로는 통일전망대가 보였다.



사람들은 이곳에 천년고찰 검단사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얼마 전 탄현 살래길을 걷다가 검단사의 존재를 알았다. 이곳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하여 조강이 되어 유유히 서해로 흘러가는 모습과 일몰을 바라보는 일은 실로 장엄하다.



가는 날은 마침 주지 스님이 출타 중이었고 사무장이 한가로이 경내를 쓸고 있었다. 무심해 보이는 그의 빗질은 구도자의 수행처럼 보였다. 검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문성왕 9년인 847년 혜소(慧昭)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검단사라 이름 붙인 것은 혜소 스님의 얼굴이 검어 흑두타(黑頭陀) 또는 검단(黔丹)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에서 유래한다.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인조대왕과 인열왕후를 모신 합장릉인 장릉(長陵)이 오랜 침묵 끝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인조대왕의 첫 번째 비인 인열왕후 한씨가 생전에 다녔던 절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제향에 쓸 두부와 같은 것을 원찰인 검단사에서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입구에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채 앞에 파주시가 보호수로 지정한 300년 된 느티나무가 웅장하다. 요사채 정면 우측 편에 법화전(法華殿)이 있고 계단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무량수전(無量壽殿)과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나온다. 원래는 법화전 있던 곳에 암자만 있었던 것을 근래에 와서 새로 지었다. 이곳에는 108기의 납골시설이 있으며 이북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만큼 실향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살래길은 이곳 검단사 바로 아래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차를 주차하고 들머리에서 10분도 채 못가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되는 지점의 광대한 하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S자 곡선을 그리며 서울을 향해 쭉 뻗어 있는 자유로와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풍요로운 파주 들녘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야간에는 가로등과 차량의 불빛이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파주는 비무장 지대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땅이 아니다. 도처에 오랜 역사적 전통과 흔적들이 산재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어려운 때에 견딜 수 있도록 위로해 주고 든든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던 신앙의 요람들이 있다. 실제로 여기서 소개된 곳 보다 더 훌륭한 신앙의 명소들이 파주에는 많다. 다만 이번에 소개한 곳들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나 비교적 접근하기가 수월한 근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소개 되었을 뿐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런 곳을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일상사가 답답해질 때 존재의 이유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갈곡리 공소
- 주소 : 법원읍 화합로 416번길(갈곡리 182)
- 법원리성당 : 031-958-0811


문산교회
- 주소 :  문산읍 독산로 35번길 26(문산1리 95-39)
- 연락처 : 031-952-1488


검단사
- 주소 : 탄현면 필승로 292-33(성동리 689)
- 연락처 : 031-949-8729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6-10-30 조회수 : 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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