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7일 (일)
역사와 전통
46년만에 다시 열린 장릉
- 왕릉에서 인조를 만나다 -

병자호란과 인조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하는 길이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김훈, 남한산성, 2011, 학고재)


인조 임금은 1623년 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의 중립 외교정책 대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추진하면서 청의 침입을 받는다. 12만 대군을 이끌고 청 태종이 침입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들어갔다. 조정은 허구한 날 죽을 각오로 맞서 싸우자는 주전파와 화친을 맺어 살 길을 마련하자는 주화파가 싸웠다. 날이 지나갈수록 인조는 항복을 할 것인가 남한산성에 남아 싸우다 죽을 것인가를 결단해야 했다. 결국 인조는 47일만에 남한산성 북문으로 나가 현재 송파구 석촌동 부근 삼전도에서 청 태종인 칸에게 삼배구고두(三排九叩頭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청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50만이나 되는 조선의 부녀자들을 심양으로 끌어가기도 했는데 청나라로 끌려갔다 조선으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의 처리는 조선 정권을 흔드는 문제였다. 굴곡 많은 삶을 감내해야 했던 인조. 그를 만나러 파주 장릉으로 향했다.



파주 장릉과 제향
지난 6월 17일 파주 장릉이 46년만에 개방했다. 파주 장릉은 조선 제 16대 인조(仁祖)와 왕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韓氏)를 합장한 일봉이실(一封二室)의 합장릉(合葬陵)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203호로 지정됐다. 애초 파주 운천리에 조성됐으나 뱀과 전갈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1793년(영조 7)에 현재 위치인 탄현면 갈현리로 이전했다.


정문입구를 들어서자 홍살문에 이르는 황토 길이 시원스런 녹지 속으로 나 있어 도시 생활에 찌든 마음이 뻥 뚫리는 듯 했다.



그 길을 따라 장릉 개방을 기념하는 행사로 ‘왕릉공감-세계유산 조선왕릉’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조선왕조 각 왕릉을 사진과 글로서 설명해 걸어가는 동안 왕릉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어 재미가 쏠쏠했다. 장릉을 돌아보는 동안 다른 왕릉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쌍릉 이었던 장릉은 영조 대에 이곳 갈현리로 오면서 합장릉의 형태를 갖추었다. 장릉은 왕릉으로써 갖추어야 할 격식을 제대로 갖춘 표준릉이라는 말 대로 격식이 잘 갖춰진 능이었다. 능 주변을 둘러서 능을 향해 인사하듯 호위하고 있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의 위엄이 대단했다.



봉분을 둘러싼 곡장이 봉분 앞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돌로 옹벽을 만든 다음 튼튼히 쳐져 있었으며 봉분 좌우로 호석과 혼유석이 있고 그 앞으로 명등석과 문인석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봉분을 두르고 있는 12면의 병풍석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위주의 12지 신상의 문양들이 아니라, 목단과 연화문양과 마치 바다 꽃게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어 특이했다. 17세기 조선 중기의 석조문화의 특징이겠지만 본 기자에게는 많은 풍파를 겪은 인조를 특별히 위로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능 하단 부로 내려와 비각이 있고 비각 앞에는 정자각이, 정자각 앞 좌우로 수라간, 수복방의 구조가 있었다. 다만 현재 수라간 공간은 바탕석만 있고 올해 11월 완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은 돌로 신이 다니는 향로와 왕이 다니는 어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취재하면서 향로로 다니다가 그곳은 아무나 다니는 길이 아니라고 관계자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정오 장릉 제향이 열렸다. 제향은 규정에 따라 격식을 갖추어 거행하는 제왕과 왕후의 제사를 말한다. 조선의 제향은 종묘사직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행사였다. 한 나라를 다스렸던 제왕과 왕후 사후에 엄격한 형식을 갖춘 제사를 백관들과 백성들 앞에서 행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효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교육했다.




이날 행사는 전주 이씨 종친 연평대군파 종원들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제향을 지켜보기 위해 참석한 시민, 취재진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본 제향에 앞서 11시 40분경 전향례로써 재실에서 오사모를 쓰고 천담복을 입은 제관(祭官)과 참반원이 축문을 들고 재실을 나와 장릉 홍살문으로 들어서는 것으로부터 제향이 시작됐다. 왕릉 앞 정자각에서 전향례와 집사자 국궁시배를 하고 진설상에 제물을 진설해 올렸다. 그 후 청주(淸酒)로 헌작했다.



파주 장릉은 오늘 제향을 시작으로 그동안의 오랜 침묵을 깨고 일반에게 개방됐다. 파주 장릉은 1970년부터 왕릉의 보호라는 이유로 비공개 되어왔으나 시민들의 개방 탄원서 제출과 지속적인 개방 건의를 통해 결국 공개 됐다.


46년 만에 파주 장릉을 만나볼 수 있었던 건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여러 가지 개선해야할 점도 보인다. 파주 장릉 개방을 기다려온 많은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찾기 어려운 도로 안내판과 협소한 진입로와 주차장, 휴식공간이나 화장실 등 부족한 편의시설은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축제나 행사 등도 열어 더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 개방시간
- 2월 ~ 5월, 9월 ~10월 : 09:00~18:00
- 여름철(6월 ~ 8월) : 09:00~18:30
- 겨울철(11월~1월) : 09:00~17:30
- 정기휴무일 : 월요일


※ 시범개방기간동안 관람료 무료 / 파주 장릉의 관람은 대략 1시간 정도 소요


○ 찾아오는 길
- 소재지 :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 지하철 : 경의선 금촌역 1번 출구 → 900번 버스, 33번·36번 버스 이용. 버스 정류소의 명칭은 인삼 사우나(장릉삼거리)에서 하차 도보 20분 내외
- 승용차 : 자유로 → 성동IC → 시그네틱스 → 파주장릉


○ 주의사항
주류, 음식물 반입금지, 애완동물 입장금지, 놀이 및 운동기구, 악기, 확성기 사용금지, 식물 및 열매채취금지, 흡연 인화물질 반입 금지


○ 문의 :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서부지구관리소 941-4208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6-06-20 조회수 : 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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