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 (수)
역사와 전통
경의선 이야기
경의선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도로서 별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에 신설된 역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생기면서 파주 지역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최근 일제시대에 건립된 금촌역사가 전철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역사를 고가철도로 이전하였다. 평상시 경의선의 파주 구간 역사자료를 정리하겠다고 미루다가 다른 역도 옛날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경의선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 본이 그 해 2월 21일 서울∼의주(499.3km) 간 군용철도 목적으로 군용철도감부에서 부설하였으며 나중에 한국주재 일본군사령 관 예하에 전속시켰다.

1906년 4월 3일 용산∼신의주간 철도가 완전 개통되었고 같은 해 9월 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 되었다. 1908년 4월 1일무터는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 발하여 농촌은 공동화되었으며 1906년 5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지나는 지역 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까지 개탄했다.

일본은 이런 침탈 이외도 당시 철도역 부지를 넓게 책정하여 그 일대의 조선 농민을 내 쫓은 후 일본인들에게 싼 값에 넘기고 철도역 주변에 새로운 도로와 관공서를 세워 교통중심지로 만들어 일본인들을 돈방석에 앉게 하였다.

파주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 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으며 1956년5월11일 교하읍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년 9 월 1일에 월롱면 위전리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되 었다. 파주역 개설 당시 위치 선정에 따른 주내면(현재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과의 대립이 치열하였다. 그런 중에 1965년 월롱면 위전리 주민 윤태영씨는 철로에 발을 묽고 런닝 셔츠를 흔들어 기관차를 세우려다 실패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이렇게 양쪽 주민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자 월롱면 위전리와 파주읍 봉암리 주민 모두가 이용하기 불편한 중 간 지점에 역사를 개설하게 되었다.그 후 1998년에 파주 시가 예산을 부담하여 기존의 파주역을 폐쇄하고 월롱면 위전리 면사무소 앞에 월롱역과 파주읍 봉암리에 파주역 을 각각 신설하게되었다.

1936년도 서울(당시 경성)행 열차는 장단에서 20 :29분, 문산 20 :49분, 금촌 :21:00에 각각 출발하여 서울역에 21:50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며 1977년에는 문산 발 서울행은 새벽5시 열차를 첫 차로 05 :50분, 06:40분, 07:10분, 08:20분에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을 위 한 통근열차로 배차하였다. 그 시간 후에는 1시간 간격으 로 배차하였으며 21 :20분이 마지막 기차였다.

1960년대에 경의선 기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 농촌 에서는 직접 경작한 농산물을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만 큼 포장하여 아침 첫차를 타고 서울역과 용산 등에서 노 점 판매하거나,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빼낸 미군물자 수 송을 위해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불법으로 유출한 미군 물자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의자 아래나 선반에 감추는 등의 다양한 행태가 유 행한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말 당시 학생들의 기차요금은 일반 버스보다 저렴하여 당시 자장면이 1그릇 에 30원일때 학생 요금은 한 달에 200원 정도였으며 서울을 통학하는 학생들은 새벽에 아침을 먹고 버스나 도보로 역까지 와서 기차를 이용하였다.
경의선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 난 1951년 6월 12일 운행이 중단되 어 문산역이 종착역이 되었으며 철 도중단점이라는 간판이 민족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철도 중단점 을 임진각 관광지로 옮겨 관광객들 이 기념촬영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 다.

그러나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진행 되면서 1992년에는 남북 기본합의서 에 남북철도 연결을 명시하였다. 2000년 7월 1차 남북장관급 회담때 에는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그해 9월에 임진각에서 경의선 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그 후 2002년 9월 경의선 연결공사가 착수되고 2003년 6월 군사분계선 철로가 연결되었으 나 핵문제 등 북미 관계 악화로 무산되었다.
 
남북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5월 군사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운행이 중 단된지 56년만에 열차를 시험운행 하였고 7개월 후 2007. 12. 11일에는 개성공단의 자 재와 생산 물량의 수송을 위해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을 시작하므로서 경의선의 유럽 연결을 위한 첫 걸음을 나서게 되었다.
경의선 전철복선화 사업(용산 ~문산)은 서 울의 북서부 위성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복 선 및 전철화 하는 사업으로 2009년 6월 개통을 목표로 철로 공사를 마치고 현 재 역사와 전기 등의 공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당초 2007년말 성산~문산(39.6 ㎞) 구간을 우선 개통해 대곡역에서 서울지 하철 3호선, 성산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시 킬 계획이었으나 고양시 구간의 지하화 요 구로 지연되다가 2005년 지상화구간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기로 합의하고 다시 재착공에 들어 갔다.
전철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급행열차가 운행되어 서울구간 4개역, 고양파주 구간에 4개역에서 정차하고 문산 ~용산 까지는 약40분이 소요되며 6 ~8분 배차 간격으로 운행될 계획이어서 역사 주변이 아파트단지 등으로 집중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양시 지역의 일산역을 지나 파주 지역에서 처음 정차하는 운정역( 雲井驛)은 행정구 역상 교하읍 야당3리로서 옛날 이 지역에 샘이 잘 나오는 우물 아홉 개가 있어 구우물 이라고 불려 왔었는데 구름우물로 잘 못 불려져 운정으로 역 명칭이 되었다고 하며 이 지역은 수렁 논과 우물이 많아 안개가 자욱하였다고 전해 온다.
현재 운정 역사는 한국전쟁 직후 건립되어 외관과 형태는 전형적인 옛날 역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증기 기관차 운행 시절 열차에 물 을 공급하기위한 소규모 급수탑이 아직 남아 있다. 이 역사의 관리는 민간인에게 위탁되어 열차권 판매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지역 주변에는 상지석리와 와 동리가 있고 고양시와 경계 부분에 위치하면서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2003년부터 교하신도시가 조 성되면서 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으며 내년 3월부터 입주하여 2013년 완공되면 8만세 대 22만명 규모의 신도시로 10년전 파주시 규모의 도시가 추가로 생기게 될 것이다.
운정역에서 3.3km 북쪽으로 금릉역( 金陵驛)이 있다. 금릉역이 위치한 곳은 금촌동 563-1번지로서 역의 명칭인 금릉동은 이 곳에서 1km 이상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자연부락명인 새꽃마을(신화동, 新花洞)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역은 금촌택지지구 조성에 따라 지역 주민의 교통 편의를 위해 2004년 10월 임시 승강장을 신설하여 운영하다가 2007.10.1일부터 간이역으로 지정되어 한국철도유통 직 원이 승차권 발매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금촌역( 金村驛)은 금릉역에서 1.5km 북쪽 금촌동 329번지에 위치하며 1906. 4. 6 개 소하였다가 지난 2008. 4. 17일에 고가철도로 이전하여 현대식 전철 역사로 바뀌었다. 현재 기존 역사는 철거되고 역광장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금촌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역사 개울 건너 북쪽 방향의 마을로서 원래 '새말'이었으 나 철도부설 당시 일본인이 '쇠말'로 들어 금촌역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현재는 파주 의 중심 지역으로 파주시청을 비롯한 중요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는 미군부대 주둔으로 경기가 활성화 되면서 고양시까지 관할하는 파주세무서가 있었다.
월롱역( 月籠驛)은 금촌역에서 4.1km 북쪽 월롱면 위전리 355번지에 위치하며 1998.1.17 지금의 신역사로 개소하였다. 철도 역사 유치를 위해 1965. 8.10일 이 곳 주민 윤태영씨가 철로에서 사망한지 33년만에 월롱 역사가 신설된 곳이기도 하다.

역사 주차광장 앞에는 작품명 "대한민국"이라는 태극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이 작품 은 오석과 화강석으로 민족의 상징인 태극을 표현하여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기원하 고 있다.

월롱역은 통일로와 인접하고 인근에는 2006년 4월에 준공된 LG필립스(현재 LG디스플 레이) 공장이1,697.5천 ㎡ (약50만평)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협력단지가 조 성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파주시에서는 금촌역과 월롱역 중간에 위치한 영태리 에드워드 미군부대 자리에 이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이대역사를 신설하기 위해 타당성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월롱의 지명은 지대가 높다는 뜻의 '다락'이 '다랑'-'다롱'-'월롱'으로 음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월롱역에 위치한 위전리( 蔿田里)는 마을 앞 문산천 주변에 갈대가 많 이 있었는데 이 갈대를 베어 내고 마을을 만들었다하여 마을명칭이 되었다. 근처에 금 강산랜드가 위치하여 사우나 및 골프 이용객이 많이 찾아 오고 있다.
파주역( 坡州驛)은 월롱역에서 2.3km 북쪽인 파주읍 봉암리 516 -3번지에 위치하며 역 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이용 승객은 이지역의 봉암리 주민 보다는 2 ~3km 떨어진 파주 읍사무소 소재지 인근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경의선 전철화 사업으로 추진되는 역사의 공사가 한창이며 이 역의 명칭도 봉암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파주역이 위치한 봉암1리는 '주라이'또는'주라위''줄아위'라고도 불리는 마을 로서 근처에 있는 줄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마을 명칭이 '현암동', '줄바위'로 불리기도 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봉현리와 현암리 이름을 따와서 봉암리( 烽岩里) 가 되었다.
문산역( 汶山驛)은 파주역에서 4.5km 북쪽인 문산읍 문산리 17번지 위치하고 1906년부 터 이용되던 역사는 2001년에 경의선 전철 복선화 사업에 맞추어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 원래 문산역은 구도로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새 역사를 통일로 방향으로 조 금 옮기면서 현재 역사 앞으로 시가지를 우회하는 4차선 도로가 신설되었다.

문산역 1층에는 다른 역에서 보기 힘든 TMO (Transportation movement office)라는 사 무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이 TMO는 군병력 및 군수물자의 수송을 관리하는 곳으 로 주로 휴가 장병이나 출장 군인에게 열차 이용을 안내하고 있다.

문산은 임진강과 연결되어 수운의 중심지로서 삼국시대에는 술이홀현과 서원군 원평 도호부 청사가 선유리 문산동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며 사목리 포구를 통하여 장단을 왕래 하였었다.

그 후 임진강의 강 흐름이 변동되자 지금의 문산읍 하동(문산역 쪽은 문산상동으로 불렸다)에 포구를 설치하여 풍덕, 김포,강화,고랑포,연천,송도와 한양 등의 지역을 황 포 돛배로 연결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문산이 발전되었고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파 주군청이 소재했었다.
문산역 앞 시가지 수해 기념 조형물 최근에는 월롱의 LCD산업단지와 연계한 첨단산업단지가 당동리에 64만1000 ㎡, 선유리 에 131만2000㎡ 규모로 조성되고 대규모 아파트가 선유리에 집중적으로 건립되어 획기 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

문산이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홍수가 나면 임진강으로 흙탕물이 내려가다 서해의 조수에 밀려 더러운 흙탕물이 이 곳에 산더미처럼 밀려왔다고 하여 문산( 汶山)이라 하 였으며 이지역을 문산개나 문산포라고도 불렸다. 이곳의 물맛은 서해 바닷물의 영향으 로 짜고 맛이 없어 일제시대에는 물을 사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문산역사 주차광장 맞은 편 소공원에는 작은 기념조각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하단에 '이 지역은 '99년, '96년 2차례에 걸쳐 침수되었던 곳입니다. '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금속으로 조각된 상단의 초승달 모양은 수해와 연관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문 산역 맞은 편 시가지는 철도부설 당시에 형성된 주택가 골목이 큰길에 이어져 있으며 아직 기와집으로 남아 있어 그 옛날의 번성하였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운천역( 雲泉驛)은 2004. 10.31 문산 역에서 북쪽으로 3,7km인 문산읍 운 천리에 임시 승강장으로 신설되었으 며 주변에 큰 마을이 없어 이용객은 많지 않다. 운천이라는 명칭은 산골 짜기에 구름이 돌아가고 여러 곳에서 많은 샘이 솟아나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임진강( 臨津江)역은 2001. 9.30 운 천역에서 2.3km 떨어진 문산읍 마정 리에 신설되었고 남한에서 민간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경의선의 마지막 역이기도 하다.
이 역은 파주시가 운영하는 임진각 관광지와 인접하여 서울이나 일산에서 이 곳을 방 문할 때 많이 이용하는 기차역이기도 하며 이 곳에서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역을 왕 복하는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임진강역 지붕 위로는 자유로 고가차도가 지나가고 있지만 승강장은 현대적이고 쾌적 하게 지어져 마지막 역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승강장에서 북쪽으로 조 금만 올라가면 임진강 철교가 있으나 군초소가 있어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임진강이라는 명칭은 고구려때 임진강 지역이 진임성현( 津臨城縣) 또는 오아홀(烏阿忽)로 표기되어 있고 신라 경덕왕때 임진현으로 바뀌면서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임진성이 있어 그 지명을 따서 임진강이라고 불린 것으로 생각되며, 백제시대 초기에는 임진강이 굽이가 많다고 하여 임진강 상류를 칠중하, 호로하로 삼국사기에 표기하고 있다.

임진강역 역사 옆에는 크기가 2미터나 되는 원형 화강석에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박 봉우 시인의 '휴전선'이라는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 시와 임진강에서 불어 오는 강바 람으로 인하여 이 곳이 휴전선과 인접한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시는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향한 ......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라면서 분단의 현실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도라산( 都羅山)역은 경의선의 최북단역으로 임진강역에서 3.8km 떨어진 민간인통제구 역 장단면 노상리 555번지 위치하고 2002. 4.11일에 신설되었다. 2002. 2.20일에는 미국의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방문하였고 서울에서 56km, 평양에서 205km 거리에 있으 며 이 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임진강역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고 헌병의 검문을 받아야 기차를 탈 수 있다.

도라산역 관광은 승강장과 역사 주변으로 제한되고 역 방문 기념 스탬프도 비치되어 있으며 제3땅굴과,도라산전망대, 통일촌, 허준선생묘를 운행하는 연계관광 코스를 이 용할 수 있다.
도라산의 명칭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의 송도를 찾아 항복하고 장단읍 내 뒤 백학산 서맥령의 도라산(156m)에 암자를 짓고 머물면서 조석으로 신라의 도읍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불리워 졌다고 한다.

도라산역 1.6km 북쪽에 장단( 長端)역이 있었으며 현재는 승강장에 설치된 경계석과 한국전쟁 당시 탈선된 장단증기 기관차가 50여년 동안 분단의 상징으로 있다가 2007년 복원을 위해 문산읍 임진각 관광지에 옮겨 놓으면서 비워진 자리(37 "54'15.59'N, 126"41 '33.68'E)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곳에 있던 장단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 31일 개성을 출발, 서울로 달리던 중 공습으로 탈선하였고 객차 없이 길이 15m, 폭 3.5m, 높이 4m 크기인 화통만 남아 있었 다. 도라산 OP를 찾는 방문객에게 분단의 상징으로 설명되었고 2004년 12월에 장단역 사와 함께 근대문화재로 등록 되었다.

지금의 장단역사는 그 옛날 마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름모를 잡초가 자라 고 고라니가 때 없이 노닐고 있는 한적한 곳 이기도 하다. 7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려 쪼이는 이 곳을 보면 그 시절 기적소리가 때때로 들리는 착각이 든다.

철도가 처음 운행되던 시대에는수송수단이 별로 없어 철도는 상당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교가처럼 노선별로 철도가라는 것이 있었다. 작곡가와 시기는 미상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 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경의선가 25절에 파주 구간은 6절과 7절에서 파평산과 문산포구, 화석정 등이 소개되고 있다. 내용중에 죽립석은 광탄면 용미리의 석불입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하 고 문산 포구에는 배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6.一山의 古陵을 멀리拜觀코
坡平山竹立石金村서 보아
순식간에 汶山驛 당도해보니
商船의 돛대가 浦口에 가득

7.臨津江鐵橋越便花石亭 거쳐
長端驛 잠간 쉬어 開城이르니
市街의 번화함과 物貨의 繁昌
경성을 떠난후로 第一이로다

경의선과 관련된 자료를 찿다가 우연히 '1937년 5월 파주군 금촌역앞 난장'이라는 제 목의 흑백사진을 발견하였다. 배경에 있는 뒷 산이 많이 본 월롱산이고 논과 벌판 지 나 가옥들은 새말이나 문산제일고 방향이라고 생각되었다.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금 촌 시가지로 나갔으나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가려서 월롱산은 보이지 않았으며 고가철로에 입주한 금촌역에서도 시야가 제한되기는 마찬가지 였다.

문산제일고 앞에서 본 월롱산은 배경 능선은 맞는 것 같았지만 가옥들이 있는 마을 뒷산이 사진과 달라 찾는 것을 포기 하였다. 흑백사진 자료가 사실이라면 현재 지형이 많이 바뀌어서 찾지 못한것이거나 아니면 사진 설명이 잘못 되었을 것이다.
경의선은 근대 역사의 산물로서 한일합방과 해방, 6.25전쟁, 미군주둔과 철수, 남북 철도 연결 등 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하면서 파주에서는 더욱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 다. 문산과 금촌이 다른 지역보다 인구나 경제면에서 앞 설 수 있었던 것은 경의선 덕 분일 것이다.

지금 파주시는 교하신도시와 LCD관련 첨단산업단지가 문산,월롱 등에 조성되면서 인 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신흥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경의선이 복선화되어 내년도 6 월부터 전철이 6 ~8분 간격으로 운행되면 서울을 오가는 시민과 관광객의 핵심적인 교 통수단으로서 파주를 풍요로운 도시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글, 사진 : 이기상(파주시청 민원팀장)
작성일 : 2008-06-23 조회수 : 1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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