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목)
역사와 전통
대한독립만세, 그 날의 함성
독립유공자의 후손, 파주시광복회

“대한독립만세!”

95년 전인 1919년 3월 27일,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에서 흰옷 입은 백성들의 함성이 산천(山川)을 흔들었다. 그들은 이름 없는 민초들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한(恨) 맺힌 절규를 쏟아냈다.




그 날, 남동민, 조무쇠, 이인옥, 이기하, 정갑석 등이 주민 수백 명을 모아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다음 날에는 2,000~3,000명 정도의 군중이 봉일천에서 합류를 하고 파고다까지 가기로 계획이 됐다. 일본 경찰이 곱게 봐줄리가 없었다. 총과 칼을 앞세워 무차별 사격하고 아무에게나 칼을 휘둘렀다. 그 자리에서 박원선, 노동식, 정시화 등 여섯 명이 참변을 당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독립 운동가로 체포돼 일본의 불합리한 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교수형을 받거나 옥살이를 했다. (<파주독립운동사>, 2013.3.1. 참고)




“우리 할아버지(박원선, 당시 41세, 1919. 3. 27. 만세 시위 참여로 현장에서 순국.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애국장 추서)께서도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분이시죠. 독립유공자나 그의 유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가 파주시광복회입니다.”

파주시광복회 박종식(78) 2대 회장의 증언이다. 숨겨진 독립 유공자들을 찾아내고, 그들 유족을 도우려고 나선 단체가 광복회다. 광복회는 파주에만 있는 단체는 아니다. 전국 12개지부와 70개 지회로 조직돼 있다. 파주시광복회는 2008년 5월 26일 승인됐으며 현재 회원이 53명으로, 명실 공히 두드러진 업적을 드러낸 단체다.




“독립유공자 자손들의 삶은 너무도 어려워요. 제대로 공부를 할 기회도 박탈돼 스스로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어요. 저도 어렵게 공부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척들은 만주로, 황해도로 피난 가셨고, 할머니만 여기 사셔서 친척들이 없어요. 제가 중3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 때 앞장 서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장손이 잘 기억하라는 의미였지요.”




파주시광복회에서 이룬 업적은 대단하고 적절한 일이다. 독립유공자의 집 문패달기운동(2012. 3. 1.), 파주 3·1운동 광탄면 발상비 성역화사업과 발랑리 태극기마을조성(2012. 8. 14), 독립운동가 105명 선정 및 홍보(2013.1.), <파주독립운동사> 책자 발간(2013. 3. 1.), 보훈명예수당 월5만원 및 사망위로금 15만원 지급(2014. 1.) 등이 있으며, 현재 금촌2동 서원마을은 태극기마을 시범단지로 태극기 1,133개를 준비했다. 또, 올해 4월에 파주시 보훈회관 건립과 8월에 파주 독립기념공원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양한 성과 덕에 2013년도 파주시는 지방자치단체 부문 국가 보훈 문화 분야 ‘우수’로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31일 안전행정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제가 공부할 때 돈이 없어서 아침에 쌀을 지고 서울까지 걸어가서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처음 중앙대 약학과에 합격해 온 동네가 떠들썩했는데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공부해 서울농업대학 수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수학교사 2급과 수의사 자격증을 땄는데, 저는 할아버지가 계신 법원읍에서 가축병원을 열었습니다. 34년 정도 가축병원을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가축병원으로 번 돈을 광복회를 위해 모두 썼는데 그런 개인의 노력이 광복회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들 중에서도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후손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 장군의 손자(작고, 64)는 그의 중학교 선생이 그를 아들로 임의로 올려놓고 연금을 착취했다. 그래서 장군의 손자는 어떤 혜택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공부할 기회마저 얻지 못한 채 비참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곳이 파주라 박 회장의 아픔은 더욱 컸었다.


“친일파들은 호의호식에다 외국유학까지 다녀와서 엘리트 지식인층을 형성하고 있어요. 나라를 위해 목숨마저 바친 독립군 자손들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라에서 그 분들의 희생을 등한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의인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파주시광복회 사무실에는 파주의 독립운동가의 이름 105인을 적어 놓았다. 2월 24일부터 3월 1일까지 전시할 초상화도 붙어 있다. ‘우리의 역사를 잊지 마라, 너희가 잊으면 일본은 더욱 더 그들의 뜻대로 역사를 왜곡하게 된다’고 백범 김구 선생이 일어나서 꾸짖을 것만 같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를 어디 알려고 하나요? 빠르고 간편한 것만 선호하니까요. 그러나 역사를 모르고는 한 나라가 제대로 발전해 나아갈 수 없어요.”


그 때, 광복회 회원 중에 한 분인 노봉인 씨(72)가 들어오셨다. 그는 할아버지 노동식 씨(당시 28세, 광탄면 시위 중 사망. 1977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되셨던 독립 운동가들을 알리고, 제대로 대우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기대하고 싶다면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바친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후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전한다. 며칠 전, 전국이 국사 교과서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다. 박 회장은 거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일본이 지금도 전혀 반성이라곤 모르고 거꾸로 사는 것을 보면 분노가 느껴집니다. 역사는 좌·우의 이념이 아니라 공평하게,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역사 바르게 교육하는 데도 앞장 서야 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알리고, 태극기 마을을 확산해서 나라사랑 정신도 고양시켜야 합니다.”


취재 : 한윤주 싱싱뉴스 시민기자

작성일 : 2014-02-24 조회수 : 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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