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월)
역사와 전통
고려 왕이 머물던 마을, 용상골
- 지명에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어 -


“용상골은 고려 1018년, 거란의 침입 시 월롱산 월롱산성에 몽진해 있던 현종이 강감찬 장군의 귀주(평안남도 개천과 평안북도 영변 사이)대첩 승리로 환궁하자 용상사(龍=용룡, 床=평상상, 寺=절사 : 왕이 앉아 계시던 절)라는 절을 창건한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파주시 월롱면 덕은1리는 용상골이라는 지명으로도 유명하다. 이 마을 경로회장을 4년째 맡고, 올해 임기를 마감하는 76세 김진회 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한우, 돼지, 젖소도 상당량을 사육했고, 지금은 자식들이 분가해 파주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단다.

“마을에 솥우물이라 불리는 곳도 있어요. 예전에 구전으로 서두물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노부부가 살면서 방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솥 앞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했을 정도로 물이 많았다고 해서 솥우물이 됐다고 합니다.”




솥우물은 마을의 안위와 평안을 기원하는 신성한 곳이라 한다. 이처럼 지금은 변해 알아보지 못하지만 지명이 어디서 왔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을 거쳐 간 사람들의 삶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궁밭은 육군 3대대 후문에 있던 밭으로 참의가 농사를 지었던 곳이라는 뜻이고, 차마니꼴은 벼슬 참의가 살았던 골, 도장꼴은 도자기 굽던 골로, 지금의 샘물 공장이 있는 곳이다. 바라미산은 감시용 전망대란 뜻으로 휴암 백인걸 사당 뒷산이며, 병무관은 병사용 말을 훈련하던 약수터 아래이고, 옥토골은 죄수를 가두어 두었던 곳이다.

“우리는 월롱산을 갖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이 산을 아끼고 사랑하고 가꾸어 영원히 보존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김 회장의 포부에서 용상골 주민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한마디다. 그의 바람처럼 월롱산과 함께 용상골의 좋은 기운도 함께 하길 바란다.


   취재 : 이복규 싱싱뉴스 시민기자


작성일 : 2013-09-17 조회수 : 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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