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4일 (화)
人 & In
말은 민족의 정신, 글은 민족의 생명

영화 <말모이>가 손익분기점인 관객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에 놀란 일본이 겉보기에는 문화정책으로 언어정책을 강화하여 우리말과 문화공연을 금지시켰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맞서 『조선말큰사전』을 만들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맞물린 성과라고 한다.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거리. 극장에서 해고된 판수(유해진 역)가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가 실패하고 취직을 위해 찾아간 곳이 하필이면 조선어학회였다. 그곳 대표가 가방 주인인 정환이었는데, 전과자에다 까막눈인 판수를 용납할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회원들은 붙임성 좋은 판수를 반기고, 정환은 ‘읽고 쓰기를 배우는 조건’을 내걸고 받아들인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면서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뜨게 되고, 정환 역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에 눈을 뜬다.

조선어학회사건의 발단은 ‘나의 일기장’

파주시 중앙도서관 옆 ‘석인(石人) 정태진(鄭泰鎭) 기념관’에 전시된 1982년 8월 1일자 『한국일보』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박영희(당시 18세, 영생고등여학교 4학년)씨가 털어놓은 조선어학회사건의 전모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1942년 7월 함경남도 홍원읍 전진역 대합실에서 일본유학생 박병엽이 일경의 검문에 조선말로 대답했는데, 곧장 가택수색으로 이어졌고 ‘오늘은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에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는 구절이 적힌 조카 박영희의 일기장이 압수되었다. 한국인형사 안정묵(安正?, 얼마나 사무쳤으면 한자까지 기억하고 있을까)은 박 씨와 일기장에 나오는 동료 여학생 4명을 연행하여 열흘이 넘도록 ‘고춧가루를 먹이고, 비행기를 태우는’ 등 잔학한 고문을 가했다. 영생고등여학교에 재직하다 조선어학회로 옮겨간 정태진 선생의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경찰은 평소 학생들에게 “조선말을 쓰라”며 애국심을 고취했던 정태진 선생을 피의자로 몰아가는 각본을 짜 맞췄다.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자의 단체이며 조선말사전 편찬 작업은 독립운동의 일환이라는 등의 억지자백까지 받아냈다. 그것을 근거로 조선어학회 관련 인사 33명을 잡아들였으며 16명을 기소했다. 그 사이 이윤재, 한징 선생이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9회에 걸친 공판 끝에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다섯 분이 실형을 받았다. 네 분은 고등법원에 상고했으나 정태진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다.

박씨는 정태진 선생의 이름을 실토한 덕분에 석방되었으나, 당시 함께 연행되었던 동료 학생 두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8월 15일 한 달 전 형기를 마친 정태진 선생은 해방 다음날 혼자 조선어학회로 달려갔으나 『조선말큰사전』 원고는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3주가 지난 9월 10일, 일본경찰이 빼앗아갔던 원고가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나타났다. 영화 <말모이>에서 판수가 쫓기다가 던져 넣었던 바로 그 가방이었는데, 무려 2만 6천 5백 장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그 무렵 미 군정청의 부장(장관)이나 대학교수로 부임하라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정태진 선생은 오로지 『조선말큰사전』 편찬에만 매달렸다. 6.25로 서울을 떠났던 정태진 선생은 1952년 5월 최현배 이사장의 결단에 따라 가족들을 피난지에 남겨둔 채 폐허가 된 서울로 돌아왔다. 넉 달 반 만인 10월 28일에는 『조선말큰사전』 제4권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나흘 뒤 고향 파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정태진 선생

[정태진 선생]

정태진 선생 묘소

[정태진 선생 묘소]

정태진 선생의 생애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목숨 바쳐 지켜낸 기록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정환이 외치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를 몸으로 보여준 증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앞에 숙제가 남는다. 기념관 확충 및 상설화, 생가 복원 등의 적극적인 기념사업을 통하여 선생의 정신을 이 땅 위에 골고루 펼쳐야 하지 않겠는가.

석인 정태진 기념관

[석인 정태진 기념관]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취재: 강병석 시민기자

※ 영화 ‘말모이’와 조선어학회 등의 연관성에 대한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적인 소감을 글로 표현하였음을 밝힙니다.

작성일 : 2019-2-26 조회수 :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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