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2일 (화)
칼럼
봉일천초등학교와 국기에 대한 경례

1949년 3월 봉일천초등학교 아침 조회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인근 대원교회 주일학교에 나가는 36명의 봉일천국민학교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일로 퇴학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쫓겨났다. 당시 대원교회에 출석하는 주일학교 학생은 약 50여명이었다. 그때 국기에 대한 경례는 땅에 엎드려 국기 앞에 절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사건이 나기 전 일요일 주일학교에서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주제로 예배를 드렸다. 당연히 이 설교를 들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다음날인 월요일 학교 아침조회 시간에 국기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고 국기에 대한 절을 거부한다. 이 일을 벌인 주모자는 6학년 학생 남준효였다. 전교생이 엎드려 절을 하는 때에 남준효를 중심으로 하는 대원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은 그 자리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봉일천초등학교

[봉일천초등학교]

대원교회

[대원교회]

1949년 당시에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하여 민족관이 뚜렷이 요구되던 시절이어서 어린 학생들의 처사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었다. 이들은 퇴학처분을 당했고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은 며칠씩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각 언론사와 신문사를 통해 보도가 나갔고 이윽고 이승만대통령까지 보고가 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문제를 내각에 맡겼다.

당시 장로였던 이시형 부통령을 주축으로 한 국무회의는 국기에 대한 경례방법을 다시 정했다. 엎드려 절하는 방식에서 지금처럼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올려놓는 국기에 대한 주목을 국기에 대한 경례 방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은 봉일천초등학교 학생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당시 엎드려 국기에 대해 절하는 것을 거부한 주동 인물이었던 6학년 남준효 학생은 그 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가 되어 후에 한국장로신문사 사장까지 역임했다.

십계명 신앙비

[십계명 신앙비]

국기배례거부에 참여한 사람들

[국기배례거부에 참여한 사람들]

69년이 흘러 봉일천초등학교를 다시 찾아갔다. 세월만 무심히 흘렀을 뿐 그날의 흔적과 그날의 사연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날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이 다녔다는 대원교회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교정에는 1901년에 설립되었음을 알리는 비와 더불어 100주년 기념 십계명 신앙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기념비 뒷면에 당시 퇴학처분을 받았던 36명의 명단이 있었다. 오늘날의 국기에 대한 경례가 바로 파주 봉일천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 기원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10-29 조회수 :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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