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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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깊은 인연인 미국의 두 대통령
- 트루먼과 트럼프

우리나라의 운명에 깊이 관여한 미국 대통령 두 명을 들라면 당연히 트루먼과 트럼프가 아닌가한다. 트루먼은 6.25가 일어났을 때 공산세력의 침략야욕을 물리치기 위해 미군의 한국전 참전을 결단하고 보호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당시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자유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나머지 한 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문산읍 사목리 임진각에는 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전에 미군을 파병해 준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으로 1975.10.3. 이곳에 기단높이 0.8m, 동상높이 2.45m의 트루먼 용상을 세우고 박대통령이 직접 ‘해리 에스 트루만상’(The Statue of Harry S. Truman)이라는 한글 휘호를 쓰기도 했다.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5.8.∼1972.12.26.)은 누구인가? 그는 1945년 4월터 1953년 1월까지 미국 33대 대통령이었다. 1884년 5월 4일 미주리주(州) 라마(Lamar, Missouri)태생으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포병소위로 참전하여 1919년 소령으로 전역한 후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민주당의 도움으로 잭슨 카운티 법원의 행정담당 판사를 시작으로 1934년에는 미주리주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었고 1940년에는 ‘전쟁조사위원회(The war investigating committee)’ 의장을 맡았다.

194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45년 취임 3개월 만에 루즈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당시로는 원자폭탄의 개발이나 악화일로를 달리는 소련과의 갈등을 비롯하여 난제가 산적할 때였다. 트루먼은 기자들에게 “하늘의 달과 별과 모든 행성들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 느낌”이라며 당시의 당혹감을 그렇게 표현했다.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항복을 거부하는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하고 소련이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의 합의 사항을 위반하고 터키와 그리스를 위협하자 반소·반공을 모토로 하는 ‘트루먼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포했다. 또한 전후 유럽복구와 부흥을 위해 '마셜 플랜'이라는 원조계획을 통해 유럽을 재건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1948년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바로 그 다음해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트루먼은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중국공산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길어지자, 중국군에 대한 공격을 주장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해임했다. 그 때 맥아더는 워싱턴 의회의 고별사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가 다시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한반도에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점은 아쉬움을 남는다. 하지만 6.25전쟁 때 파병을 결정하고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수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대처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단호한 심경은 트루먼이 1950.6.27. 한국전쟁에 관하여 발표한 성명문(STATEMENT BY THE PRESIDENT)에 잘 나타나 있다.

국경에서의 침공을 방지하고 국내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장된 한국정부군이 북괴의 침략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중략) 이러한 정세 하에서 본인은 미국공군과 해군으로 하여금 한국정부군에 원호와 지원을 제공하도록 명령했습니다(I have ordered United States Air and Sea Forces to give the korean government troops cover and support). 한국에 대한 공격은 공산주의가 독립국가를 정복하기 위한 파괴공작의 범위를 뛰어 넘어 무력침공과 전쟁수단을 사용하게 된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인은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최근 한국에서 유엔헌장을 무시하고 감행되고 있는 침략의 결과를 주의 깊게 고려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국제문제에 있어서의 무력지배로의 회귀는 막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다.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위신과 체면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막말과 기행으로 유명하다. 과연 전 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임기까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염려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거나 과소평가된 점들이 있다. 트럼프는 명문 펜실바니아대학교 와튼 스쿨을 나왔고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그룹(The Trump Organization)'을 이끌며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을 성공시켜 현재 약 5조원의 자산을 일구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수완을 모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정치에 입문한 후 여러 번 당적을 바꾸었고 한 때는 무소속 정치인이 되는 등 시련을 겪은 후 2012년에 공화당으로 복귀했다. 2015년 6월에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공화당 후보로 선출됐다. 본선에 나가서는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공화당 대통령 후보 역사상 가장 많은 62,979,879표를 얻으면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눌렀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트럼프는 독실한 신앙인이라고 한다. 트럼프의 정신적인 멘토로 알려진 폴라 화이트(52) 미국 뉴데스티니 크리스천센터 목사는 지난달 내한하여 중앙일보, 국민일보를 비롯하여 국내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트럼프는 “신실한 신앙인” 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수도로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도 그의 신앙관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는 크리스천으로 북한의 인권과 비핵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욕과 집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는 1953.7.23.일 정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중단된 후 60년 동안 겉으로는 정전이었으나 실상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은 핵무기를 비롯한 방어적 군사력 증강을 통한 전쟁상태를 암묵적으로 계속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대통령 트럼프는 한국전의 실질적인 종전과 평화협정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래저래 트루먼과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한 귀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트루먼 대통령 용상

트루먼 대통령 동상
-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94-1(임진각로 177)


기사 작성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6-12 조회수 :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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