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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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무대 위의 뒷이야기들
- 라스트찬스 두 번째 이야기

TV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를 비롯해 예능프로그램인 ‘토토즐’까지 복고 바람이 큰 인기를 끌었다. 살기 힘들수록 사람들은 그 옛날 좋았던 때를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라스트찬스 이야기를 접한 이들이 그 당시 활동했던 가수들을 ‘소환’하고 싶어 했다. 윤상규 대표를 다시 만난 곳은 교하아트센터에서였다.

 

라스트찬스를 거쳐 간 가수 - 김태화
라스트찬스를 거쳐 간 가수

 

“라스트찬스를 거쳐 간 가수들은 참 많지요.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김태화, 윤복희, 하춘화, 쎄시봉, 쉘브르 멤버들까지. 당시 장파리는 ‘팝과 록의 메카’였어요. 여기서 성공하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으니까 많이들 찾아왔죠.”명동으로 진출하기 전 많은 가수들이 장파리를 거쳐 갔다며 이야기 물꼬를 튼 윤대표는 뭔가 재미있는 것이 있어 빨리 말해주고 싶은 아이마냥 들뜬 표정이었다. 그의 얘기는 가왕 조용필 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라스트찬스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한 조용필 씨와 통화하기 위해 수십 번의 노력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으나 그에게서 돌아온 얘기는 ‘너무 고생해서 뒤돌아 보기도 싫다는 것’. ‘아픈 추억이기는 하지만 한 번 가기는 할 건데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혹여 가게 되면 윤 선생에게는 귀뜸해주겠다’고 오랜 지기 매니저에게 얘기를 전해 들었다. 라스트찬스에 찾아오기도 했던 매니저는 조용필 씨에 대해 많은 얘기를 풀어놓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음악을 하겠다고 고백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긴 만무였다. 결국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음악생활을 시작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때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 가면 노래도 배우고 연주 실력을 뽐낼 수 있다고 생각해 처음 찾아온 곳이 바로 장파리였다.
“처음에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밴드 멤버 중 기타리스트가 아파서 못 나오게 됐어요. 고심하던 클럽 대표는 번뜩 ‘참, 조용필! 너 기타 좀 치지?’하면서 그를 떠올렸고 기회를 줬지요. 조용필 씨는 굴러온 돌답지 않게 호흡을 잘 맞춰 아예 고정으로 그 자리를 꿰찼지요.”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부터 연주도 배우고 싶었고 노래도 하고 싶었는데 미군은 재즈, 한국사람은 트로트라는 고정된 요구에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할 기회는 없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으나 ‘계약 없는 계약’으로 붙잡혀 있는 신세. 그래서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장파리를 거쳐간 가수 앨범
장파리 연주모습

 

“영업 시작 전 초저녁에 클럽을 나와 금파교까지 내달렸다고 해요. 그런데 너무 추워서 나무로 된 다리 모서리를 쪼개 불을 피웠다가 영락없이 잡히고 말았지요. 근데 조용필 씨가 참 머리가 비상했던 것 같아요. 돌아와서는 자꾸 연주를 틀리면서 못하는 척 했대요. 처음에는 실수겠지 했지만 실수가 계속되자 ‘야, 저 자식 원래 저게 실력 아냐?’는 대표의 볼멘소리가 나왔고, 조용필 씨는 쾌재를 부르며 원하는 대로 쫓겨나게 됐답니다.”


선유리에 있는 엔젤하우스를 거쳐 용주골, 법원리에 이르게 된 그에게 기회가 왔다. 우연찮게 그의 공연을 보게 된 세계적인 ‘RCA음반사’ PD출신 미군 장교에 의해 미8군으로 가게 되었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조용필 씨를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장파리를 찾은 건 이유가 있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고 전력도 부족했던 명동과 달리 장파리는 통행금지도 없었고 클럽들이 24시간 밤새 운영됐기 때문. 자체 발전기를 돌려 조명도 화려하기 그지없던 장파리에 젊은이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 음반을 들을 수 있었고 놀거리, 볼거리로 가득했다.
“당시 김태화 씨가 이곳에서 밴드 활동을 했는데 이름조차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밴드 이름이 뭐냐?’ 묻자, 연주하던 클럽 이름을 그대로 따서 ‘그냥 라스트찬스로 하죠?’했는데 진짜로 이후 그 이름으로 활동했다니까요.”

 ‘RCA음반사’ PD출신 미군 장교
라스트찬스

 

라스트찬스를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번뜩 떠오른 것이 클럽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과 ‘싸움질’이라는데, 라스트찬스도 싸움질로 유명했다. 술 취한 손님이 ‘야! 그것도 음악이냐?’하며 시비를 걸어왔을 때 그날 컨디션이 좋지 못한 뮤지션과 여지없이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이것은 마을 사람들과의 싸움으로 번져 클럽을 며칠씩 문 닫게 되는 일이 허다했다.
문화 차이로 인한 여종업원 문제로 다툼도 많았다. 고액의 술값을 지불한 미군들이 그 술을 다 먹을 동안 여종업들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를 본 한국 손님들이 ‘야! 왜 외국 사람 옆에서 그러고 있어? 이리로 와!’하며 제동을 걸었다.
“일부 미군들에 의해 돈만 내면 왕대접 받으려는 못된 접객문화가 우리나라에 고착되고 말았지요. 나쁜 건 빨리 퍼지기 마련이잖아요.”

흥미진진한 얘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윤대표를 바라보는데 가만히 두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더 이상 아는 얘기가 없어서다. 동네사람들도 누가 어떻게 음악생활을 했는지 잘 모르는 상황. 그가 아는 얘기도 거의 미군들에게 전해들은 얘기들이다.

장파리 라스트찬스 공연
장파리 라스트찬스 공연 멤버

그 맥을 이어가고자 라스트찬스를 복원하고 신촌블루스나 권인하 씨 등을 초청해 공연도 열었다. 그의 홍보는 SNS를 통한 것이 전부, 일반적인 홍보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 진정 라스트찬스에 관심 있는 이들이 찾아오기 바라서다. 작년 6월 한 방송 매체에 소개된 이후 찾아오는 이는 많아졌으나 카페 내 물건들이 하나씩 없어지는 일이 발생해 난감하기도 했던 것.

 

라스트찬스에는 분명 우리네 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사유도 함께 전해줘야 한다는 윤대표는 중개 매개자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으나 서류상의 문제로 어렵게 되자 팔십 여생을 홀로 지낸 순정파 미군을 비롯한 미군과 여종업원 간의 로맨스, 라스트찬스로 이어진 부모와 그 자식 간의 이야기 등 가능한 애틋하고 가슴 따뜻한 얘기들을 전해주고 싶어요.”

라스트찬스에는 분명 우리네 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군중모금 : 사업 자금, 서비스나 상품 제작비, 기업 자금 공모, 비영리기구 활동 후원 등을 말함)을 하고 있는 윤대표는 라스트찬스를 기념공간으로 운행하려고 한다. 자신이 운영하지 않더라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의욕 많은 젊은이가 있다면 오히려 관장으로 세우고 싶단다. 라스트찬스를 파주시티투어의 한 코스로 운영하거나 ‘장파리’라는 이름을 ‘Long Paris'로 활용해 프랑스문화원과의 접촉도 시도하고 있는 윤대표는 ’찾아가는 글로벌이 아니라 불러들이는 글로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라스트찬스를 새롭게 꾸며가는 윤대표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사진 제공 라스트찬스

 

 

취재 : 전영숙 시민기자

작성일 : 2018-3-13 조회수 :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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