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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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보물을 소개합니다.

보물은 역사, 예술, 기술 등의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 유형문화재에 해당하는데,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과 국가지정문화재 기준에 따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된다.

우리 파주에는 이렇게 지정된 보물이 2점 있는데, 보물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어 후손들에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와 그때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한다. 파주 속의 소중한 문화재 보물을 알아본다.

광탄면 혜음로 742-28에 위치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보물 제93호”로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으로 탄생설화가 함께 있어 그 가치가 귀중하여 보물로 지정 되었다.

보물 제93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보물 제93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 갓을 얹은 모습이다. 천연암벽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짜 맞춘 듯 거대한 느낌이 들지만, 불교가 일반서민들에게 깊게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는 세속적인 불상으로 평가된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 손은 앞으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 사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다. 둥근 갓을 쓴 왼쪽의 불상은 남상(男像), 사각형 갓을 쓴 오른쪽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전한다.

보물 제93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뒷모습

[보물 제93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뒷모습]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세 번째 후비 원신궁주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후손이 없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기도처에 공을 들이고 기원을 하며 노력했으나 여전히 후사가 없었다. 어느 날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잠을 깬 원신궁주는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왕은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오게 했다.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를 하니, 왕이 즉시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용암사)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해 왕자인 한산후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석불 오르는 계단에 놓은 작은 불상

[석불 오르는 계단에 놓은 작은 불상]

작은 불상은 원립불과 방립불을 쓰고 있다

[작은 불상은 원립불과 방립불을 쓰고 있다]

용암사 대웅보전

[용암사 대웅보전]

이와 같은 탄생설화로 인해 후손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지금도 후사를 기원하는 기도처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찾는 이가 많고, 고 이승만 대통령의 모친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에서 기도 후에 이승만 대통령을 낳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자상과 7층 석탑”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방문 하여 세웠다. 지금도 용암사 경내 산신각 옆에 “동자상과 7층 석탑” 그리고 이와 관련된 안내 표지판이 게시되어 있다.

고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동자상과 7층 석탑

[고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동자상과 7층 석탑]

탄현면 오금리 산19에 위치한 “공효공 박중손 묘역 내 장명등”은 “보물 제1323호”로 조선 초기 장명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장명등 동쪽 면은 원형(圓形)으로 해를 상징하고, 서쪽 면은 반월형(半月形)으로 달을 상징하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일명 “일월등(日月燈)”으로도 불리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옆의 정경부인 봉분 앞의 장명등은 여성스러움을 표현한 듯 남편 공효공 박중손의 장명등보다 작고 가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보물 제1323호 박중손 묘역의 장명등

[보물 제1323호 박중손 묘역의 장명등]

해를 품은 달

[해를 품은 달]

달을 품은 해

[달을 품은 해]

박중손의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1453년(단종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에 기록되었고, 밀산군에 봉작되었다.

묘역은 부인인 정경부인 남평 문씨와 나란히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 봉분 앞 중앙에 장명등을 세웠다. 문인석, 무인석을 좌우에 한 쌍씩 배치하고 우측에 1466년(세조12)에 세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박중손 묘역

[박중손 묘역]

장명등은 묘역이나 건물 외부공간을 밝히는데 사용되며, 조선시대에는 일품재상 이상만 장명등을 세울 수 있어서 피장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시묘 살이 중인 후손이 묘역에 불을 밝혀 효행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중손 묘 앞의 장명등

[박중손 묘 앞의 장명등]

정경부인 남평 문씨 묘 앞의 장명등

[정경부인 남평 문씨 묘 앞의 장명등]

장명등이 위치한 탄현면 오금리는 밀산군 박중손이 사망하자 명지사가 묘지를 물색하고자 샅샅이 뒤졌으나 명당을 찾지 못해 서성이던 중 갑자기 매봉재 아래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 그곳에 올라 자세히 보니, 길지가 있는지라 “까마귀가 나를 도왔다”하여 “오고미(烏告美)”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오금리라 부르게 되었다. 오금리는 밀양 박씨 세거지로 땅이 기름지고 터가 넓은 옥토를 가진 곳으로 파주탄현 쌀로 유명한 지역이다.

박중손 묘역에서 내려다보이는 탄현면 오금리

[박중손 묘역에서 내려다보이는 탄현면 오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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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1-15 조회수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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