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5일 (화)
북소리
“개미”를 읽고
˝책읽은 파주 2008, 내 인생의 책 한 권˝ - 책 읽고 글로 표현하기 대상-

올 10월 파주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책읽은 파주 2008, 내 인생의 책 한 권” 책 읽고 글로 표현하기 부문에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입상한 작품을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연재시리즈물로 게시하오니 깊어가는 가을밤 좋은 책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책이나 영화를 선택하는 방법은 매우 수동적이다. 내 주변의 사람이나 언론 매체에서 잘됐다고 호평하거나 적극 추천하는 작품을 골라서 읽거나 보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단점도 있겠지만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보고 난 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 제목이나 광고 내용을 보고 선택했다가 막상 보고나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책이나 영화를 선택한다면 결코 그럴 일은 없다.

이 ‘개미’라는 소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내 주변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대단한, 경이로운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한참 돌고 나서야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은 뒤에도 다른 소설을 여러 편 읽었지만 소설 감상문을 쓰는데 있어서 오래전에 읽었던 이 ‘개미’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이 소설이 나에게 준 충격과, 내 자연관·우주관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은 우선, 전체 내용이 3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인간들의 세계, 또 하나는 개미들의 세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소설 속에서 개미박사로 나오는 ‘에드몽 웰즈’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처음에 각자 따로 전개되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서로 맞물려 하나의 틀을 형성하게 된다. 또, 이 셋은 소설의 진행에 있어서 교차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으나 곧 익숙해졌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을 읽은 독자에게 이 ‘개미’는 어떤 종류의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추리소설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처럼 이 소설의 첫 부분은 독자의 흥미를 충분히 끌만한 알 수 없는 사건이 전개된다.

천재 개미박사인 ‘에드몽 웰즈’가 남긴 유산으로서 집을 물려받은 조카 조나탕은, 지하실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에드몽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하실로 들어간다. 그 뒤 자물쇠 제조기술자인 조나탕은 장비를 가지고 몇 번 더 지하실로 내려갔다 오더니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 후 그의 부인, 그의 아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러 들어간 소방대원, 또 그의 할머니와 에드몽의 친구들이 차례차례 지하실 안으로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지하실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은 에드몽 웰즈가 남긴 한가지 질문을 받는데 그것은 성냥개비 6개로 정삼각형 4개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물론 뒤에 답이 나오지만 나 또한 등장인물들처럼 그 답을 찾느라고 애썼다. 그 질문에 대한 힌트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라”이다. 그리고 한참의 생각 끝에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삼각뿔’이다. 즉, 대부분 이와 비슷한 문제들의 답이 평면도형인데 비해, 이것의 답은 입체도형인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자신이 우리들에게, 뭔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을 중간쯤 읽은 어떤 독자는 이 소설이 과학소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소설은 자연의 세계, 특히 개미를 중심으로 한 숲 속의 작은 세계를 섬세하고 풍부하게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 유일하게 문명이 발달한 사회를 갖고 있다고 믿는 개미왕국의 수개미 327호는 어느날 사냥을 나갔던 원정대가 순식간에 몰살하는 알 수 없는 사건을 목격하고 돌아와 그 사실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절대 동료를 죽이는 법이 없는 개미의 세계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개미들의 추격을 받는다. 그러는 동안 수개미 327호는 암개미 55호와 병정개미 103호를 알게 된다. 이 셋은 그 비밀을 밝혀보고자 했으나, 지하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만 알아내고 수개미 327호는 죽는다. 그 후 암개미 55호는 분가하여 새로운 개미왕국을 건설하고, 병정개미 103호는 비밀을 밝히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그는 끝없는 여행을 한 후 개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는 인간의 세계를 접하고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개미와 작은 곤충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숲 속의 작은 세계, 즉 또 다른 ‘우주’로 인도한다. 그것은 에드몽 웰즈가 제시한 문제의 해답, 곧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와 맥을 같이한다. 우리 인간이 무심코 지나치는, 잘 이해하지 않는, 아니 잘 볼 수 없는 새롭고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닌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해준다. 숲 속의 작은 곤충 한 마리, 풀씨 하나, 따뜻한 햇볕 한 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소중한 것들에 대한 우리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중간중간에는 ‘백과사전’이 계속 나타난다. 에드몽이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은 에드몽의 철학,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건, 개미나 곤충의 생태 등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내용이 ‘문명의 충돌’이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서양인의 만남, 동양인과 서양인의 만남, 특이한 종교나 풍습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공통점은, 한쪽의 입장에서 볼때는 전혀 다른 쪽의 문화가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간과 개미의 세계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미들은 인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병정개미 8만마리로 인간을 정벌하려는 무모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 또한 개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고작 그들이 땅속에서 살며, 먹이를 끊임없이 모으는 부지런한 곤충이라는 정도밖에 모르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개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또다시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다.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던 과학자들이 하나 둘씩 살해당하는데, 외부로부터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고 단지 내상만 있을 뿐이었다. 그 사건을 끈기있게 조사하던 민완 형사와 이제는 기자가 된 에드몽의 딸은 과학자들을 살해한 것이 개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 형사와 에드몽의 딸은 장난감 제조 기술자가 만든 장치를 이용해, 우연히 만난 병정개미 103호와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 정벌의 임무를 맡고 있던 개미원정대는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사소한 한가지 행동 - 비눗물로 바닥을 청소하는 - 으로 궤멸하고 병정개미 103호만이 간신히 빠져나와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병정개미 103호는 인간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개미왕국 지하에 인간들이 갇혀 있다고. 그리고 그들을 구하도록 길 안내를 해주기 전에 우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알려달라고. 그것을 알고 난 후에, 지하의 인간들을 구해줄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소설이나 과학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독자로 하여금 하도록 하고 있다. 그 철학적 사색의 주제는 바로 ‘인간과 자연’이다. 작가는 왜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 중 ‘개미’를 택했을까? 그것은 개미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작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그만큼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고 따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개미는 개미 그 자체가 아니다. 개미는 바로, 우리 인간이 그동안 무관심했고 무책임하게 함부로 다루었던 ‘자연’ 전체를 대표한다. 우리들은 그동안 개미(자연)를 장난삼아 또는 우리만의 잣대로 평가하여 함부로 다루고 죽였다(파괴했다). 그러나 개미(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엄청난 피해였고 재앙이었다. 그리하여 개미(자연)는 인간을 응징하고자 했다. 비록 그것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이러한 인간의 오만에 대해서 작가는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병정개미 103호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안 후에, 지하에 갇힌 인간들을 구해주기로 결심한다. 그가 인간의 오만과 독선, 파괴적이고 추한 모든 면을 알고서도 인간을 돕기로 마음먹은 것은 한가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들은 자기들끼리도 다투며, 자연에 대한 횡포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 즉, ‘사랑’이 남아있었다. 인간들이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을 한가닥 희망으로 삼아 병정개미 103호는 인간들을 돕는다.

이 소설의 한 축을 이루는 ‘백과사전’, 그리고 에드몽 웰즈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 - 작은 애벌레 한 마리, 들꽃 한포기, 나뭇잎 한 장, 이슬 한방울, 작은 돌맹이 하나, 푸른 이끼 -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또 우리 인간도 그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인간이 보지 못하는, 하찮게 여기는 많은 것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과 질서에 따라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지 말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을 경고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바라는 것이다. 그것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지구에 대한 ‘사랑’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집안에서 발견되는 작은 개미 한마리도 그 전처럼 함부로 죽일 수 없게 되었다. 그 개미도 바로 우리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혹시 그 개미가 병정개미 103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글 : 양동용(금촌동 동현아파트)

작성일 : 2008-11-24 조회수 : 6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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