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 (목)
역사와 전통
목공의 달인, 명품 제구(祭具) 만든다
전통 기법과 탁월한 솜씨, 종중마다 인정한 신현두 옹
조상을 잘 모시는 실천의 방법, 제사의식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秋夕) 명절이 지났다. 추석은 예로부터 설, 한식(寒食), 단오(端午)와 더불어 우리민족의 4대 명절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설과 추석만이 명절로서의 명맥을 이을 뿐 한식과 단오는 명절의 의미조차 잊혀져 가고 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세계화 되어 가고 있는 마당에 민족고유의 정통성과 전통을 계승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우리 고유의 명절들은 불과 십여 년 전과 비교해 보아도 그 풍속도가 너무도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설과 추석 명절 때면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 뵙는 민족의 대이동이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우리의 명절은 한 해를 시작하고 또 한 해의 수확을 조상께 고(告)하는 의미에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해 조상께 제(祭)를 드리는 의식이 주를 이루어 왔다. 그 만큼 우리 민족의 조상에 대한 의식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잘 된다’는 함축적인 문구로 오랜 세월 동안 후손된 도리를 다하도록 해 왔다. 그래서 조상을 잘 모시는 실천의 방법으로 대표되는 것이 바로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이다.
제사(祭祀)는 사람이 죽으면 그 자손이나 친족, 친지가 슬픔 속에서 장사를 지내고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여 정성으로 기념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제사는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마음가짐 즉 정성을 다하는 예의를 중시했다. 그래서 보통 제사를 제례(祭禮)라고 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 없는 자손이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이 아니더라도 나를 낳아 길러 주시고 돌봐 주신 부모님이나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 주신 조상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고 예로써 모시는 제사의식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백 년 동안 4대봉사(四代奉祀)로 종손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 왔고 이것이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어온 우리 민족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제사는 고작 기제(忌祭)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기제의 경우에도 대부분 조부모와 부모 2대 봉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기일 초저녁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니 모든 것이 간편 위주로 변해가고 있다.

제사에 쓰이는 제구(祭具)는 기능에 따라 다양
우리의 제사에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제기(祭器)에 반듯하게 담아 제상(祭床)에 진설(陳設)하고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위(神位)를 앞에 모셔 정성스럽게 예의를 다한다. 따라서 제사음식에 필요한 제구(祭具) 또한 각별히 신경을 썼는데 제구에는 제사음식을 진열해 놓는 상인 제상(祭床)과 신주(神主)를 올려놓는 의자인 교의(交椅), 향로와 향합을 올려놓는 작은 상(床)인 향탁(香卓)을 비롯해 향로(香爐), 향합(香盒), 모사기(茅沙器), 촛대 등 다양하다. 또한 신주를 모셔두는 나무 궤인 주독(主櫝),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인 신주(神主) 등도 제사 때 반드시 필요한 제구 들이다.
그리고 음식을 담는 제기의 경우에도 음식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한데 대나무로 굽을 높게 엮어 만들어 실과(實果)와 건육(乾肉)을 담는 제기를 변(籩)이라 했으며 김치나 젓갈 등을 담는 제기를 두(豆)라 했고 떡을 담는 제기인 병대(餠台), 적을 올리는 제기인 적대(炙台), 고기를 담는 제기를 조(俎)라 했다. 또 국을 담는 탕기(湯器), 수저를 올려놓는 시접(匙楪)제기, 헌작한 술을 물릴 때 따라 붓는 그릇인 퇴주그릇 등이 있다.
과거에는 제기를 중히 여겨 집집마다 반드시 장만하여 소중히 보관하였다가 제삿날에만 꺼내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제기가 물려 내려오는 집을 제외하고는 대개 일상에서 쓰는 그릇으로 대용한다.
이처럼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쩌면 조상에 대한 제사는 구차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생략하자니 마음 한켠이 허전해 점차 간편 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제사의식도 조만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대세다.

제사 소홀해지는 추세지만 전통 제구는 나의 사명
이러한 때에 어찌 보면 시대를 거스르는 삶이라고나 할까? 제사 의례에 사용하는 전통 제구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는 분이 있다. 그 주인공은 법원읍 금곡리에 사는 신현두(73, 申鉉斗)옹이다.
금곡리가 고향인 신씨는 1962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상경한다. 무일푼으로 재당숙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시작한 일이 목수일인데 처음에는 미군부대 막사를 짓는 일을 했다. 당시 하루 품값이 600원이었는데 신씨는 품값 보다는 빨리 목수일을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남다른 손재주를 가지고 있던 신씨는 주위로부터 인정받았고 마포의 한 목공소로 일터를 옮겨 문짝 및 문틀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과 서울 상경 3년여 만에 직접 목공소를 차리고 건재상을 함께 운영하면서 각종 공사를 수의계약 해 사업의 활로를 찾았다. 당시 서울의 적십자 병원을 비롯해 서대문경찰서, 동명여고 등의 건물 보수 공사를 수주해 공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사업은 1970년도에 당시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의 제의로 화곡동 재래시장 공사를 수주했다가 결국 사업을 망하게 되었다. 간신히 고향의 아버지께서 땅 일부를 팔아 사업으로 진 빚을 갚기도 했다. 신씨는 지난 1997년 35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 온 신씨는 고향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게 되자 고민 끝에 평소 생각하던 제구용품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손에 익힌 일이 목수 일이고 남들로부터 손재주는 인정받은 터이니 고향에서 제사 때 필요한 제구를 만들어 볼 결심이었다.
그리곤 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제상과 신주 등을 꼼꼼히 살피며 똑같이 만들어 보고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불태워버리기를 수십 차례 하였다. 또 제사에 관련된 문헌들을 뒤져가며 연구와 연구를 거듭하고 관내 사우(祠宇) 제향에도 일일이 참석하였다. 지금도 파주향교 장의와 월계단 총무를 맡고 있다. 어느덧 고향에 내려 온 지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결국 마음에 흡족한 제상과 신주를 만들어 몇몇에게 선을 보였더니 좋은 반응을 보였다.

탁월한 솜씨 입소문, 종중에서 먼저 인정
입소문이 나면서 몇 곳에서 주문이 들어 왔다. 개인 보다는 주로 종중의 사당 등에 갖출 주문들이었는데 그 동안 광산김씨 종중 사당을 비롯해 양주시 언양김씨 종중, 동패리 진주유씨 종중 등에서 주문을 해 와 납품을 했다. 그러던 올 해 초 파주 통일동산에 건축되고 있는 고려 통일대전 사업 주체자인 고려 선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전에 모실 고려왕을 비롯한 공신, 충신들의 위패와 제상을 제작 할 뜻이 있냐는 주문이었는데 결국 그 일을 수주하게 되었다. 무려 4개월에 걸친 작업으로 고려 왕 34위와 고려 충신, 공신 342위의 신주와 제상 11개를 제작하여 납품하였다. 지난 9월 30일 역사적인 고려통일대전 준공식이 있었는데 단연 대전 내부를 장식한 것은 신씨가 정성을 다해 제작한 제구들이었다.
신씨가 주로 만드는 제구는 제상과 신주로 제상은 잣나무를 쓰며 신주는 반드시 밤나무를 쓴다. 예로부터 신주는 단단한 밤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개소리,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의 밤나무를 베어 나침반을 놓고 동서남북을 가렸는데 신주는 곧 신상(神像)이니 남쪽은 몸의 앞이고 북은 몸의 뒤가 되는 셈이다.
제상은 보관하기 편리하도록 조립식으로 고안해 사용 할 때 쉽게 조립하여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제상과 신주를 보관하는 주독(主櫝)은 옻칠을 해 마무리 한다.고려통일대전에 신주를 제작 납품한 것을 계기로 신씨는 내년부터는 농협 등을 통해 판로를 개척해 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주문전화가 온다.
신씨에게 요즘 사람들의 제사의식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앞으로 계속 제사 전통을 이어가겠냐는 반문이다. 그래서 제사는 곧 사라지지 않겠냐고 말한다. 어찌 보면 사양길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외로운 일을 하는 셈이다. 그래도 고향에서 평생을 손에 익혀 온 목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씨에게는 큰 행복이라고 한다.
오늘이 마침 파주향교와 교하향교의 제향일이다. 신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시대흐름에 따라 제사의식이 변 할 순 있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그것이 곧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근본(根本)이 아닐까?(신현두 씨 연락처 :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031)958-2021)

글 / 이윤희(파주시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작성일 : 2007-10-1 조회수 : 1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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