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4일 (화)
역사와 전통
금촌가축시장을 아시나요?
사라져가는 것들 ①가축시장
 
 

 누렁소 팔려가던 어린 날의 추억

“음메, 음메, 음머, 음머”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외양간의 누렁소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툇문을 열고 밖을 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흰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아버지가 외양간의 누렁소를 힘겹게 끌어내고 계셨다. 발꿈치에 안간힘을 주며 버티는 누렁소와 한참을 씨름하시던 아버지는 이내 소를 끌고 대문을 나섰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수년 동안 가족들과 정들었던 누렁소가 우시장에 팔려나가는 날이다. 7살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렁소의 울음소리는 대문을 나선 후에도 한참을 메아리치듯 들렸다. 점점 멀어져가는 울음소리를 듣다가 이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누렁소 풀 뜯기는 일을 몹시도 싫어했던 내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정든소를 떠나보내는 이별장소 우시장
농경민족인 우리민족에게 있어 소는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동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소는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꾼으로 또한 급하게 목돈이 필요 할 땐 가장 손쉽게 현금화 할 수 있는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 왔다. 그래서 옛날 우시장에 끌려 나온 소들과 소주인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기만 했다. 목돈이 필요해 소를 팔러 왔지만 소 주인들은 우시장이 그 동안 정들었던 소와 헤어지는 이별장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값을 잘 받거나 값을 못받거나 그래서 소시장은 이별의 아픔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 거래가 끝나면 소를 떠나보낸 주인들은 허전함과 슬픔을 한 그릇의 국밥과 막걸리 한사발로 달래곤 하였다. 그래서 옛날 우시장에는 국밥집을 비롯한 대포집들이 늘 성황을 이루었다. 또 한켠에서는 줄타기 공연도 펼쳐지고 약장수의 요란한 입담과 군데군데 벌어진 투전판도 진풍경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옛 우시장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나마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지금의 우시장 풍경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규모도 작아졌고 개장에서 폐장까지의 시간도 두 시간 정도면 끝나 버린다.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주인손에 끌려 왔던 소들이 지금은 한꺼번에 트럭에 실려 우시장 안까지 들어온다. 더 이상 정든 소와 이별하는 장소도 아니다. 그래서 소주인의 허전함과 슬픔을 달랠만한 국밥집과 대포집도 사라져 버렸다.

경기도 4대 우시장에 꼽혔던 봉일천 공릉 우시장
보통 우시장(牛市場)은 쇠전, 쇠장, 소시장 등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소시장에서는 돼지나 개, 염소 같은 가축들의 거래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가축시장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우시장에 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단지 어느 우시장의 규모가 크고 거래되는 두수가 많다는 정도일 뿐이다. 1918년 말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전국의 가축시장 수는 655개소나 되었다. 이 시기는 조선시대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때라 독립된 가축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경기도에는 모두 47개소의 가축시장이 있었는데 이 중 파주의 봉일천장 소시장은 경기도 4대 우시장에 속하는 매우 규모가 큰 시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1926년 봉일천장 거래금액을 상품종류별로 보면 총 거래금액 36만378원 가운데 소의 거래금액이 31만5,420원으로 87.5%를 차지함으로서 일반상품 보다는 소시장 중심의 대시(大市)였음을 알 수 있다.

봉일천장은 한국전쟁 이 후에도 종전과 같이 2ㆍ7장으로 재개 되었다. 그러나 전쟁 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과거 봉일천장이 전국적인 대시로 명성을 떨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해 온 가축시장이 1ㆍ6일 장인 금촌장으로 이전해 간 것이다.

금촌가축시장이 그 명맥이어가
봉일천장의 가축시장이 금촌장으로 이전하게 된 것은 행정관청의 행정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후의 상황변화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봉일천장은 전쟁후 상당기간동안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곳이 되었다. 1953년 휴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후에도 화약냄새가 가시지 않는 전시 상황이 연장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문산까지 당시의 좁은 국도는 군용차량만이 분주히 왕래할 뿐 민간 교통수단이 없었다. 더구나 당시 이 국도는 군용차 전용의 비포장 도로였으며 이 도로가 봉일천 장터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봉일천의 장터마을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온통 군용 차량의 흙먼지가 연일 연기처럼 자욱하여 마을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금촌은 대량 교통수단인 기차역이 있고 기차는 전쟁직후 어느 교통편보다 먼저 왕래했기 때문에 정기시장의 재개와 더불어 인파는 금촌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가축을 팔고 살 사람들 조차 봉일천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금촌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가축시장이 저절로 금촌장으로 옮겨졌고 봉일천장의 가축시장은 자연 폐쇄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가축시장을 잃은 봉일천장은 이후 일반 상품 시장마저도 쇠퇴의 길을 거듭하여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전쟁 후 봉일천장에서 이전된 금촌 가축시장은 처음 금촌사거리 북쪽(구 시외버스터미널)산기슭 공지에 잠시 개설되었다가 현 등기소 앞쪽의 넓은 공지로 옮겨졌으며 그 뒤 다시 현재의 경기도 파주병원(도립병원) 앞쪽의 금능리로 이전되었다가 현재의 금촌체육공원 옆 파주축협 유통사업부 부지내로 옮겨졌다.

금촌 가축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우 성시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거래량이 매우 줄어들면서 금촌 우시장의 규모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1991년 금촌가축시장의 실적을 보면 연간 총 7,592마리의 소가 출장하여 4,799마리의 소가 거래됨으로서 63.2%의 거래 실적을 보였는데 이것은 매 장당 평균 105마리의 소가 출장해 70여 마리의 소가 거래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매 장마다 2~30여 마리가 출장하는 것이 고작이며 이 중 20여 마리 안짝의 거래가 이루어져 우시장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갈 뿐이다.

파주한우의 혈통을 잇기 위한 송아지 경매
8월 26일 금촌 가축시장을 찾았다. 1ㆍ6일 금촌장과 같은 날 열리는 가축시장은 금촌체육공원 옆 파주축협 유통사업부 부지에서 열린다. 지난해부터 매달 26일에 특별히 한우 송아지 경매를 실시해 오고 있다. 즉 파주에서 생산된 한우의 품종을 보존하고 품질을 고급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이력관리된 송아지만 엄선해 경매하는 것이다.

이 날은 마침 송아지 경매가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시장에는 일반소와 파주 송아지 경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 날 경매에 출장(出場)하기로 한 송아지는 8개월 미만의 어린소로 모두 16두가 예정되어 있었다. 송아지 경매장 옆에는 일반거래 대상 소 30여 마리가 이미 새벽6시경 출장돼 촘촘히 묶인 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소 주인은 모두 세 사람으로 한 사람이 평균 10여 마리의 소를 내왔다고 한다.

그러니 소시장에 소를 팔러 온 사람과 사러 온 사람을 모두 합쳐봐야 겨우 30여 명 밖에 안 되는 조촐한 풍경이었다. 서로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는데 주로 세상사 얘기로 소를 사고 파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안 팔리면 되가져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일반소 거래장 옆의 송아지 경매장에는 각 칸마다 출장 나온 소의 이력카드가 걸려 있는데 송아지들의 무게와 어미소의 혈통, 출생년월일 등 송아지 이력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다. 7시가 넘으면서 송아지 경매에 출장하는 소들이 트럭에 실려 들어 왔다. 우선 화물차에서 송아지를 끌어내리는 일이 힘겨워 보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시장에 끌려나온 소들의 몸부림은 여전한 것 같다.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보지만 어린 송아지 힘으로는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차에서 내려 우선 계량기를 이용해 몸무게를 달고 각자의 이력카드앞에 묶여진다. 오늘 출장하기로 한 16두가 모두 정렬되자 수의사가 일일이 송아지들의 건강상태를 검진한다. 검진이 끝나자 경매가를 내정하는데 금촌 가축시장에서만 약 20여 년 동안 경매가 내정위원을 지내 온 김기찬 씨(60세)가 일일이 돌아보며 내정가격을 매긴다.

이 날 가장 높은 내정가는 교하읍 교하리 황동인 씨 송아?2백 37만원의 내정가가 매겨졌다. 낙찰가는 주로 내정가격에서 2~30만원 위로 결정되는데 이 날 최고가로 낙찰된 송아지는 2백 57만원에 거래되었다. 16마리 중 10마리가 낙찰되었고 4마리는 장외로 거래되었으며 아쉽게도(?) 2마리는 귀가하고 말았다. 탄현면 금산리에서 송아지 1마리를 내 온 조창환 씨는 예전에 4~5백만 원 하던 소값이 지금은 절반값도 안된다며 한숨을 내쉰다.
아침 8시 반경 금촌 우시장의 경매는 모두 끝났다. 오늘 송아지 경매는 그래도 실적이 좋은 편이다. 경매장 옆의 일반소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모두 되싣고 가는 형편이 되었다.

우시장을 나오다보니 도로 옆 공지에 일반 가축시장이 자그맣게 펼쳐져 있었다. 대여섯 개의 파라솔 아래로 강아지, 흑염소, 토끼, 고양이, 오리, 병아리 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우리 안에 갇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전국의 가축시장으로 떠돌았을 어린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만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릴적 누렁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글 / 이윤희(파주시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 흑백사진
일제시대 대시(大市)를 이룬 봉일천 우시장의 풍경. 당시 공릉우시장 규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금촌역으로부터 32정(三十二 町)이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금촌역에서 약 3.5㎞ 떨어진 거리에 위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칼라사진
현재 금촌체육공원옆에 위치한 금촌 우시장 모습
작성일 : 2007-08-30 조회수 : 1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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