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8일 (화)
역사와 전통
마을의 안녕 기원 '도당굿'
문산 도당굿
'문산 도당굿' 경기도에서 첫 손가락에 꼽아

일반적으로 도당굿은 주로 경기도 지방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을 일컫는다. 파주시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마을굿으로는 용미리 진대굿을 비롯해 가야리 도당굿, 성동리 요풍동 대감굿, 상지석2리 대동굿 등이 있다. 그러나 경기도내의 대표적 도당굿으로 전승되어 오던 문산 도당굿이 근래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주택단지 개발로 당집이 헐리는 문제가 부각되면서 결국 정례적으로 시행되던 도당굿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당집은 헐리지 않고 남게 되었지만 주변 지역이 온통 아파트단지로 변해 버렸다. 문산읍 하동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문산 도당굿은 역사가 깊고 규모면에서 클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마을굿과 달리‘호영산 호대감 놀이’라는 굿놀이가 수반되고 있는 점에서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호영산 호대감 놀이’는 과거에 호환(虎患)을 입은 마을에서 행하는 절차로 다른 지역의 도당굿에서도 나타난 바 있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문산포만이 최근까지 보존 전승되어 왔다.
문산 도당굿이 그 규모가 크고 성대했던 것은 지리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파주군지(坡州郡誌,1923)」에 의하면 임진강을 끼고 있는 문산포는 수운(水運)의 중심지로 주운(舟運)이 발달하여 인근 황해도, 고랑포, 연천 등지에서 오는 조깃배와 지방 산물의 집산지였으므로 이곳은 늘 황포돛배가 끊일 사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 집결된 물산은 큰 시장을 이루었고 대규모 상권이 이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주변적 환경에서 문산 도당굿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 각종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로써 마을의 평안과 함께 풍농, 풍어, 시장의 번영 등을 기원하게 되었고 자연 그 규모는 성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굿판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고, 한편에서는 난장이 서고 풍물놀이, 광대놀음, 씨름, 그네, 활쏘기 등의 놀이판이 벌어져 축제의 흥취를 돋우었다 한다. 행사는 5~7일간 계속되었으며 이때 모이는 상인이나 구경꾼들은 인근의 김포, 강화, 개풍, 장단, 개성 등지에서 모여들어 문산포 일대는 대성시를 이루었다 한다. 일반적으로 시장굿 또는 난장굿이라고도 불리는 별신굿이 시장의 경기부흥책의 한 몫을 담당해왔듯이 문산 도당굿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문산 도당굿은 6.25 이후 남북 분단과 대륙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인한 포구의 쇠퇴와 함께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그 규모가 자연 축소되고 난장과 각종 놀이도 사라지고 최근에는 당굿만이 지속되어 왔다. 문산 도당굿은 무속에 대한 탄압이 심하던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되었으며, 한때 1953년부터 1976년 사이의 18년 동안 중단된 적이 있었으나 동
네에 여러 가지 변고가 생겨 1977년경 다시 복원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 마을의 개발로 인해 다시 굿이 시행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처해 있다.

"전쟁에 이겨서 살아 돌아오면 흰 기를…"

문산 도당굿과 문산 도당(당집)이 언제 생겼는지 그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유래와 관련된 두 종류의 설화가 전하고 있다. 옛날(임진왜란 때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병자호란 때라고도 함) 한 장군이 문산 포구에서 전장에 출전을 했다.
출전하면서 부인에게 말하기를“내가 전쟁에서 이겨 살아돌아오면 배에 흰 기를 꽂고 돌아올 것이고, 죽어서 돌아오면 배에 빨간기가 꽂혀 있을 것이오”하였다. 장군이 떠난 뒤 부인은 산(현재 당이 있는 부근으로 옛날에 그 밑은 절벽이었고 거기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함)에서 매일 정한수를 떠놓고 장군이 승전해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부인이 기도를 하다 앞을 바라보니 포구 저쪽에서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장군의 배임을 알아차린 부인은 얼른 뱃기부터 쳐다봤다. 그것은 빨간색이었다.
부인은 낙망하여“아, 장군께서 돌아가셨구나”하고는 곧바로 절벽 아래 강물에 몸을 던졌다. 장군이 도착하여 부인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가 타고 온 배의 기를 쳐다보니 기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전장에서 격렬하게 싸우다보니 피가 튀어 기가 빨갛게 물이 든 것을 모른 채 그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장군은“아차 이거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구나”하고 자책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장군의 부인이 죽은 뒤 문산포에는 고기잡이배가 파선되고, 물에 사람이 빠져죽고, 동네에 여러 가지 사고가 나는 등 풍파가 잦았다. 동네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장군 부인의 원혼(寃魂)때문이라 여기고 그 혼백(魂魄)을 달래기 위한 굿을 벌였다. 그런 뒤 배가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니고 문산 사람들이 편안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문산에서는 3년마다 한번씩 도당굿을 크게 벌여오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는 어느 해 큰 홍수가 나서 짐더미 같은 게 포구에 떠들어왔다. 건져보니 그 속에는 신상(神像)과 같은 유물(遺物)들이 들어 있었다. 주민들은 이를 신성한 물건이라 여겨 당집 안에 모시고 받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의
도당은‘떠들어온 당’혹은‘물당’이라고도 부른다. 뱃사람들이 고기잡이 나갈 때 이 곳에 배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치성을 드리고 나가면 고기가 많이 잡히고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문산 도당굿 다시 복원되어야

근대 산업화와 도시화는 많은 농촌마을들이 해체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마을굿도 중단되고 말았다. 또한 1970년대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미신타파라는 명목하에 전국의 마을굿을 행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그러나 이 후 마을굿은 대동굿 형태로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위한 취지로 다시 복원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이것은 마을굿이 단지 미신이 아닌 마을의 공동체문화로 뿌리깊게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마을굿이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시에 마을민들의 대동 민속축제로 승화하고 있어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문산 도당굿은 경기도 굿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민속자료로서 시급한 복원이 필요하다. 전통은 계승되고 보전될 때만이 그 가치와 빛을 발한다. 우선 문산지역 주민이 나서 문산 도당굿의 복원을 논의해야 하고 이에 관련기관 단체의 관심도 함께 해야 할 시점이다.

글 / 이윤희(파주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작성일 : 2007-02-7 조회수 : 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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