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 (목)
역사와 전통
궁시(弓矢)는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분신
피난 때 집문서 버리고 화살제작 장비 챙긴 궁시장
화살대를 매만지며 산 지 벌써 50여년. 철부지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걷기 시작한 궁시장(弓矢匠)의 길이 어느 덧 칠순을 넘기고, 이제 그의 아들이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영집 유영기(楹集 劉永基,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선생의 얘기다. 평생을 전국의 수많은 활터와 대나무밭에서, 그리고 부레풀이 끓는 공방에서 분신과도 같은 화살과 함께 해 온 장인(匠人)이다.


유영기 선생은 1936년 경의선 옛 장단역 인근의 서장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화살을 만드는 살방(전방이라고도 한다)을 운영해 온 집안이었다. 선생이 태어났을 당시에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살방을 부친께서 운영하고 계셨고, 살방에서 만든 화살을 전국의 활터에 공급해 왔다. 영집 선생은 아버지의 화살 만드는 일을 돕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살방 가업을 잇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나이 13세가 되던 해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맞게 된다. 전쟁이 나자 선생은 부친 유복삼(劉福三)옹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만다. 당시 부친께서는 피난을 나오면서 집문서를 비롯한 가재도구들은 모두 버린 채 화살제작 장비와 민어부레만을 가지고 나왔다 한다.

피난을 나와 강화도에 잠시 정착 한 후 휴전이 되자 선생은 부친을 따라 파주 금촌의 황골에 정착해 살게 된다. 황골에는 큰 활터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선생의 부친은 전쟁으로 손을 놓았던 화살 제작을 다시 시작했고 선생도 부친을 도와 가업을 이어 갔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선생은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한 평생을 화살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6년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으로 지정 되어 장인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꾸준한 작업과 전수활동을 펼쳐 온 선생은 지금은 갈 수 없는 고향을 코앞에 둔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2001년 5월 19일 대한민국 최초의 활·화살 전문 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문화관광부 등록 제173호)을 개관했다.

국내 최초의 활·화살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을 찾으면 젊은 부부가 뛰어나와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바로 영집 선생의 아들, 며느리 내외다. 선생이 전수활동으로 대부분을 서울에 머무는 동안 박물관의 모든 일은 아들내외가 도맡아 하고 있다. 전시장의 전시품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일은 며느리의 몫이다. 약 30여 평의 작은 전시장 내부에는 우리나라 전통 활과 화살을 비롯해 외국의 활과 화살, 활쏘기에 필요한 도구들, 쇠뇌, 화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활은 생긴 형태에 따라 작궁과 만궁으로 나뉘고 재료에 따라 각궁, 목궁, 죽궁, 철궁 등으로 나뉜다. 화살은 재질에 따라서 죽전(竹箭)과 목시(木矢)로 나뉘는데 다량의 화살을 제작하려면 그 지방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쪽에서는 주로 대나무를 북쪽에서는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또는 싸리나무를 이용했다.

활쏘기 체험장 갖춘 영집궁시 박물관
또한 활로 발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화살은 발사방법의 발달로 쇠뇌와 대포 등으로도 발사하였으며 고려 말경에는 스스로 날아가는 로켓형 화살이 발명되기에 이르렀다. 화살의 종류로는 전투용, 수렵용, 신호용, 통신용, 의식용 등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 곳 전시장에서 모두 비교 감상 할 수 있다. 전시장 내에는 활과 화살 외에도 쇠뇌와 화차 모형도 볼 수 있다. 쇠뇌는 활을 발전시킨 것으로 쇠뇌의 앞부분에는 활을 설치하고 뒷부분에는 방아쇠를 장치하며 틀 위에 화살을 올려놓고 발사하는 무기이다.


전시장 관람이 끝나고 야외로 나오면 한쪽 켠에 직접 활쏘기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활쏘기 체험장을 마련해 놓았다. 이 곳에서는 직접 화살을 걸어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향해 발사해 볼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다. 체험장 옆으로는 다양한 우리의 토종 꽃들을 심어 놓은 휴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며느리가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동안에도 아들 유세현(43세)씨는 박물관 주변을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유세현 씨 역시 부친의 대를 이어 2003년 궁시장 조교가 된 예비 궁시장인이다.

아들 유세현 씨 또한 어려서부터 부친의 일을 도와 대나무 살을 벗기는 일에서부터 부친의 화살 만드는 일을 도왔다 한다. 그리고 1983년 궁시장의 길을 선택해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된 것이다. 현재 이들 부부는 슬하에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두고 있다. 유세현 씨에게 다시 화살제작의 길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겠냐는 질문에 “맨날 보는 것이 이것인데 자기가 하겠다면 해야겠죠.” 하며 엷은 웃음을 짓는다.

맨날 봐서 대물림이 되는 건가. 대대손손 이어지는 장인의 정신, 그 예술혼은 타고 나는 것일 게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그들만의 여유! 약삭빠르게 세상에 편승하지 못해 때론 외롭지만, 그 외로움 안에서 우리 전통의 활과 화살은 날마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글 / 이윤희(파주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작성일 : 2006-12-14 조회수 : 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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