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 (목)
역사와 전통
무건리 물푸레나무를 찾아서

어릴 적 종아리를 맞을 때, 회초리는 싸리나무나 물푸레나무였다. 다른 나무들과 달리 가지치기를 싫어하여 곧은데다가 질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물푸레나무’ 하고 소리 내어 부르면 파란 잎사귀들이 춤을 추며 달려올 듯싶게 싱그러운 이름에, 원망이 줄줄이 맺히기도 했던 추억의 나무였다. 그러니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에 천연기념물 제286호(1982. 11. 4)로 지정된 물푸레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만있을 도리가 없었다.

직접 가보니, 줄기가 위로 솟아 마치 2층으로 자란 모습이다. 나이는 약 200년 정도이고 높이는 13.5m, 가슴높이의 둘레는 2.7m. ‘수작골’이라는 마을의 정자나무였으나, 지금은 민가가 사라지고 군 사격장으로 바뀌었다. 호기심을 부르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월 3일 시민기자 월례회의 뒤풀이에서 물푸레나무를 찾아갔다 허탕 친 얘기를 꺼냈더니, 김용원 기자가 반색을 했다. “저는 세 번이나 허탕을 쳤습니다. 오늘 당장 다시 가봅시다.”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하여 무작정 나섰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파랗게 물들인다 하여 물푸레나무라지만, 쓰임새가 많아서 크게 자랄 수 없는 나무였다. 아니, 크게 자라도록 내버려둘 리 없는 나무였다.

한 시간을 달려 베세토국제학교 앞에 도착했으나, 물푸레나무 현주소인 무건리 465번지로 통하는 길은 철문으로 꽉 막혀 있었다. 군부대 협조 없이는 디딜 수 없는 땅이었다. 절차를 밟아서 사격장 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로 길게 펼쳐진 수백만 평 골짜기, 빽빽한 잡목 숲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찾는다는 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 아니겠는가. “이러니 제가 세 번이나 찾아왔고, 그중 두 번은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헤매다가 말았지요.” 그날 김 기자의 무용담에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낸 것은, 혼자가 아닌 둘이었으므로 가능했다.

2019. 1. 3. 촬영한 물푸레나무

[2019. 1. 3. 촬영한 물푸레나무]

듣기 좋은 물소리를 동무 삼아 개천 옆길 오르내리기를 거듭한 끝에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물푸레나무) 서식지로 군사훈련 및 출입을 제한함’ 경고판을 만났다. 반가웠다. 한달음에 언덕을 치달아 올라갔다. “오만한 물푸레나무네요.” 김 기자가 물푸레나무의 자태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과연 오만한 모습이었다. 눈앞에 두고도 그게 물푸레나무라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곧고 질긴 나뭇결 때문에 어릴 적에는 회초리로, 조금 더 자라면 도리깨휘추리로, 더 자라면 호미자루나 낫자루로, 더 자라면 도리깨자루나 도끼자루로, 더 자라면 절구대나 다듬잇방망이로, 더 자라면 제상에 오르는 목기의 재료로 쓰였다. 둘레 한 뼘을 넘기기 전에 잘리게 마련이련만, 한 아름이 훨씬 넘는 2.7m라니.

『장자』 ‘인간세편’에는 “……이건 반드시 좋은 재목일 거야라며 눈을 들어 그 가지를 보니 구불구불하여 용마루나 대들보가 될 수 없고, 고개를 숙여 그 굵은 밑둥치를 보니 구멍이 나고 갈라져 있어 관이나 곽이 될 수 없었다. 이건 과연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로구나. 그래서 이처럼 크게 되었구나. 아아! 신인들도 이 때문에 재주를 만들지 않았구나.” 하고 ‘무용의 유용’을 논했거늘, 무건리 물푸레나무는 거꾸로 ‘유용의 무용’을 이룬 셈일까.

어렵게 찾은 분풀이라도 하겠다는 듯 마구 사진을 찍어댔지만, 앙상한 줄기와 가지만으로는 허전했다. 김 기자가 금세 답을 찾아냈다. “우리 5월에 한 번 더 옵시다. 잘난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잎이 활짝 피어야 제격 아니겠습니까.” 내 입에서도 단번에 대답이 튀어나갔다. “그럽시다.”

2019. 5. 13. 촬영한 물푸레나무

[2019. 5. 13. 촬영한 물푸레나무]

5월 13일에 다시 찾아간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답게 싱그러운 잎사귀 춤을 추며 활짝 반겼다. 그 푸르른 자태를 사진에 담으면서, 포성이 멎고 철문이 사라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빌었다. 김 기자도 나도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오규원의 시 한 편으로 물푸레나무와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다독이며 돌아섰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
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무건리 물푸레나무]
○ 천연기념물 제286호(1982.11.4. 지정):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푸레나무
○ 크기: 높이 15m, 둘레 3.5m
○ 소재지: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 465

취재 : 강병석 시민기자

작성일 : 2019-5-21 조회수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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