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8일 (목)
역사와 전통
파주속의 전통사찰

전통사찰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사찰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에서 “전통사찰 보호법”을 만들어 지정번호를 주고 보호하고 있는 사찰을 말한다. 우리 파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3개 사찰과 대한불교 일승종 소속의 1개 사찰이 등록되어 있다. 파주속의 전통사찰을 알아본다.

전통사찰 제40호 검단사

검단사는 조계종 소속의 전통사찰로 1988년 7월 28일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 통일전망대 맞은편 쪽 검단산 산허리에 위치한다.

전통사찰 제40호 검단사

신라때 검단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검단조사의 생존연대는 불명확하지만 신라시대의 고승이라고 전해지며, 전국의 각지에 검단조사와 관련된 창건설을 가진 사찰이 분포하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 경기도문화재(제144호)

[목조관음보살좌상, 경기도문화재(제144호)]

법화전의 측문으로 보이는 풍경

[법화전의 측문으로 보이는 풍경]

검단사가 전통사찰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검단조사의 창건설과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존한 법화전에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으며, 경기도문화재(제144호)로 등록되었다. 1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는 후불탱화는 아미타불과 그 권속들을 그린 것으로, 관음세지 등 6대 보살을 함께 그린 칠존도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 경기도문화재(제144호)

[법화전 앞마당 감나무와 철쭉 꽃]

법화전의 측문으로 보이는 풍경

[검단사에서 보이는 한강]

최근 무량수전과 명부전을 증축하여서, 가람이 규모가 커졌는데, 단을 높이 올려, 한강의 물줄기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풍경과 살래길이 사찰과 연결되어 자유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질주하는 모습과 공릉천을 가까이 하고 있는 교하와 탄현 평야의 풍경을 시원스럽게 내려다 볼 수 있다.

무량수전과 명부전

[무량수전과 명부전]

중간에서 내려다보이는 법화전과 감나무들

[중간에서 내려다보이는 법화전과 감나무들]

그리고 오랫동안 들려오는 주지스님의 목탁소리와 신도들의 소원불사를 낭송해주는 소리는, 살래길을 걷는 발길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줄 것 같다. 낙조가 아름다운 검단사에서 사찰안의 감나무들과 느티나무는 그 염원을 오랫동안 들어서 연둣빛의 잎을 새롭게 내어놓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자연의 만남을 매일 반복한다.

검단사 위 검단산 능선길의 5층석탑

[검단사 위 검단산 능선길의 5층석탑]

전통사찰 제41호 보광사

보광사는 전통사찰 제41호로 1988년 7월 28일에 지정되었으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자락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보광사 해탈문

[보광사 해탈문]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8년(894년)에 왕명으로 도선국사가 지은 사찰로, 전쟁과 고려와 조선을 지내며, 불타 없어지기도 해서 여러 차례 수리하였고, 다시 지어졌다. 영조때 영조대왕의 생모 숙빈 최씨의 복을 비는 절로 삼아, 크게 중수되었다.

금천교를 지나 대웅보전으로 가는길

[금천교를 지나 대웅보전으로 가는길]

대웅보전과 연등

[대웅보전과 연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된 숭정칠년명동종이 있으며, 1981년에 세운 화강암계의 호국대불도 웅장하다.

호국대불

[호국대불]

호국대불 앞의 부처님오시는 날 연등

[호국대불 앞의 부처님오시는 날 연등]

보통의 대웅전은 회벽을 치는데, 보광사의 대웅보전은 두꺼운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 판벽화에 나타나는 코끼리 탄 동자상, 연화보살 그림, 신장상, 용선, 수석도, 연화생도 등이 이야기를 갖고 묘사되어 있다.

판벽화

[판벽화]

연화보살

[연화보살]

또한, 숙빈최씨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 앞에는 영조가 심었다는 300년 된 향나무가 어실각을 지금도 지키고 있으며, 영조의 친필이라고 알려진 대웅보전 현판과 왕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어간문이 표시되어 있다. 지붕위에는 청기와를 올려 왕이 방문한 사찰임을 표시하고 있다.

영조의 생모 위패를 모신 어실각

[영조의 생모 위패를 모신 어실각]

영조대왕의 친필이라 전하는 대웅보전 현판

[영조대왕의 친필이라 전하는 대웅보전 현판]

전통사찰 제87호 용암사

용암사는 조계종 소속의 전통사찰로 1988년 10월25일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다.

용암사 일주문

[용암사 일주문]

건립된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물 제93호로 지정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조성한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어, 약 900여년 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만들어진 11세기를 창건연대로 잡고 있다.

용암사 대웅보전

[용암사 대웅보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오르는 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오르는 길]

그 설화는 고려 13대 선종이 자식이 없어 셋째부인 원신궁주 이씨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어느날 원신궁주 꿈속에 두 도승이 나타났다.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이오.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주시오.”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깬 원신궁주가 왕께 아뢰니, 왕이 장지산에 사람을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았다. 장지산 아래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했다. 왕은 즉시 불상을 새기고 그해 왕자 한산후가 탄생했다고 한다.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이승만대통령이 세운 칠층석탑과 동자상

[이승만대통령이 세운 칠층석탑과 동자상]

한동안 소실되었던 절을 근대에 들어 재창건 하였으며, 1935년 장단군의 장선환 대사가 주지로 부임하여, 한때 혜음사, 대승사로 불리던 명칭을 용암사로 바꾸었다. 1954년 10월 이승만대통령이 칠층석탑 및 동자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승만 대통령 어머니가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에 불공을 드린 후 이승만 대통령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1군단 방문후 참모들과 방문하여 대웅전 앞 마당에 천일기도 광명등을 설치하여, 방문 기록을 남겼다.

용미리 마야이불입상

[용미리 마야이불입상]

지금도 후손을 갖고 싶은 불자들이 용암사를 방문하여 기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에 얽힌 탄생설화에 마음을 보태고 싶은 사람들의 위안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사찰 제88호 용상사

용상사는 일승종 소속의 전통사찰로 1988년 7월27일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월롱면 덕은리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한다.

월롱산 용상사 일주문

[월롱산 용상사 일주문]

거란이 993년, 1010년에 이어 1018년(고려현종 9년) 3차에 걸쳐 침략하였다. 소배압이 거느린 1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자, 현종은 평복차림으로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승리하여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여 절을 짓게 하고,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 짓게 하였다.

용상사 오르는 길

[용상사 오르는 길]

용상사 내려가는 길

[용상사 내려가는 길]

최근 화재로 대웅전이 불타, 대적광전을 신축 중에 있으며, 오는 석가탄신일(2019.5.12.)에 낙성 점안식을 거행하고, 봉축법회가 개최된다. 신축되고 있는 대적광전 대들보에는 4마리의 용이 대적광전의 부처님을 수호하고, 대적광전을 드나드는 신도들은 문을 지키는 2마리의 용이 여의주와 금강저를 들고서 불자들과 용상사를 수호한다.

낙성식을 앞둔 대적광전

[낙성식을 앞둔 대적광전]

대적광전 낙성과 점안법회 현수막

[대적광전 낙성과 점안법회 현수막]

금강저와 여의주를 든 용

[금강저와 여의주를 든 용]

대적광전 현판

[대적광전 현판]

사찰은 전국 어디를 가나 존재하고 위치한다. 설립과정과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선조들의 삶과 그 당시의 민초들의 마음을 알게 한다. 부처님 오시는 날! 사찰에 전하는 이야기를 알고 사찰을 방문하면, 그 의미가 가깝게 다가올 것 같아 파주속의 전통사찰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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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5-7 조회수 :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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