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6일 (일)
역사와 전통
제7회 우계사당 춘향제 및 문화행사 개최

우계 성혼(1535~1598)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유언을 작성하였다. 유언에는 “내가 군부(君父)에게 죄를 얻은 몸으로 심사를 명백하게 밝히지 못했으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옷은 포의(布衣-베옷) 로 하고 염은 지금(紙衾-종이이불)으로 할 것이며, 풀을 엮어 관을 덮고 소가 끄는 수레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그러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우계사당 춘향제 봉행

[우계사당 춘향제 봉행]

춘향제가 진행중이다

[춘향제가 진행중이다]

춘향제가 진행중인 동안 재실 앞의 참석자들

[춘향제가 진행중인 동안 재실 앞의 참석자들]

풀을 엮어 관을 덮고 묻힌지, 421년이 되는 올해 봄 춘향제가 우계사당에서 지난 4월 20일에 개최되었다. 춘향제는 최종환 파주시장이 초헌관, 우계사당 이영복 전도유사가 아헌관, 종헌관은 우계문화재단 성호경 이사장이 봉행했다. 또한, 전국에서 창녕성씨 후손들이 대종회를 중심으로 버스를 대절하여 참석하였다. 참석자가 500여명에 이르러 춘향제가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

춘향제 참석자들

[춘향제 참석자들]

춘향제 거안문

[춘향제 거안문]

행사 진행을 대형스크린으로 함께 관람

[행사 진행을 대형스크린으로 함께 관람]

우계선생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푸른 산 속에서 인간 세상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자그마한 집이지만 봄바람 끝없는 곳에서, 꽃은 웃고 버들은 잠들어 한가하기만 했던, 봄날의 시냇가(계상춘일)를 노래했다. 우계선생이 파산서실에서 은둔생활의 한가함은 지금 후손들의 삶의 유산이 되었음이다.

우계성혼선생의 시

[우계성혼선생의 시]

문화행사 진행표

[문화행사 진행표]

묘소를 바라보고 우측에 배나무 한그루와 함께 위치한 청송 성수침 선생의 묘비는 행장을 작성한 율곡이이의 글을 보고, 퇴계이황선생이 청송선생을 흠모하여 쓴 글로 한수 이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를 문화재 지정으로 요청한다. 또한 우계선생의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권유로 청음 김상헌이 글을 짓고, 신독재 김집이 글을 썼다. 이 또한 문화재 지정으로 우계선생의 삶과 그 정신문화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노력 중이라고 한다.

청송선생묘비와 우계성혼선생 신도비

[청송선생묘비와 우계성혼선생 신도비]

청송선생묘갈명 문화재지정 추진 중 안내문

[청송선생묘갈명 문화재지정 추진 중 안내문]

우계성혼선생 신도비 문화재지정 추진 중 안내문

[우계성혼선생 신도비 문화재지정 추진 중 안내문]

홍살문을 지나는 길에 벚꽃이 한창이다. 세월이 익어 가면 파주의 벚꽃명소가 되어 우계선생의 깊은 뜻을 흠모하는 이들이 오르는 길이 되고, 뭇 사람들의 마음속 대화를 이어주는 사색의 길이 될 것이다.

홍살문

[홍살문]

성혼선생 묘소

[성혼선생 묘소]

묘소에서 내려다본 우계사당

[묘소에서 내려다본 우계사당]

이어진 문화행사에서 우계선생의 “말 없는 청산이요!” 시조가 글씨로 새겨져 전달되고, 시조로 불리어져 참석자들에게 들려준다. 또한 시 “계상춘일”은 영어로 낭독되고 노래로도 불리어졌다.

홍보담당관 뉴미디어팀 031)940-4207

작성일 : 2019-4-23 조회수 :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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