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6일 (일)
역사와 전통
영조임금의 사모곡이 흐른다
- 숙빈 최씨의 묘소, 소령원 방문기

비밀의 정원을 찾아간다. 봄이 오는 소령원, 굳게 잠긴 빗장을 열면 고즈넉한 숲속에 은거하는 왕의 여인이 있다.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후궁인 숙빈 수양 최씨이다. 숙빈 최씨는 내명부의 최하위인 궁궐 나인에서 승은을 입어 비빈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소령원 안내판

[소령원 안내판]

소령원 입구

[소령원 입구]

숙종 임금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적통 왕이었다. 7세의 나이에 왕세자가 되었으며, 14세에 즉위하여 수렴청정 없이 정치를 시작한 영특한 임금이었다. 조선 중기에 시작된 붕당정치(朋黨政治)는 숙종 임금 대에 급기야 최절정에 이르렀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붕당정치의 폐해를 막고자 왕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선택한다.

서인과 남인 세력을 쥐락펴락하는 도구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이었다. 인현왕후의 등 뒤에 서있는 서인세력과 장희빈을 바람막이로 세운 남인세력은 왕의 변심에 따라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거나 관직이 삭탈돼 귀양을 가게 되었다. 한쪽 당파에 권력을 몰아주었다 급격하게 교체해 버리는 환국정치를 편 것이다. 이를 통해 병권을 장악하고, 대동법을 실시하고, 화폐를 유통시켜 상공업을 발달시켰다. 단종의 복위, 사육신과 소현세자빈의 신원 회복 등 역대 왕들이 해내지 못했던 많은 일을 해내었다.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며 문화 부흥을 꾀했던 숙종이 사랑한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드라마 속에서 숙종은 폐서인된 왕비(인현왕후)의 생일상을 차려놓고 슬프게 울고 있는 무수리 최씨를 발견한다. 당시 최씨의 나이는 24세였다. 숙종의 눈에 들게 된 숙빈 최씨는 왕비가 되는 영광보다 오래 살아남기를 바랐을 것이다. 인현왕후를 내치고, 자신의 아들을 낳은 희빈 장씨에게 자결을 명했던 남자, 왕의 진짜 얼굴을 일찌감치 보았던 것이다.

숙빈 최씨의 묘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 후면

[소령원 후면]

스스로 왕비가 되기를 두려워했던 여인 숙빈 최씨,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조선 제21대 왕 연잉군(延?君) 이금(李昑)이다. 숙종의 재위 기간은 46년, 다음으로 왕이 된 영조의 재위기간은 무려 52년이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숙빈의 묘호를 능으로 고치자는 상소가 전국에서 빗발쳤으나 당시 영조는 휘몰아치던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왕이었다.

영조 50년 1월 소령원을 능으로 봉하자는 상소를 접하자 "내가 만약 정성이 있었다면, 어찌 이 무리들이 이와 같이 하겠는가?‘(영조실록 122권, 영조 50년 1월 22일 병자 2번째 기사)라며 거창 유생 김중일 등을 간신으로 벌하고 만다. 권력을 향한 줄 닿기에 끊임없이 이용당하는 어머니가 가슴 아팠던 것이었다.

소령원 비각

[소령원 비각]

소령묘비

[소령묘비]

1726년 11월 6일, 영조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절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담아 사모곡을 써 바친다. 영조의 친필인 ‘숙빈최씨사우제문원고(英祖御筆-淑嬪崔氏祠宇祭文原稿)’와 1744년(영조20)에 쓴 ‘숙빈최씨소령묘갈문원고(英祖御筆-淑嬪崔氏昭寧墓碣文原稿)’는 2010년 국가보물 제1631-1호와 제1631-2호로 각각 지정됐다. 또한 당시 양주 땅에 속했던 소령묘역을 그린 묘산도(숙빈최씨 소령원도 淑嬪崔氏 昭寧園圖) 4점은 2007년 보물 제1535호로 지정돼 한국학연구소에 소장돼 있다.

보물 제1535호 소령원화소정계도

[보물 제1535호 소령원화소정계도]

보물 제1535호 소령원도여산론

[보물 제1535호 소령원도여산론]

보물 제1535호 소령원 배치도

[보물 제1535호 소령원 배치도]

보물 제1535호 숙빈최씨 소령원도

[보물 제1535호 숙빈최씨 소령원도]

보물 제1631-1호 영조어필사우제문

[보물 제1631-1호 영조어필사우제문]

보물 제1631-2호, 영조어필 소령묘갈문

[보물 제1631-2호, 영조어필 소령묘갈문]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아늑한 숲에 자리한 소령원에 들어서면 효성 지극한 영조의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묘비명을 쓴 이도 역시 영조 임금이며, 여의주를 물고 있는 비대 위에 대궐의 지붕을 닮은 신도비 또한 웅장하다. 직접 머물지 못하는 날은 아랫사람을 시켜 시묘살이를 하던 여막지도 한 편에 남아 있다.

신도비

[신도비]

신도비 앞 정원

[신도비 앞 정원]

인근의 보광사를 기복사찰로 삼고 제사 때 쓸 향나무도 손수 심었다 하며, 상궁나인들이 묵을 숙소로 만세루를 지으라 했다. 보광사 대웅보전 좌측에는 영조의 효심이 담긴 향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숙빈 최씨의 신위가 보관된 어실각이 자리한다.

시묘살이 터
숙빈 최씨의 신위가 보관된 어실각이 자리

[시묘살이 터]

숙빈 사후 묘로 조성되었던 소령원은 육상궁을 거쳐 소령원으로 승격되었고, 1991년 국가 사적 제358호로 지정되었다.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묘소 수길원도 건너편에 위치하나 두 곳 모두 비공개 원소라 취재와 연구 목적으로만 출입이 일부 허용된다. 관리 주체는 문화재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이다.

정빈 이씨의 묘소 수길원
정빈 이씨의 묘소 수길원 전경

[정빈 이씨의 묘소 수길원]

○ 소령원 위치: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길 41-65

취재: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9-4-15 조회수 :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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