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5일 (토)
역사와 전통
단종과 충정공 황보인
춘원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

춘원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를 보면, 세자(조선 제5대 왕인 문종)가 병약함을 걱정하여 세종이 당시 대신들인 황희, 황보인, 김종서, 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세손의 앞날을 부탁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세종의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세종 사후 문종이 그 뒤를 이었지만 병으로 재위 2년 4개월만에 39세의 나이로 붕어한다. 세자인 단종이 조선 제6대 임금에 오르는데 이때 나이가 13세였다. 이럴 경우 대비가 수렴첨정을 하지만 대비가 없었고,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있었지만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다.

때문에 실권은 문종의 유명을 받은 이른바 고명대신(顧命大臣)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에게 있었다. 그들은 어린 임금 핑계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다. 선대 임금의 유언에 따라 어린 임금인 단종을 보필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기회를 엿보던 수양대군은 단종 원년인 1453년 11월 10일 고명대신을 비롯한 수십 명을 제거했다. 뿐만 아니라 동생인 안평 대군도 죽이고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다.

영월 단종의 장릉
영월 단종의 무덤

[영월 단종의 장릉]

황보인은 1414년(태종 1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김종서와 6진을 개척하고 병조판서를 지낸 뒤에 좌참찬과 우찬성, 좌찬성을 거쳐서 우의정이 되었다.

단종을 잘 보살피라는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호하다가 67세의 나이에 김종서와 함께 피살된다. 처남 이제동이 의침과 관각을 갖추어 파주 천현면(현 법원읍 동문리) 월계봉에 안장했다.

그 후 1519년(중종 14년) 외손 권벌이 이름과 간략한 이력을 기록한 묘비를 세웠다. 1746년(영조 22년) 신원되고 1758년 ‘충정’으로 시호를 받았다. 신원된 이후 묘비를 새로 세웠다고 전해지나,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어 현재는 개수한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묘표는 중종 때 만든 것으로 희소성과 역사적 가치가 있다. 묘역에는 묘 1기, 비석 3기, 문인석 2기, 장명등 1기, 망주석 2기가 전한다. 충정공 황보인 묘역은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3호로 2018년 11월 30일 지정되었다.

단종을 잘 보살피라는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호하다가 67세의 나이에 김종서와 함께 피살
1519년(중종 14년) 외손 권벌이 이름과 간략한 이력을 기록한 묘비를 세웠다.

[충정공 황보인 묘역]
○ 소재지: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93-1

충정공 황보인 묘역
충정공 황보인 묘역은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3호로 2018년 11월 30일 지정

취재: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9-3-12 조회수 :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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