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5일 (월)
역사와 전통
인도주의를 실천한 역사의 현장
- 파주 적군묘지(북한군/ 중국군묘지)

적성에서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자장리 대로변에 낯선 간판이 서 있어 호기심에 차를 세웠다. ‘북한군/ 중국군 묘지안내도’ 라는 간판과 함께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6.25전쟁(1950. 6.25.∼1953. 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
북한군/ 중국군 묘지안내도

묘역은 왼편이 1묘역으로 북한군 유해만 안치되어 있고, 오른편이 2묘역으로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었다. 이곳은 6.25때 임진강을 넘어 온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와 6.25이후 1.21사태처럼 북한의 공비침투 등으로 사망한 북한군 유해도 함께 안장되어 있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7년까지 43구의 중국군 유해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 측에 인도한 바 있다. 그 이후에는 북한 측의 인수 거부로 송환이 중단되었다가 종전 61년 만인 2014. 3.28 우리 정부는 중국군 유해 437구를 직접 중국으로 소환했다. 이들 유해는 기존에 넘겨 준 유해들이 묻힌 묘역과는 달리 중국 내 6·25전쟁 전사자 안장시설인 '항미원조열사능원'에 안치되었다.

1996년 묘역 조성당시에는 봉분을 만들어 그 앞에 일련번호를 매긴 나무 팻말을 세웠으나 지금은 평장을 하고 육안으로 볼 때 가로 30㎝, 세로 25㎝ 내외의 평 비석으로 조성되었다. 묘비명 중에는 ‘무명인’으로 표기된 것도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의 치열함을 대변해 준다. 이 묘역은 전쟁과 포로에 관한 인도주의 원칙인 제네바 협약에 따른 조치로 만들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고 한다.

중국군 무명인
북한군 무명인
소위 조명환

사람의 죽음은 이념을 초월하는 용서와 화해의 힘이 있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지인이나 가족이 죽으면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다 모여서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죽음이든 헛된 죽음은 없으며, 죽음의 순간만은 모두 숙연한 가운데 모든 것을 용서하고 놓아주게 된다.

이곳 파주가 6.25 당시 치열한 전장이었기에 적군묘지를 이곳에 조성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이곳 파주가 6.25 당시 치열한 전장이었기에 적군묘지를 이곳에 조성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수년 전 이곳을 찾은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은 ‘적군 묘지 앞에서’ 라는 시를 남겨 적군병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음은 미움과 사랑을 초월하는 힘을 설파하였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분단의 아픔과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애타는 마음을 노래했다. 나 역시 묘역을 거닐며 갈 수 없는 북녘 땅과 우리 민족이 겪은 삶의 시련과 연단을 안타까워했다. 다시는 이 땅에 적군의 시신을 묻어야하는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 북한군/중국군 묘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

취재 : 김용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10-2 조회수 :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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