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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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답사 ‘첫만남 같이가치’
DMZ권역(덕진산성, 허준묘,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파주를 알리기 위한 사업 중 ‘오감만족 파주시티투어 휴’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이라면,  ‘첫만남 같이가치’(주최: 파주시/주관: 파주문화원)는 파주시민을 위한 이동교실이라 불러 마땅하리라. 유입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때, 파주시민이 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역사와 인물을 익히는 공부야말로 무엇보다 뜻깊은 일 아니겠는가.

파주문화원 문화해설사회 김순자 회장의 일정 안내로 공부가 시작되었다. “‘첫만남 같이 가치’는 4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첫날은 적성-임진강 권역의 호로고로성과 경순왕릉을, 2일째는 조리-광탄 권역의 파주삼릉과 소령원을, 3일째는 탄현권역의 검단사와 장릉을 답사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DMZ 권역의 덕진산성과 허준묘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사이 투어버스는 통일대교에 도착,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마친 다음 민통선 안으로 들어섰다. 첫 목표는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번지, 초평도가 내려다보이는 덕진산성이다.

첫 목표는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번지, 초평도가 내려다보이는 덕진산성
초평도가 내려다보이는 덕진산성

7세기 말경 기존의 고구려 성곽을 신라가 견고한 석축으로 고쳐 쌓았고, 이후 수개축이 되풀이되면서 삼국~조선에 걸쳐 다양한 성곽 축성기술이 집약되었다. 인근의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 북안의 고구려 유적이다. 김회장의 해설은 성큼 조선조 시대로 건너뛴다.

“덕진산성은 광해군 시절, 장단부사와 경기방어사를 겸했던 이서(李曙) 장군이 반정을 꿈꾸며 군사를 기르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는데, 경기관찰사로 전임됐을 때 이괄(李适)의 반란을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아 파직되었습니다. 훗날 총융사로서 남한산성을 수축해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과로로 순직했답니다.”

다양한 성곽 축성기술이 집약
해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반정의 애환으로 접어든다.

해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반정의 애환으로 접어든다. “이서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배에 오를 때,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돌아올 때 반정에 성공하면 돛대에 붉은 깃발을, 실패하면 흰 깃발을 달고 올 것이오. 기다림에 지칠 무렵 멀리서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오는 장군의 배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언덕을 내려갔답니다. 그런데 막상 강변에 닿아서 바라보니 흰 깃발이 보였답니다. 장군의 아내는 역적의 아낙으로서 감당해야 할 곤욕을 피하려고 강물에 투신하고 말았답니다. 그곳에 도착해 비통해하는 장군 앞에 사공이 엎드려 빌었답니다. ‘소인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웃옷을 벗어 깃발 위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죽여주십시오.’”

안타까운 마음 추스르며 둘째 목표인 허준묘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해설은 기대를 훌쩍 넘어선다. 구암 허준(舊巖 許浚)은 동양의학의 성전으로 일컬어지는 ‘동의보감’과 함께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뒤늦게, 양천허씨 족보의 ‘진동면 하포리 광암동 선좌 쌍분’이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서 1991년에야 발견되었다고 한다. 민통선 안쪽이라서 그분을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흠이다. 서자로 태어난 신분에 좌절하지 않고 뛰어난 의술을 펼쳐 수많은 인명을 구했으며, 백성을 위해 귀중한 처방전을 모아서 공개한 저서가 동의보감이다.

둘째 목표인 허준묘로 향했다.
서자로 태어난 신분에 좌절하지 않고 뛰어난 의술을 펼쳐 수많은 인명을 구했으며, 백성을 위해 귀중한 처방전을 모아서 공개한 저서가 동의보감

오후에는 도라산역을 거쳐 파주시 장단면 제3땅굴로 310, 도라산전망대로 향했다. 도라산역 앞에는 경의선 복원을 위한 침목기증자명단이 커다랗게 설치돼 있었다.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그 앞에 서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이름을 찾아본다는 것. 자신이 침목을 기증한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혹시라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과 동명이인이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라도 하는 것일까.

도라산역
파주시 장단면 제3땅굴로 310, 도라산전망대

청명한 날씨가 시야를 멀리까지 깨끗하게 틔웠다. 선량한 사람들이 나선 투어라서 그런가보다는 덕담을 나누면서, 우르르 전망대의 쌍안경에 눈을 갖다 붙인다.

그러나 멀리 개성공단의 건물들과 송악산 아래의 개성 시가지며, 북한 기정동 마을에 내걸린 붉은 인공기까지 맨눈으로도 잘 보였다.

그곳에서도 김회장의 해설이 빛을 발했다. “저기 대성동 마을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잘 보이지요. 처음에는 남과 북이 국기게양대를 더 높이려고 경쟁을 벌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남측에서는 100m에서 딱 멈췄는데, 북측에서는 계속해서 160m까지 높였답니다. 문제는 높이가 아니라 기술의 차이지요. 게양대에 걸린 국기의 크기가 100평쯤 되는데, 남측의 태극기는 바람에 잘 휘날리고 북측의 인공기는 그렇지 못하답니다.”

처음에는 남과 북이 국기게양대를 더 높이려고 경쟁을 벌였다고 해요.
그곳에서도 김순자 회장의 해설이 빛을 발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찾아간 곳은 군내면 제3땅굴로 210-358, 제3땅굴.

현재까지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총 4개란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경기도 연천에서, 제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에서, 제3땅굴은 1978년 10월 경기도 파주에서, 제4땅굴은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되었다.

땅굴에 들어갈 때 카메라는 물론 핸드폰의 소지도 금지됐다. 소지품을 보관함에 넣도록 되어 있으니 당연히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해설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 땅굴 발견을 발표했을 때 북측에서는, 되레 남측에서 파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그때 남측에서는 사실을 밝힐 증거 세 가지를 제시했답니다. 첫째,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이 남쪽을 향하여 뚫려 있다. 둘째, 땅굴의 기울기가 1000m당 3m씩 아주 미미하게 높아지면서 지하수가 북쪽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다. 셋째, 석탄을 캐던 갱도라는 변명 또한 그곳이 화강암 지질이므로 석탄이 나오는 곳이 아니므로 거짓이다. 아무튼 제3땅굴은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에 달하고,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한 규모이며, 서울에서 불과 52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땅굴들보다 훨씬 위협적이라네요.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km, 통일촌 민가에서 3.5km밖에 안 되어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랍니다.”

제3땅굴 입구
민통선을 빠져나온 투어버스

통일대교 초소에서 다시금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마친 다음 민통선을 빠져나온 투어버스는, 아침에 출발했던 자리로 되돌아와 시민들을 내려놓았다. 빈자리 하나 없이 투어버스를 꽉 채웠던 시민들은 ‘첫만남 같이가치’는 내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인사로 주고받으면서 헤어졌다.

취재 : 강병석 시민기자

작성일 : 2018-9-10 조회수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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