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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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의주로 제4구간 파주고을길 탐방

한양으로 통하는 경기옛길 의주로, 제4구간을 소개한다. 신산5리에서 선유삼거리까지 이르는 제4구간에는 파주향교, 파주 교육박물관, 서작포, 우계 성혼묘와 기념관 등 과거와 현대를 잇는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한양으로 통하는 경기옛길 의주로, 제4구간

신산리에서 광탄전(넓은 여울)을 건너 가재미 고개를 넘는다. 지금은 새로 뚫린 도로가 있어 바로 연풍리까지 이어지지만, 구불거리는 옛길을 가면 자연의 형태와 삶의 모습에서 빚어진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가재미고개는 고갯길 양쪽으로 나뉜 5개의 산봉우리가 마치 잠들어있는 개의 모습을 연상시켜 ‘개재미’라 부르던 고개이다.

파주목 관아 문루 주춧돌

파주목 관아 문루 주춧돌

파주초등학교

파주초등학교

교육박물관 입구

교육박물관 입구

교육박물관 입구 정면

교육박물관 입구

고개를 넘어 만나는 마을은 연풍2리이다. 집집마다 대추나무를 많이 심어 대추벌이라 부르던 곳이다. 연풍리에서 좌측으로 2~3분 더 달리면 바로 파주읍에 다다른다. 새주소로 바뀌기 전까지 이 마을의 행정구역명은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였다. 조선시대 목사(牧使. 조선시대의 관리. 현재의 시장급)가 파견되었던 ‘목(牧. 고려·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단위)’ 단위의 중심지로, 현대의 ‘시청소재지’와 비등한 개념이다.

목사가 직무를 보던 파주목 관아터에는 현재 파주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 파조초등학교가 들어서있다. 이 학교의 전신은 1906년 04월에 개교한 광흥학원이다. 6.25 전쟁 시 천막을 치고 이동하면서까지 수업을 지속하여 2018년 2월에 109회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교 본관 건물 뒤쪽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며 개관한 파주 교육박물관이 있다. 지난 시절 파주를 거쳐 간 관리들의 송덕비, 관아 건물의 문루 주춧돌 등을 보고 교육박물관에 들어간다. 박물관 안에는 파주 교육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교육 역사관, 매직 비전과 검색 등을 통해 파주 전체의 교육 기관 등을 알아보는 파주교육관, 그 외에도 옛날 교실 체험실, 민속박물관 등이 있어 어린이와 어른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파주향교

파주향교

파주향교 전경

파주향교

파주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끼고 봉서산 고갯길을 오르면 우측 아랫목에 자리 잡고 있는 파주향교가 보인다. 파주향교는 고려 말 1304년(충렬왕 30) 대성전 건립을 시작으로, 태조 7년 서원 산하의 제향 공간을 창건, 세종 1년에 중창한 관립 학교이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6학자,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학자 18현을 제사지내는 대성전, 학습 공간인 명륜당, 부속 건물인 동무와 서무, 동재와 서재, 교직사 등이 있으며, 느티나무 2그루와 향나무 1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파주향교 대성전은 1983년 9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자정되었다. 그 외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파주시지정 향토유적 제18호인 파주리 당간지주 등이 있다.

파주향교를 나와 문산 방향으로 이어진 개미고개를 넘어 만나는 마을이 파주읍 향양리 서작포 마을이다. 고개를 넘자마자 우측 마을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장승 2구가 서있는데, 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숭배했던 민간신앙의 산물이다. 사찰 입구나 박물관 곳곳에서도 장승을 볼 수 있으나 전통적으로 지켜온 파주의 민간신앙 상징물은 용미리 진대, 서작포 장승, 탄현면의 선돌 등으로 압축된다.

우계사당

우계사당

우계기념관

우계기념관

서작포 장승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150여 미터 들어가면 우계 성혼 선생의 기념관과 사당, 묘역 등을 볼 수 있다. 성혼(成渾. 1535년 중종 30 ~1598년 선조 31)선생은 율곡 이이 선생과 함께 지우를 나눈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율곡 선생의 거듭된 추천과 선조 임금의 총애로 공조좌랑, 지평, 사헌부장령,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우계 성혼 묘가 있는 파주읍 향양리를 거쳐 우측으로 선유리 시내를 지나면 독서 삼거리가 나온다. 4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다리가 놓였는데, 행정구역은 선유4리로 예전에는 이곳이 독개울, 독서울, 독서동 등으로 불리었다. 숙종 때의 문신인 쌍백당 이세화(李世華 1630년 인조 8 ~ 1701년 숙종 27) 선생이 이곳에 묻힌 후 숙종 임금이 다녀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학문에 정진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이어 선유4리 독서 삼거리에서 적성, 전곡 방향으로 이어져 임진각까지 이르는 의주로 제5구간의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된다.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4-10 조회수 :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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