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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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발의로 세워진 파산서원을 찾아
- 시대정신을 가르치는 곳이 되길

설 명절 끝자락에 파산서원(경기도문화재 제10호)을 찾았다. 이곳은 나지막한 파산을 배경삼고 늘 물을 품고 흐르는 늘노천을 앞에 두고 멀리 파평산을 바라보고 자리 잡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파산서원(경기도문화재 제10호)

파산서원은 적성현감이었던 청송 성수침(1943~1563)을 기리기 위해 이이, 백인걸 등의 발의와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1568년(선조 1년)세웠다. 지금은 아들 우계 성혼(1535~1598), 형제 성수종(1495~1533), 휴암 백인걸(1497~1579)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있다.

위폐
파산서원 안내

 

성수침은 조광조의 제자로 도학에 능한 기호사림의 대표적 인물로 정절을 지켜 존경받았다. 그는 주변사람들이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것을 보고 벼슬에서 물러나 처가인 파평으로 왔다. 그곳에 죽우당을 짓고 아들 성혼을 가르쳐 이웃마을에 사는 율곡 이이와 학문으로 겨룰 정도가 되었다.

 

성혼의 벗인 율곡 이이는 성수침의 학문과 뜻을 높이 사 그를 기리는 사원을 짓자고 인근 선비들에게 통문을 돌렸다. 성혼의 다른 벗인 이제신은 성혼에게 아버지 성수침과 숙부 성수종의 학문 세계가 높음을 언급하며 서원을 짓는다고 하니 율곡 이이와 잘 상의하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이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성수침의 호를 따 청송서원이라 칭하고 서원을 짓기 시작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다. 전쟁 후 서인들은 그들의 학문적 본거지인 파산에 다시 서원을 짓자는 뜻을 모았다.

 

청송서원은 백홍우의 상소로 1650년(효종 1년)에 파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694년(숙종 20년)에도 사액을 받았고 서원 서쪽에 있는 경현단도 1897년(순조 7년)에 사액을 받았다. 경현단에는 조감, 성문준, 신민일을 기념하기 위한 비가 있다. 파산서원은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사액을 세 번이나 받았던 것이다.

 

공덕비와 유허비

공덕비와 유허비

찰륜당

찰륜당

삼문

삼문

하마비

하마비

 

 

율곡 이이의 발의에 의해 세워진 파산서원에는 하마비, 홍살문, 삼문, 찰륜당, 경학단, 관사가 있다. 서원에서 서쪽으로 100여미터 지점에는 성수침 선생의 공덕비와 우계 성혼의 유허비가 나란히 서있다.

‘귀가쫑긋’이라는 일산에서 온 인문학 모임 회원 대여섯 분이 파산서원을 찾았다. 논어와 주역을 강의한다는 분은 “파평산에 왔다가 사원이 있어 들렀어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율곡 이이 선생 등이 세운 곳이네요.”라고 한다.

 

율곡 이이는 청송 성수침이 벗의 아버지이지만 학문이 높고 뜻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서원을 짓자고 했을 터이다. 파산사원은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제향 기능만 남아있다.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런 시대에도 청송 성수침은 아들 우계 성혼을 가르쳐 큰 인물로 키웠다. 이처럼 파산서원이 미래세대인 지역의 청소년에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도리와 시대정신을 가르치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파산서원
파평면 파산서원길 24-40

 

취재 : 최순자 시민기자

작성일 : 2018-3-13 조회수 :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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