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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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선사유적지를 돌아보다-2”
- 청동기시대 -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BC 2,000~1,500년으로 알려져 있다. 청동기의 원료인 구리와 주석 등의 재료는 매장량이 적어 귀하고, 녹여서 만드는 방법이 어려워 일반화 되지 못했다. 따라서 주로 지배계층의 무기, 제사용 도구, 장식품으로만 사용되고 농기구를 비롯한 생활도구는 간석기나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밭농사지만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기도 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의 하나로 고인돌(지석묘)을 들 수 있다. 고인돌은 사람이 죽으면 묻었던 일반적인 무덤의 형태인데, 한마을에 규모가 큰 것, 작은 것들이 섞여 있다. 이는 계급(지배자와 피지배자)이 있어 신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파주의 임진강 연안은, 청동기인들이 살기 좋은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한수 이북 최대의 집단적인 고인돌 분포지이다. 파주의 고인돌로 ‘파주 덕은리 주거지 및 지석묘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48호)과 ‘파주 다율리. 당하리 지석묘군’ (경기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29호) 및 ‘진동면 하포리 지석묘’ (파주시향토유적 제26호)가 보호 관리되고 있다.

 

‘파주 덕은리 주거지 및 지석묘군’을 찾아서..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48호, 기원전 7세기 후반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파주 덕은리 주거지 및 지석묘군’과 관련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오늘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 16년 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찾았다. 월롱역을 떠난 내 애마(?)는 엘지로에서 엘지디스플레이 단지를 버리고 직진하여 SK주유소를 지나 ‘덕은리지석묘’ 안내판을 따라 우측 경사로를 내려갔다. 다시 우측으로 얼마간 진행하자 서영대학교에서 세운 듯한 ‘덕은리 지석묘’ 안내판이 좌측으로 보이자 애마를 노견에 세웠다.

고인돌 안내 이정표

장맛비가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뜨거운 햇볕은 무척이나 후덥지근하게 만들었다. 콘크리트 경사로를 오르자 2004년에 세운 수원백씨 곡산공(문경공 휴암 백인걸 후손) 종중묘역이 보인다. 종중묘역과 추원재 재실사이의 보도 불럭이 깔린 경사로를 오르자 땀이 나오기 시작한다.


힘들게 불럭 경사로를 오르자 이내 비포장 흙길이 나를 기다린다. 고인돌 산책로는 무성한 나뭇잎을 정리하지 못해 마치 정글사이를 헤집고 나가는 형상이다.

 

고인돌 산책로

얼마를 올랐을까? 경사로를 계속 올라오자 성치 않은 무릎이 말썽을 부리며 시큰거린다. 바람은 한 점도 없고, 땀은 비 오듯 쏟아져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다. ‘이런 낭패가 있나? 면 타월 하나 챙겨올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응급조치로 티셔츠를 당겨 얼굴을 닦아내고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잠시 숨을 돌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숲길 사이로 시야가 밝아지며 조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인돌 조형물

고인돌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처음에 보이는 고인돌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의 4기를만난다. 처음 본 느낌은 강화군 하점면의 고인돌에 비해 턱없이 작아 ‘에게~ 이게 고인돌?’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고인돌
고인돌 다른각도사진

물론 사전에 기본정보를 알고 왔지만 큰 것에 대한 열망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그래도 오랜만에 처음 이곳을 찾았고, 이 더위에 어렵게 올라왔으니 보고나 가자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살펴보며 사진을 찍었다. 

 

고인돌 가까이서 찍은사진
고인돌 다른컷

무덤방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다 갑자기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작은 무덤방에 시신을 어떻게 집어넣지?’ ‘북방식인 탁자식 고인돌은 기반식이나 개석식처럼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고 묻은 다음에 그 위에 고인돌을 세우는 형태가 아닌데...’ ‘혹시 시신을 쪼그려 앉은 형태로 만들어 집어넣었나?’ 아무튼 당장은 풀지 못해 숙제로 남기고, 첫 대면한 고인돌 4기를 뒤에 두고 고인돌 산책로로 다시 올랐다. 

 

작은 언덕 넘어 평지가 나오자 잠시 쉬어 가라고 만들어놓은 조금은 생뚱맞은 평상이 보인다. 평상을 지나쳐 좌측으로 길을 잡자 지척에 또 다른 고인돌 군이 보인다.

다가서자 가족 무덤처럼 크고 작은 고인돌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마치 한 가족인양 아빠, 엄마, 아기 무덤처럼 보였다.

고인돌 3점

모두 7기를 살펴보고 발길을 뒤로 돌려 그 생뚱맞은 평상에 걸터앉아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고인돌로 쓰일만한 커다란 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은강화 고인돌처럼 평지도 아니고 82m 높이에 능선을 따라 만든 탁자식 고인돌이다.  과연 이곳의 고인돌에 쓰인 돌을 어디서 찾아서 혹은 어디서 채취해서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옮겨 만들었을까? 나는 공학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고인돌의 덮개돌 중량 계산해 보았다.

 

이곳에서 제일 큰 덮개돌의 체적은 3.3 m * 1.9 m * 0.5 m 정도 된다. 여기에 체적효율 60%에 화강암의 단위중량 2,600 kg/㎥ 적용해보면 대략 4.9 톤의 중량으로 계산된다. 이 중량을 한 번에 들어 올리려면 대략 1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물론 한번에 100여명이 들기에는 바위가 작아서 들 수도 없겠지만, 지지 돌을 세우고 덮개돌을 위로 올려 고정할 때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이용하여 밀고 잡아당겨서 운반했으리라 추정된다. 따라서 100여명 보다는 적은 인원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강화도와 같은 평지가 아닌 경사가 급한 이곳을 고려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지금 엘지디스플레이단지가 있는 월롱산에서 고인돌에 쓰일 돌들을 채취(바위 틈새로 사이로 나무를 쐐기처럼 여러 곳에 박아 넣고 쐐기나무에 계속해서 물을 부어주면, 나무가 팽창하며 바위를 균열시켜 떨어지게 함)하여 이곳까지 옮겨와 고인돌을 조성했다고 추정한다면, 결코 덕은리 고인돌의 크기가 강화 고인돌보다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사시대에 장례방법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고 수장(시신을 물에 넣음), 풍장(시신을 들판에 방치함), 조장(시신을 새들의 먹이로 제공함), 초분(지금도 전라도 해안과 섬 등에서 행함. 시신을 수풀로 덮음) 등 여러 방식으로 장사를 지내고 여러 달이 지난 후 유골만 따로 수습하여 고인돌 무덤방에 차곡차곡 쌓아 넣어 안치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고인돌 내부
주거지 터 자리

내가 생뚱맞은 평상이라고 했고 잠시 숨을 돌렸던 바로 이 자리 앞이 주거지 터라는 사실을뒤늦게 알았다. 이렇듯 의미 깊은 주거지터에 안내판도 보호펜스도 없이 아무렇게 방치되어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실정이라 발굴당시처럼 복원은 못할지언정 안내판이라도 설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1963년 이곳은 얼마나 외진 시골이었을까? 그 무렵 덕은리에서는 역사적인 유물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덕은리 고인돌유적’은 광복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발굴한 청동기 유적이다. 1963~1965년 사이에 교하의 고인돌 유적과 함께 대대적으로 발굴이 이루어졌다. 고인돌 아래에서 이렇다 할 유물이 발굴되지는 않았으나, 고인돌을 발굴하던 학자들이 깜짝 놀랐다. 주거지는 고인돌 밑에서 확인되었다. 크기는 1,570×370㎝이고 평면 세장방형으로 네 모퉁이는 직각에 가깝다. 깊이는 30∼90㎝로 구릉의 경사에 따라 차이가 많다.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이고 작은 기둥구멍이 매우 정연하게 네 벽선을 따라서 촘촘히 발견되었다. 바닥에서는 얇게 진흙을 깐 흔적이 발견되었고 화덕자리는 맨바닥을 이용한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2기가 동쪽으로 치우쳐 조사되었다.

 

덕은리 주거지(경기도박물관)

출토유물은 민무늬토기 파편을 비롯하여 외날과 안팎날의 돌도끼, 돌칼, 숫돌 등이 있다. 특히 북쪽 벽 가까이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5개의 숫돌은 석기의 재질인 슬레이트 조각과 함께 있어 이곳에서 석기 제작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숯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7세기 후반으로 밝혀져, 종래 일본학자들이 간 돌검은 세형동검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게 되었다. 고인돌은 모두 북방식인 탁자식이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가 약 100㎝이며, 그 아래 4매의 판돌로 만든 무덤방〔墓室〕은 크기가 약 50×35㎝이다. 또 다른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가 330㎝로 군집을 이루고 있는 주변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크며 능선상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무덤방은 4매의 판돌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140×60×40㎝이다. 대체적으로 이곳의 고임돌은 높이가 낮아 고인돌의 전체 크기와 무덤방이 작은 편이다. 【참고문헌: 한국지석묘연구 (국립박물관, 1967)】

 

참고자료: 파주의 문화유산(파주시), 한국지석묘연구(국립박물관,1967),  파주이야기(파주이야기가게,2016)

소 재 지 :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산 46-1가는방법 : 월롱역 -> 엘지로 -> LG로 교차로 -> SK 주유소 -> 우회전 ->           정이품 식당 -> 고인돌 산책로 진입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

작성일 : 2017-12-26 조회수 :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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