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9일 (일)
소통과 나눔
배둘레햄길, 심학산 둘레길
둘레길 걸으며 뱃살 허릿살 빼는 즐거움

배둘레햄! 허릿살의 은어다. 그놈의 배둘레햄 때문에 둘레길을 자주 찾는다. 둘레를 없애려 둘레를 걷는 게 어쩐지 필연은 아닐까. 암튼 요즘 난 자주는 아니더라도 심학산 둘레길을 돈다. 그것도 심장을 안쪽에 두고 걸어야 좋다는 미확인 정보를 한없이 신뢰하면서 고스톱 방향으로만 고집하면서 말이다.

지난 해 늦가을 아님 초겨울, 파주시는 발빠르게 심학산 둘레길을 만들었다. 마침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이 길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때였다. 자동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무빙워크 따위의 편리한 시설로 인해 현대인은 걷지를 않는다. 직립보행으로 인해 영장류가 된 인간이 그렇다고 걷는 것을 포기하겠는가?

먹을 게 너무 많아 토하면서도 먹었다는 로마시대의 귀족들처럼 우리 현대인은 죽자살자 먹어댄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도 있다. 입은 바늘구멍만하고 배는 남산보다 크다는 그놈이 아귀다. 모든 잉여가 그렇듯이 영양의 잉여가 살이요, 살이 출렁거리며 멈춘 곳이 배둘레다. 악착같이 허리에 붙어서 안 떨어지는 그놈.

그러니 억지로라도 걸어야 한다. 걷고 또 걷자. 그게 현대인들의 생존법이다. 그래서 길문화가 탄생했다. 거기다 우리는 세계에서 등산을 가장 좋아하고 많이 하는 국민이다. 틈만 나면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등산복이 패션으로까지 발전한 나라다. 그들에게 산을 횡단할 수 있는 길을 내줬으니 마당에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차마고도란 다큐가 인기였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도 이름다웠다. 길은 문명의 실핏줄이다. 요즘이야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처럼 자동차에게 길을 빼앗겼지만, 불과 반세기전만해도 길이란 사람이나 마소가 걷는 장소였다. 그 상실의 장소를 다시 찾고자 하는 게 요즘 유행하는 길문화다.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이제 진부하다. 그러나 길의 상실은 곧 삶의 상실과 통하니 진부하더라도 반성은 필요하겠다.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길엔 어떤 게 있나?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고샅길로 가는 마실길, 집뒤로 난 뒤안길,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눈석잇길, 딱 한 번 갈 수 있는 황천길, 새로 난 신작로, 질러가는 지름길 또는 첩경도 있다. 재밌는 건 꽃길이다. 연인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마을 뒤로 돌아가는 길을 옛사람들은 꽃길이라 이름했다. 여기서 꽃은 플라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 은유가 놀랍다.

다시 배둘레햄길, 아니 둘레길로 가보자. 산허리에 난 길을 옛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산복도로(山腹道路)라 했다. 허걱~ 정말 배둘레햄길이네! 그러고 보니 옛사람들의 유머도 만만치 않다. 이제 길이 트였으니 내친김에 더 걷자. 그런데 어떤 길을 걸을까? 맨날 심학산 둘레길만 걷는 게 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상상해 본다.

공릉천 하구 무진장 넓은 갈대밭엔 갈대길, 철책선을 따라 걷는 철책길, 율곡과 성혼이 소를 타고 왕래하며 학문을 논했다는 기호학파길, 재두루미나 청둥오리를 보기 위한 철새길, 옛 의주대로를 따라 걷는 연행길 등 파주에는 만들 수 있는 길 콘텐츠가 많다. 2010년도에는 그 중 하나라도 새로 만들어져 허리가 날씬해지길 기대해 본다.

○ 글 : 이덕완 / 시인

작성일 : 2010-01-20 조회수 : 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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